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eolRi (자하랑) 날 짜 (Date): 1994년11월30일(수) 00시04분25초 KST 제 목(Title): 내가 사랑한 그녀... 내가 사랑한 그녀. - white. 오늘도 나는 커다란 캔버스에 그녀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절망한다. 자신이 나타내고 싶은 것을 어느정도 표현할 수 있는 화가는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리라. 나의 짧은 손으로는 도저히 그녀를 나타낼 수가 없다. 그녀의 맑은 눈, 하얗고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코. 아름다운 그녀. 난 그런 그녀를 그리려고 계속 시도를 해 보았지만 능력부족이다. 아니. 어쩌면 대단한 화가가 와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리라. 제 아무리 잘난 화가라 해도 어찌 그녀의 향기, 따뜻한 숨결, 부드러운 촉감 등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그녀를 그림에나마 담아두려는 나의 노력은 헛되이 돌아가고, 나는 추억 속에서만 그녀를 반추할 뿐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얗게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캔버스가 오히려 그녀의 모습에 제일 가까운 것이리라. . . . 술병이 옆에서 뒹굴고 있다. 아직 비지 않은 병이 있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 허사이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이제 그리지 못한 캔버스에 마음 속으로 그녀를 그려 나간다. 이 백지처럼 하얗고, 순결한 그녀를. . . .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에 비가 내렸다. 그녀는 우산이 없었고 나는 많았다. 그녀는 미안한 듯 나에게 우산을 요구했고 나는 당연한 듯이 그녀에게 파라솔처럼 커다랗기만 한 우산을 넘겼다. 나는 접히는 작은 우산 - 비가 약간 새는 - 이 있었지만 그걸 펼 필요는 없었다. 그녀에게 준 우산은 둘이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비가 계속 우산을 툭툭 치는 소리외에 그녀와 나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는 전혀 상관하지를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우산을 빌려준 것이고 그녀는 나에게 우산을 빌린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우산의 가치를 물었다. 친구것을 그냥 들고 나온 우산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 그녀는 우산의 대여료로 좌석버스의 값을 치렀다. 좌석버스는 나란히 앉을수 있어서 좋다. 나는 그녀에게 창밖으로 지나가는 저 건물이 뭐냐고 물었을게다. 그녀는 모른다고 했고 나는 그게 전화국이라고 말했다. "전화국?" 그래요, 전화국.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막 웃었다. 전화국을 전화국이라고 말했은데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녀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그녀는 우산이 꽤 비싸다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두사람의 저녁도 그녀가 부담했으니. 돌솥밥을 먹어본 적이 있냐고 그녀가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그녀와 나는 "원조" 라는 이름이 낀 돌솥밥집을 찾기 위해서 거리를 한참 헤멨다. 비가 꽤 많이 내렸다. 결국은 못찾고 그냥 다른 이름의 돌솥밥집에 들어갔다. 음식점에 들어가자 비가 멎었다. 그녀는 하늘이 우리 둘을 시샘한다고 웃으면서 말했고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녀가 비빔밥을 처음 먹는 나를 위해 밥을 비벼 주었다. 나는 그동안 TV에서 코미디 전망대를 보고 있었다. 내가 TV를 보면서 웃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밥에서 계란을 빼서 내꺼에 얹어 주었다. 맛있었다. 밖의 음식을 별로 먹어보지 못한 나는 맛있게 그릇을 비웠다. 저녁을 먹고 다시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다시 우산을 펴고 심통맞은 하늘을 흘겨보면서 그 속에 숨었다. 지나가다가 영화배우 손창민을 봤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서 사인을 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영화배우는 스크린 속의 모습과는 꽤 달랐다. 내가 손창민을 좋아하냐고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사인받을 필요는 없겠네, 라고 내가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그곳을 곧 지나쳤다. 이제, 다시 이층짜리 건물로 들어갔다. 비는 또 그쳤다. 어, 이게 무슨 조화지... 하고 그녀는 말했고, 나는 그럼 한바퀴 더 돌다가 여기로 다시 와보자고 말했다. 한바퀴 더 도는 동안 약간의 비를 더 맞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 . . 술병이 찾아도 안 보이니까 짜증이 난다. 캔버스 속의 그녀는 웃고 있는 거 처럼 보인다. 웃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두렵다. 슬픔을 갈무리한 듯한 어두운 웃음. 