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jhnam (남 주희) 날 짜 (Date): 1993년12월14일(화) 02시15분24초 KST 제 목(Title): // 까페 리라에서 // 간혹 심심할때면 어머님 의상실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까페 리라에서 시간을 떼우지요. 저려함 가격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상냥하게 대해주시는 웨이터 오빠나 갓 구워나온 여러 종류의 빵과 케익이 저를 언제나 그곳에서 죽치게 만들죠. 오늘은 지난 주 읽다 만 마가렛 듀라의 '연인'이란 소설책을 앞에 놓고 에스프레소를 마셔가며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시간 가는줄 모르며 넘겼어요. 전 그녀와 같이 빈곤의 생활을 해보지 못하여 여러 부분에서 이해가 안가는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카페인의 힘을 이용해 가며 나름대로 음미했죠. 만약 그 소설속의 연애가 제게 일어났다면 그건 아마 제가 그 부자남자 역할을 했을 거에요. 음... 생각해 보면 전 그렇게 부자도 아닌데 말이에요. "정현씨! 그럼 저보고 어떻하란 말이에요?" 옆에서 귀를 간지를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호기심이 나서 쳐다 보고 싶었지만 숙녀답게 못들은 척 하며 계속 책읽는 자세를 취했어요. "결혼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일단 연기라도 해 버리란 말이야, 쩝. 나도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해 낼테니," 하며 남자분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연기는 불가능하단걸 정현씨도 잘 아시잖아요. 그분이 얼마나 민간한 사람인데... 제가 이 계절에 안맞는 옷을 입은것도 다 그분과 오늘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그런거에요. 제 입장도 좀 고려해 주세요." "오늘 그녀석 하고 저녁식사를 한다고?!" "네, 그래요! 왜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그런것 가지고 트집 잡아요?!!" 언성이 아까보다 더욱 높아진 그녀, 정말 이야기가 재밌어지네. "아니, 난 그냥... 쩝, 쩝," 하며 갑자기 연약한 자세를 취한 그남자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 잠깐 전화하고 올께," 하며 사라졌어요. "손님, 치즈케익이 지금 막 나왔는데, 저번처럼 포장해 드릴까요?" 하고 웨이터 오빠가 제가 앉은 테이블에 와 말했어요. "어머,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하며 케익을 싸달라고 부탁했지요. 음... 이야기 더 듣고 싶었는데 어머님께서 걱정하실테니 가봐야 겠네 하며 '연인'을 핸드백 속에 챙기고 떠나려는데 옆에 있던 그 아가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훌쩍 훌쩍. 전 놀랐어요. 그것도 지난번에 안성기씨를 쏙 빼닮은 아저씨가 어머님 의상실에서 사간 배꼽보이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햐아, 세상 살다보면 별일 다 있구나 생각하며 계산대앞으로 갔는데 더 놀란것은 아까 옆에 앉아 있던 그남자가 또다른 여자친구같이 들리는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는 거에요. "응, 안나와도 돼. 곧 동창친구 만나야 하거든, 쩝. 그럼 내일이라도 만나자... 응, 안녕," 하며 전화 끊기 무섭게 그분은 허겁지겁 수첩을 뒤지더니, "에이씨, 여기 있었잖아," 하며 다시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어요. "응, 나 정현인데, 지금 너희 집앞에 와있어... 아니, 조금있으면 아버지와 함께 싸우나에 가야 하거든. 오늘은 좀 그런데... 쩝. 응, 응, 알았어. 이따가 다시 전화할께, 안녕." "맛있게 드셨읍니까, 손님?" 웨이트레스 언니가 미소를 지으며 전화얘기를 엿듣고 있던 저를 보고 말했어요. "네? 아아, 네에. 저, 얼마에요?" "치즈케익 사가시는 군요. 6만 3천원 입니다." "여기 있어요," 하곤 역시 그다음 여자와 통화를 하고 있는 그남자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까페 리라의 문을 열고 나왔지요, 내일 여기 또 와야지 하며. 참고로 까페 리라는 압구정동 갤러리아 건너편에 있답니다. 그럼 이만... ---------------------------------------------------------------------- 남 주희 � jhna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