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aaa) <211.109.171.91> 날 짜 (Date): 2002년 6월 7일 금요일 오후 11시 48분 14초 제 목(Title): [펌] 내 입으로 이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다 작성자: 이오덕 얼마 전 어느 자리에 나갔다가 `국민의례`가 있어 애국가를 부르게 되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어 부르는데, 그날 따라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애국가를 부를 마음이 안 났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이제부터 내 입으로 이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국민이면 어린아이들도 누구나 부르는 애국가, 나 자신이 50년도 넘게 불러온 애국가를 왜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나? 그 까닭은 이렇다. 바로 그 며칠 전에 어느 일간신문에서, 애국가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윤치호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신문은 윤치호 자신이 지은 애국가를 손수 붓으로 써서 `윤치호 작사`라 해 놓은 것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이래서 지금까지 누가 지었는지 확실히 몰랐던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윤치호라면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로 우리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하필이면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가 지은 노래를 의식 때마다 불러야 하나? 지금까지는 몰라서 불렀지만, 그 사실을 안 다음에는 부를 수가 없었다.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내 감정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나는 전부터 우리 애국가를 별로 신통찮게 여겨 온 터이다. 노랫말도 그렇고, 곡도 좋게 안 보였다. 우리 애국가 노랫말이 일본 제국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닮았다고 하는 말은 진작부터 있었다. 일본의 `기미가요`를 우리말로 옮겨 보자. `우리 천황 거룩한 세상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조그만 돌이 큰바위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영원하리라)` 이 일본의 국가는 `조그만 돌이 큰 바위 되어…` 했는데, 우리는 반대로 그 넓고 커다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했으니 더욱 좋지 않다는 말도 가끔 들었다. 아무튼 우리 애국가는 국민들의 정서에서 자연스럽게 안겨 들거나 가슴을 찡하게 울려 주는 것이 없는, 다만 머리로 만들어 낸 말로 되어 있는 것만은 동등하다. 다음은 곡이 또 문제가 된다. 이 곡은 우선 크고 무거운 느낌을 주어서 점잖고 엄숙한 몸가짐으로 부르게 된다. 우리가 부르고 들어온 의식 노래는 일제시대부터 `기미가요`를 비롯해서 으레 사람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거나 굳어지게 하는 것이었기에 애국가도 당연히 그래야만 된다고 여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노래와는 반대로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고 피어나게 하는 노래, 따뜻하고 기쁘게 해주는 노래, 또는 가슴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듯한 노래는 애국가나 국가로 될 수 없을까? 민주주의로 살아가는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부르는 노래라면 당연히 이런 노래라야 참된 나라 사랑의 노래가 되고, 땅 사랑, 사람 사랑의 노래가 될 것 아닌가? 나는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의 노래를 그다지 알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처럼 꼿꼿하게 `차려`를 해서 한결같이 굳은 표정으로 애국가나 국가를 부르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일본 사람들밖에 없는 줄 안다. 무슨 일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먼저 애국가를 부르고 나면 그만 자리가 아주 차가워지고 흥이 나지 않아서 그 일이 제대로 안 되는 수가 많다. 의논을 할 때는 딱딱한 말, 형식으로 꾸민 말, 겉도는 말부터 나온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어린이회나 학급회 회의를 할 때 먼저 애국가를 부르고 나면 그만 아이들 마음이 얼어붙어서 말이 잘 안 나온다. 선생님이 언제나 지시하는 말을 흉내내고 되풀이하다가 끝내기가 보통이다. 이것이 애국가의 효용성이다. 좋은 애국가를 새로 만들 수는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참된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려 한다면 차라리 `아리랑`이니 `고향의 봄`을 부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이런 노래라면 부르는 사람 모두가 저마다 가슴속에서 조국과 고향을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이 터져 나와, 그 자리가 모든 사람을 하나로 이어 주는 참으로 바람직한 자리가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애국가와 국가를 견주어 보면 두 나라가 어떤 점에서 아주 닮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며칠 전 큁 신문 <아침 햇살>에 쓴 ? 논설주간의 글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 글의 중간 제목이 `한·일, 비겁한 동반자`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맺은 말이 다음과 같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은 일본과, 식민지 청산을 주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혈손이 정신적 후손이 강고히 권력을 붙잡고 있는 한국은 사실 정신적으로 동반자 관계에 있다. 그 비겁한 관계를 이제껏 지속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뒤에도 군사 정권의 잔재가 여전히 활개를 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착잡해지는 것은, 그 연유가 어제오늘에 있지 않다.`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제34호)> (98.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