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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entle ()
날 짜 (Date): 1995년08월11일(금) 16시36분48초 KDT
제 목(Title): [Ebben ? Ne andro lontana] ..... (끝)





   나는 눈을 떳다.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언제부턴가 눈을 감았던 모양이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다. 내 방의 모습은 조금 전보다 더욱 낯설어

보였고 또 공허해 보였다. 한편의 꿈을 꾸고 난 후처럼 나는 갈증을 느꼈지만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한참동안 꼼짝도 않고 계속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초조함으로 그 빗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빗소리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조금도...



   갑자기 내 방안의 공허함을 무언가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CD가 꽂혀있는 수납장 앞으로 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장의 CD를

꺼내 들고 오디오를 켰다. 조금후, 지금까지 내 방안을 지배하던 차가운 빗소리는

창문 밖으로 떠밀려 나갔다.

그리고 오페라 'La Wally'의 아리아 'Ebben ? Ne andro lontana'가 마리아 칼라스의

청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조금씩 내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안겨다 주는 위안감이었다. 그렇다.. 이것인 지도 모른다.

내 방안에 사람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것...



   'Ebben ? Ne andro lontana' (그렇다면.. 멀리 떠나 버리겠어요). 주인공 Wally

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는 Gellner와 결혼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 화를 낸다. 사랑하는 Hagenbach를 두고 멀리 떠날 결심을 한 Wally는

이 아리아를 부른다.



   모르겠다. 그 아이와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 가슴 밑바닥에서 아주 미약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같은 강렬한

허전함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뭔가를 바라거나 찾으려 한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떠나버린 것일까...




   Ebben ? Ne andro lontana.. 그래요 ? 그렇다면 멀리 떠나 버리겠어요..

한 구절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 말로된 아리아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제목을 반복해서 되뇌어 본다. 그렇다면 멀리 떠나 버리겠어요..

뒷 배경처럼 남아 있는 희미한 빗소리를 들으며 국민학교 3 학년 때의 그 수돗가가

눈 앞에 떠오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작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밀걸레를

들고 뒤를 돌아다 보는 한 젊은이와, 두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한 여인의

정지된 모습이...



   'Ebben ? Ne andro lontana'.. 그렇다면 멀리 떠나 버리겠어요..




....[끝]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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