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4월 18일 수요일 오전 11시 34분 33초 제 목(Title): Re: 도올이 뭐가 어때서? 그리 의심스럽거든 제오님 스스로 옆구리를 칼로 찔러 상처를 만져보세요. 무척 아프고 쓰리겠지요. 그 아프고 쓰림을 아는 그것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음을 알기 위해서 그런 의심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해보시라는 겁니다. 저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며 기적을 행하거나 스스로 메시아를 자처하지 않았는데, 어찌 옆구리를 들이대라 하십니까, 의심하는 자 제오님이여? :)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부모가 자식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건 모두 '나(Ego)'의 연장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비심이 제한적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똑같이 물에 빠졌을 때, 누구나 내 자식을 먼저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아기는 똑같은 생명이며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왜 내 아기를 먼저 구하게 될까요? 만일 내 아기가 살고, 다른 아기는 미처 구하지 못해 죽었다면 그 때 느끼는 슬픔은 내 아기가 죽었을 때의 슬픔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것이겠지요. 연인의 아픔은 역시 나의 아픔, 내 동족의 아픔은 역시 나의 아픔, 내 편의 고통은 역시 나의 고통일진대 어찌 나와 무관한 사람의 아픔은 나는 느끼지 못하며, 타 민족의 아픔에 무관심하며, 적의 고통에 기뻐하는 것일까요? 이렇듯 사랑이란 에고의 입장에서는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에고는 끝없이 의심하며, 자신과 남을 구분하며, 자기 편과 저 편을 갈라서 자기 쪽 테두리 내에 sympathy를 한계짓습니다. 지금도 지구 어느 편에서는 굶어죽어가고, 총칼에 죽어가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조그마한 사치와 행복에 있을 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에고의 입장에서 의심하고, 철학을 논하고, 사랑을 논하고, 정치를 논하고 혹은 실천하더라도 결국 이 세상의 전쟁과 기아 등 혼란스러움을 끝장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나 석가같은 성자 몇 십명이 왔었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여전하죠. 그들의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충분히 할만큼 했습니다. 누가 해야할 차례입니까? 바로 당신과 나의 차례가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