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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chopin (** 쇼팽 **)
날 짜 (Date): 1995년08월21일(월) 03시45분09초 KDT
제 목(Title): 첫사랑<2>


어렸을때부터 집근처의 학교를 다녀서 숙제를 놓고 오거나 도시락을 놓고오면
집으로 금방 달려갔다 오곤 했다. 학교 담장을 넘다 걸리는 일만 빼곤 재미있는
기억들 뿐이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떨어진 먼 곳으로 가게 되었다. 버스로
30분정도 거리였는데 그때까지 그렇게 먼거리를 여행(?)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상당히 먼 학교로 느껴졌다. 그 학교는 여름이면 푸른 논의 물결로
주위가 둘러쌓인 시내 변두리긴 했지만, 주변의 시골에 사는 집에서는 아들이 조금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도시로 유학보내는 학생들이 들어오는 당당한 도시의 
고등학교였다. 입학식날이면 자식의 출세를 꿈꾸고 좀더 큰 도시에서 교육을 시키고자
자식을 도시로 보낸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 와보고는 주위의 넓은 논밭들과
꽤 경사진 산의 중턱 한가운데 들어서있는 학교의 모습을 보고, 자기 살던동네보다
더 시골인 학교에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내 자식 보낸 꼴이 마치 사기당한 일인냥
선생들 허릿자락을 붙잡고 실갱이를 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이 고등학교 산중턱 밑엔 바로 운동장을 맞대고 여자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은 산중턱을 깎아서 만든 것이라 축구장 배구장, 나무로 둘러쌓인 바로
뒤엔 아찔한 절벽이었다. 그 절벽아래에 여자고등학교가 나란히 위치했었기 때문에
끼많은 남정네들이 축구를 하다 심심하면 아래쪽으로 공을 넘겨서 여자구경하러
절벽을 내려가다 다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했다. 쉬는 시간에 "말자야!" 하고
이름 부르는 녀석들, 밤에 몰래 가까운 나무에 올라가 여자들 구경하는 놈들, 
겨울이면 눈내린 운동장에 보란 듯이 자기 이름 큼지막하게 그려놓고 자신을
과시하는 아이들로 나의 고등학교 기억은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야간자율학습만은 끔찍했다. 밤 11시반이 되면 학교차를 타고 집으로와서는
저녁 마감뉴스를 보고 잠들곤 했다. 하루에 두개씩 도시락을 싸들고 
점심이 되기전에 둘다 비워버리는 왕성한 식욕의 시기였고, 아침 부터 자정까지
책상에 앉아서 글자만 보고 사는 감옥의 시기였다. 이끔찍한 생활을
3년동안 줄곧 할 수 있었다는게 지금으로서는 믿기지 않지만, 그때도 그 지겨운
야간강제학습을 도망가고 싶어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닌 모든 친구들의 공통된
마음이었으리라.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여름 어느날인가 밤늦게 난 혼자 도망을 왔다.
어두운 산길을 내려오며 느꼈던 그 해방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을 다 하기도 전에 
밤하늘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찍 집에 갈 수도 없고.. 생각하는
중에 한 여학생이 비를 맞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처럼 도망온 학생인가? 
앞의 여고도 야간자율학습을 했기 때문에 이시간에 나오는 학생은 없었다.
밤이었는데도 그녀의 얼굴은 하얗고 핏기가 전혀 없는 깨끗한 얼굴이었다.
길게 땋은 머리가 귀여웠다. 승차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남은 승차권하나를 그녀손에 쥐어줬다. 다시 그녀를 
자세히봤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초롱한
눈망울에 젖은 머리칼이 아직도 내기억에 생생하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미소에 실어 보내고 버스와 함께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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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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