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ring (도겟 요원) 날 짜 (Date): 2002년 10월 7일 월요일 오후 03시 23분 55초 제 목(Title): Re: 가설을 먹고 자라온 양자역학 번역이라 좀 이상한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제가 동의하는 내용이라 옮겨옵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네요. 설마 번역자가... <수학이란 무엇이가?> -R. Courant, H.Robins ------------------------- 물리학에서 가장 큰 성취는 형이상학을 제거하는 원리를 용감하게 고수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나타났다. 아인쉬타인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개념을 관찰 가능한 현상으로 바꾸려 하고, 이 개념이 본질적으로 과학적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는 믿음을 형이상학적인 편견의 가면을 벗었을 때 상대성이론의 실마리를 발견하였다. 닐스보어와 그의 제자들이 임의의 물리적인 관찰은 관찰대상에 관한 관찰 기구의 효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석하였을 때, 입자의 속도와 위치의 명확한 동시 고정은 물리학의 의미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양자역학 의 근대적 이론으로 구체화된 이 발견의 광범위한 결과는 이제는 모든 물리학자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에는 역학적인 힘과 공간에서 입자의 운동은 실재하지만 전기, 빛, 자기는 열에 대하여 그랬던 것처럼 역학적인 현상으로 바뀌거나 설명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널리 보급 되어 있었다. "에테르"는 빛이나 전기처럼 나타나는 역학적인 운동으로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가설적인 매체로 고안되었다. 차츰 관찰 불가능이라는 사실과, 형이하학이 아닌 형이상학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한편으로는 슬픔으로, 다른 면으로는 위안과 함께 빛과 전기의 역학적인 설명은 에테르와 함께 마침내 폐기되었다. 훨씬 더 강조되기는 했지만 유사한 상황이 수학에도 존재한다. 오랜기간 동안 수학자들은 수, 점, 등과 같은 수학의 대상을 본질적인 실재로 생각했다. 이러한 실재들에 대하여 적절한 설명을 할 수 없었으므로 19세기 수학자들은 실재로서의 이들 대상의 의미에 과한 의문은 있다 하여도 수학 내에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점차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그들에 관련된 주장은 본질적인 실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수학적으로 무정의 대상과 그 대상을 조작하는 데 지배적인 규칙 사이의 상호 관계만을 말한다. 점, 직선, 및 수가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것은 수리과학에서 논의 될 수 없고 논의 될 필요도 없다. 문제가 되고 "입증 할 수 있는" 사실에 대응하는 것은 두 점이 직선을 결정하고 수들이 어떤 규칙에 따라 다른 수를 만들어 내는 등 구조와의 관련성이다. 기본적인 수학적 개념을 본질적으로 다룰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보게 된 것은 근대의 공리론적 발달의 가장 중요하고 소득이 많은 결과였다. 다행스럽게도, 창조적인 생각은 그 신념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인 성취를 방해할 때는 언제나 교조적인 찰학적 신념을 잊어버린다. 학자들과 비전문가에게 그것은 철학이 아니고 수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혼자 답할 수 있는 수학 자체에서의 실제적인 경험이다. P.S. 마지막 문단은 뭔 말인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