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jhnam (남 주희) 날 짜 (Date): 1993년12월09일(목) 15시07분52초 KST 제 목(Title): // 어머님 의상실에서, 오늘 // 휴대폰을 끄고 어머님 의상실 앞에 차를 댔어요. 날씨가 흐린탓인지 제 쏘나타의 하얀 빗갈이 정말 눈처럼 하얗게 보였지요. 옆에 우뚝 솟은 가로수에서 마지막 남은 낙옆 한잎이 검은 썬루프에 사뿐히 떨어져 "아, 이런 순간은 Leica로 사진한장을 영원히 남겨야 하는데..."라는 낭만적인 생각까지 들게 했어요. 아뭏튼 좋은 일만 일어날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마음 한구속에 자리잡고 있었지요. 아마 그때인것 같애요, 안성기씨를 쏙 빼닮은 신사 한분이 어머님 의상실에서 두리번 두리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 짙은 갈색 신사복에 회색비슷한 베지색 바바리를 입은 그분의 모습은 정말 보기드문 미남이였어요. 유리문을 밀고 의상실에 발을 디뎠는데 옆에서 마네킹 옷을 손보고 있던 혜자언니가 저에게 말했어요, "어머님은 외국바이어 만나러 좀전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가셨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쇼파에 앉아 거리에 지나가는 차들을 보려는데, 자꾸 저도 모르게 그 남자손님에게 시선이 돌아갔어요. 아마도 아내나 애인에가 선물할 옷을 찾고 계신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분은 이옷 저옷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천천히 발을 옮기시더군요. 그렇게 하며 시간이 한참 흘렀어요. 커피테이블에 놓여진 앤 테일러 겨울 콜렉션 카탈로그를 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분이 다가와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혹시 실례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몸매가 저의 약혼녀와 비슷한것 같은데 이 투피스 입어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사이즈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하며 얼굴을 약간 붉히셨어요. 전 심장이 포수로부터 도망치는 토끼처럼 마구 뛰었어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답변했지요. "글쎄요, 전 모델이 아니라서 옷을 잘 받아드릴지 자신이 없는데..." 그말을 끝맺기 무섭게 그분은 말씀하셨어요, "부탁입니다. 요것 한벌 만이라도 좋으니 꼭 좀 입어봐 주세요,"하고 어깨가 트인 검은색 드레스를 저에게 건네 주셨어요. "이건 원피슨데,"라고 말하며 얼떨결에 그옷을 받았서요. 뒤에 가서 갈아입고 나오자 그분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저를 무안할 정도로 쳐다보시더니 혜자언니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아가씨, 이거 똑같은거 두벌 좀 싸주십요. 결정했읍니다." "같은 색은 없는데..."라고 혜자언니가 옆에 다가와서 말했어요. 조금 망설이는 눈빛이 나는 그분의 모습이 정말 믿음직스러워 보였다고나 할까, 전 추워서 후들 후들 떨었서요. "배꼽보이는 비슷한 검정색은 있는데"라고 혜자언니가 덧붙이자 그분은 서슴없이 말씀하셨어요, "그거래도 좋으니 사이즈 똑같은 걸로 이분이 입고 계신것과 함께 싸주십요." 그렇게 해서 그분은 자그마치 240만원이나 쓰셨어요. 그런데 문을 나서기 전에 저에게 다가와 아까 입었던 드레스가 포장된 상자가 담긴 종이가방을 저에게 주시는게 아니겠어요?! "아무 말씀 마시고 받으세요. 이건 아가씨에게 더 잘 어울렸읍니다,"라고 하며 그만 제가 답변하기도 전에 의상실을 떠나버렸어요. 전 완전히 뿅갔어요. 실신할것만 같았어요. "얜 왜이렇게 정신 나간 애처럼 거리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거니?"라고 어머님이 들어오시자마자 저를 보시고 혜자언니에게 물었어요. "사모님, 따님 잘둔 덕분에 한시간 사이에 240만원이나 벌었지 모에요!! 그것도 잘않나가는 배꼽나온 드레스 한벌만 팔아가지고 말이에요!!"하며 그언닌 깡총 깡총 주책스럽게 계산대 뒤에서 뛰었어요. "그게 정말이니, 주희야?" 어머님께서 저에게 물었어요. "네, 맞아요,"하고 다시 그분이 나간 거리를 쳐다 보았지요.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그분이 카드 그을때 사용했던 볼펜을 꺼내 보았어요. 권색에 조금 지워진 하얀 카이스트 마크. 그걸 마치 저에게 남겨진 유일한 행운의 상징으로 생각하며 쇼파에서 그만 잠들어 버렸어요. 어때요? 지금 깨어나자마자 의상실에 있는 멕킨토시로 키즈에 접속해서 쓴 실화에요. 이만하면 저도 성숙해 보이죠? ---------------------------------------------------------------------- 남 주희 � jhna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