배가 고프다. . . . ( 우리마을, writers/Zaharang에서.) ------------------------------------------------------------------------ 이글을 쓴게 14일이었으니까 보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캔버스위에 하얀 여백으로만 남겨 놓은 상태이고 나는 또 이상한 곳으로 옮겨와서 이 글을 끝내려 한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했다. 멀리 있는 만큼 환상은 더욱더 커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떨어 져있는 만큼 기억은 멀어지고 그만큼 아무런 환상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녀 앞에 서 있을때 내가 느끼던 것을 찾을 뿐. 그녀에게 어제 말했다. 나를 잊어달라고. 그녀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 아니... 나는 가능해. 너를 잊을 수 있어. 모든 것은 한때의 바람인 것 처럼 지나가는 거겠지. - 나를 그런 식으로 위로하지마. - 아니. 사실이야. 내가 너에게 거짓말 한 적이 있었니? 잊을 수 있어. 분명히. - 그래? 너에게 있어 나는 아무런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존재였던가 보구나. 그녀는 내말에 절망을 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나를 마지막으로 배웅하기 위해 저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따라나가서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역광장에 도착을 했다. - 내 말을 오해하는구나.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아직도 모르니? 그녀를 돌려서 세웠다. - 말해봐. 나를 잊을 자신이 있어?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럼 나를 사랑할 자신은 있니? 그녀는 그것 역시 대답하지를 못했다. - 그것봐. 이제 된거야. 됐어.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뒤 그녀의 손을 모아주면서 그녀의 눈을 보았다. - 된거야. 나는 괜찮아. 너도 그럴 수 있을꺼야. 이제 들어가. 더 이상 따라오지 말고. 말은 마친 후에 나는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시계탑위에 있는 시계는 이미 5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55분에 떠날 기차는 이미 도착을 했을 지도 모른다. 차시간에 닿기 위해...... 그리고 그녀에게 내 뒷모습을 길게 보이기 싫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구 뛰었다. 뜀박질을 멈추면 울음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뛰었고, 개찰구를 지나서 플랫폼에 닿을때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숨이 가빴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문득 철로 저편에 역사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 역시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 왼쪽으로... 개찰구까지 왔다가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참았던 눈물이 그제야 폭발을 했다. 옆사람이 다 쳐다 볼 정도로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보이지 않기를 빌면서도 계속 개찰구쪽을 바라보면서 울고만 있었다. 이제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곧 있으면 기차가 도착할 것이고 나는 여기 그녀를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기둥에 버틴 채 눈을 감고 있을때 누가 뒤에서 나를 쳤다. 그녀가 울면서 뒤에 있었다. - ...... 어떻게 된거야? 어디로 들어왔어? 들어올데가 없는데... - 내가 가고 싶은 데를 누가 막겠어.....? 출구가 한 곳 뿐이야? 표받는 곳으로 해서 들어왔어. 그녀가 가볍게 웃음지으면서 말했다. 눈에는 눈물을 담은 채로. - 이런. 바아보. 나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기차가 도착했다. 사람들은 꼭 안은 채로 있는 우리를 남겨둔채 열차에 타기 시작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역 승무원이 우리를 보고 탈려면 빨리 타라고 말했다. - 이제. 됐어. 빨리 타. 그녀가 나를 밀었다. 나는 그녀의 뜻대로 기차에 올라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야 돼. - 응. 걱정마. 기차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와 나는 손을 놓았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일때 그녀도 천천히 걸으면서 따라왔다. - 잘 있어야 돼. 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기차는 조금씩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도 서서히 뒤쪽으로 멀어져 갔다. 지금 뛰어내리면 나는 여기에 남는 것인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기차 밖으로 몸을 내밀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차는 점점 속력이 붙기 시작했고 바람이 내 볼을 강하게 때렸다. 기차가 조금 꺽어지자 이제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잊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하얀 종이 뿐. 내가 기억하는 것은 기차밖으로 보여지던 멀어지던 그녀의 모습과 겹쳐지는 하얀 주위의 풍경들뿐...... @자하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