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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jtlee ( - 레나 -)
날 짜 (Date): 1995년02월03일(금) 18시19분51초 KST
제 목(Title): 월미도의 두얼굴


작년 말 디펜스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이제 졸업을 얼마 안남긴
경미네 옆랩의 배선배는 외국학술지에 실어보자는 교수님의
제의에 따라 졸업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뜻밖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배선배는 다음달에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이미 애인과 약속을 한 상태여서 요즘 무척 고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주위에서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침묵으로 그를 위로했으리라.  그중에서도 유난히 그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 사람은 아마도 경미가 아닐까.  경미로 말하자면
랩에 들어올 당시부터, 아니 그 이전 신입생 환영회때였던가,
아뭏튼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배선배를 짝사랑해왔으니깐.
물론 본인은 그런 감정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을
해왔지만, 항상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생활하는 룸메이트인
나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오늘 배선배가 내게 번역을
부탁했을때 떠올랐던 것은 내 촉박한 스케줄이 아니라 행복해
하는 경미의 환한 미소였고, 나는 그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는
생각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해줄 수 있는 거니?"

배선배는 번역을 맏겠다고 하는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몇번이고 그렇게 묻더니 이내 논문을 건내 주며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배선배를 보면서, 아, 경미도
저런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하고 혼자 묵묵히 바랄
따름이었다.

언젠가 경미는 배선배와 그의 애인에 대한 얘기를 해준적이
있었다.  배선배의 애인은 뜻밖에도 경미와 같은 랩의
윤경이었다.  윤경이라면 나도 잘 아는 여우같은 애인데.
아뭏튼 그들이 한참 잘나가고 있던 무렵 경미는 윤경이에게
월미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곤 했었다.

-- 배선배가 너 월미도 데려가 준적 있었냐?  없지?  그럴줄
알았어.  월미도도 못가본 너희가 무슨 커플이냐.

물론 경미가 그런 식으로 윤경이를 매도한 건 얼듯 보기엔
윤경이를 질투해서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엔
경미는 아마도 배선배에게 월미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치만 차마 애인이 있는 그에게 자기가 말을 걸기도
뭐하고 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윤경이에게 그렇게 귓뜸을 한 것이
아닐까.

얼마후 배선배와 윤경이는 인천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정말
오랜만에 기차를 타보았는지 윤경이는 창문을 열고 긴머리를
휘날리며 마냥 즐거워 했다.  배선배는 윤경이가 싸가지고 온
김밥을 먹으며 흐믓한 표정으로 그녀의 작은 가슴을 어루
만졌다.  참으로 꿈같은 여행길이야, 하고 배선배는 윤경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인천역에 내린 둘은 덜컹거리는 버스로 다시
갈아 타 포항에서 떠난지 약 7시간만에 마침내 인천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회색빛 겨울 하늘에는 하얀 갈매기들이
소리없이 날아 다니고 있었고 뻔데기와 떡볶이를 파는 리어카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윤경이는 저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  부둣가에는 인천항을 한바퀴 도는
관광 유람선과 영종도로 가는 페리호만 있일 뿐 월미도로 가는
배편은 눈을 부릅 뜨고 찾아봐도 없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 온 윤경이는 슬픈 나머지 한동안 기숙사 방에
쳐박혀 그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않으려 했다.  나중에
배선배로부터 자초지정을 들은 경미가, 그곳이 월미도 맞는데,
하고 입버릇 처럼 말할 뿐 우리 기숙사에는 그 겨울 윤경이의
훌쩍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이제 둘은 얼마 안 있으면 유럽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부디
월미도의 슬픔이 경미에게 옮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미는
윤경이와 다르게 슬퍼지면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니깐.


                          - 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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