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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5월  5일 수요일 오전 02시 32분 20초
제 목(Title): 한/ 민정기의 벽계구곡도 



사진은 한21에 있어요. 

동서의 어울림이 아름답다 


 (사진/<벽계구곡도Ⅱ>, 캔버스 위에 유채, 1999) 

분석적인 서양인들이 원근법 등 과학적 법칙에 근거해 아주 사실 같은, 박진감 
넘치는 자연주의 미술을 창조했다면, 종합적인 한국사람들은 그림에 글씨를 섞고, 
거기에 시까지 담아 가능한 모든 경계를 허물려는 인문적인 태도를 진작시켜왔다. 
전자가 모든 감각을 나누어 제각각의 감각에 맞는 예술 장르를 독립적으로 
발달시켜왔다면, 후자는 모든 감각이 가능한 서로 한데 어울려 하나의 예술로 
통합되는 시화일률의 경지를 추구해왔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미술을 
단지 보는 것으로 한정지어 이해하려는 태도가 매우 서구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음악은 시간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예술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예술에 관한 서구 일변도의 관점을 우리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형언어에 실린 전래의 예술적 관점 


바로 이런 시각에 근거해 서구화에 밀려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우리 예술의 깊은 
종합적, 인문학적 특성을 작품 속에서 되살리려 애쓰는 예술가들이 있다. 
4월23일부터 5월7일까지 아트스페이스 서울(02-720-1524)과 학고재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민정기가 그 대표적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근작들은 크게 풍경화와 초충화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좀 어색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풍경화는 서양화에 속한 것이고 초충화훼는 동양화에 속한 
것인데, 그 둘이 한 작가의 작품 소재를 구분하는 데 나란히 쓰이니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특성이 민정기가 
겨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시사해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현대적 조형언어에 
실린 우리 전래의 예술적 관점이 바로 그의 작품을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인 
것이다. 

물론 그의 풍경화에도 산수화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 있고, 그의 초충화훼에도 
서양화의 시선이 녹아들어 있다. 그런 뒤섞임이 단순히 동도서기류의 절충적 
시각에 묶이지 않고 좀더 짙은 초월적 지향, 좀더 폭넓은 인문학적 지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과거의 
시선이 현대화의 융단폭격에 묻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성격마저 띠며 새롭게 살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시대라 해도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것이 
인간이 지녀야 할 하나의 고귀한 정신적 지향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그림은 그만큼 
지금껏 흐려지기만 해온 우리 문화의 빛을 밝히는 데 한몫 하는 것일 수 있다. 

그의 풍경들을 보자. 어찌 보면 전통적인 서양화 풍경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풍경화들이 정지된 시간, 정지된 시점의 스냅사진 같은 장면들만을 
보여준다면, 그의 그림은 그림 속 경치를 따라 미음완보하게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라 ‘걸어봄’의 대상으로 그려진 그림인 
것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보듯 옛 우리 산수화는 서양의 원근법과는 전혀 
다른 다양한 시점과 다소 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함으로써 관자로 하여금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했다. 민정기의 <벽계구곡도> 연작이 이에 상응하는 긴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면, <운길산> 연작이나 <청화산> 등은 비교적 짧으나 나름의 
걸음걸이를 위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민정기에게 그림은 이렇듯 ‘참여의 
장’이어야 하고 인간의 흔적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것이어야만 하는 그런 것이다. 


그림 속 경치를 따라 걸어보렴 


그의 초충화훼에서도 우리는 그가 그린 것이 꽃을 따라 움직이는, 또 곤충을 따라 
움직이는 우리의 마음임을 본다. 전통적인 그림의 선맛에 비해서는 다소 투박한, 
이른바 유화의 임파스토 기법(거칠게 물감을 첨착하는 기법)이 강하게 살아 있는 
그 그림에서, 우리는 단순한 시각적 쾌감의 대상으로서, 혹은 단순한 도상학적 
이미지로서 그 그림을 대하게 되지는 않는다. 화가와 관자, 자연과 관찰자 등 
주체들간의 느낌과 그 느낌들간의 관계,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이 그의 
그림에서는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그려져 있음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그림은 자연처럼 우리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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