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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dwij (드위지)
날 짜 (Date): 1998년 4월 12일 일요일 오후 11시 08분 48초
제 목(Title): 전환과 공간:앤디워홀과 팝아트


이 글은 제가 작년에 교양으로 현대미술사를 수강하며 썼던 레포트이지요.
지난 가을 호암 아트홀에서 열렸던 <전환과 공간>이란 전시회의 감상문입니다.
그래도 A+를 받은 글인데(^^;; 비록 시험은 망쳐서 성적은 C+을 받았지만요)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올려봅니다.


 
                   <전환과 공간 : 앤디워홀과 팝아트 >

  호암아트홀에서 10월 17일부터 개최됐던 이번 전시회 <전환과 공간>은  현대미술 
전환의 양상과 그 흐름을 읽는데 목적을 두고 구성한 선별적인 작품 전시회로 그간 
호암아트홀에서 수집한 소장품을 대상으로 한다.  현대미술사의  전체 파노라마를 
나열식으로 구성하기보다는 그 흐름의 맥락을 파악하며 변화상을 뚜렷이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주제인 <전환의 공간> 또한  지난 50여년간 현대미술이 직면
했던, 형식과 개념, 그리고 가치의 전면적인 방향전환이 주요 관심사라는 것을 명
시해 준다.
  회화·설치·조각 등에 걸쳐 작가 33명의 작품 45점이 전시되며, 대부분이 이번 
전시에서 첫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전시는 모더니즘의 전개와 종언, 포스트모더니
즘의 제양상등 2부로 나뉘어 구성된다.  1부에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인 아쉴 고르
키, 드 쿠닝, 로스코를 비롯해 라인하르트, 엘버스 루이스, 켈리, 스텔라, 저드, 
라이만, 마틴, 플레빈 등의 작품이 전시되며, 2부에서는 세기말 현대미술의 향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 앤디 워홀을 비롯해 보이스, 키퍼, 리히터, 폴케, 브루테스 등
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중에 나는 앤디워홀의 작품을 특히 주목해 봤는데, 이유는 예전에 역시 호암아
트홀에서 개최한 <앤디워홀전>을 관람한 적이 있기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선  `
금빛 마릴린 마흔다섯'이란 작품을 선뵈고 있는데 1979년 작품으로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판화작이다.  이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복제성 상품들이나, 대중적 스타들들에서 소재를 찾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신에 연유하고 있는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
겠다.
  앤디워홀의 전시회를 보고 있노라면 미술전시회라기 보단 마치 시대적 유물들의 
전시회같다.  산업혁명이후 공업화사회의 대량생산이 가져온  콜라나 통조림등의 
복제성상품들, 그리고 매스매디어의 발전이 낳은 대중매체속의 스타들.  그는 이러
한 소재들을 작품화하는데 열중했으며 이런 사회의 현상을 모방했다.
  그가 작업실을 Factory라고 불렀다는건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대해 예술품을 
창조해 낸다는 개념으로서보다 상품을 만든다는, 즉 생산이란 개념으로 치부해  버
렸음을 뜻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공장에서 똑같은 물건이 찍어져 나오듯 
고무스탠프, 실크스크린, 사진기법등  대량복제가 가능한 방법을 통해 제작됐으며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가  내 대신 내 그림을 다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매번 이미지들을 맨 처음 것과 똑같이 깨끗하고 
단순하게 만들 수 없었다.  만일 더 많은 사람들이 실크스크린을 거들어 아무도 내
그림이 내것인지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이는 작가의 고유한 개성이나 감정자체를 배제해버리겠다는 말인가.  그래야만 한
다는 말인가.
  '그저 나의 그림과 영화들, 그리고 나의 표면을 보라.  거기에 내가 있다.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본인의 말대로 그의 작품은 어떤 감정이나 상상력을 유발
시키지 않는다.  어릴적 가지고 놀던 플라스틱 인형과 같이 화려함속에 싸늘한 냉
기만 느껴진다.  팝아트는 모두를 위한 것이며 소수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
는 생각에서 나온것이라 볼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다 쓰고 있는 생활용품들과 영
상매체속의 스타, 혹은  신문을 크게 장식하는 뉴스를  소재로 삼는등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데 성공했다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예술도 상업화 시키는데 영향을 미쳤
다.  그러나 이 자체가 무비판적으로 볼것을 강조하는 그의 말에 어패를 들어내고 
있음이 아닌가.  그는 이미 미술에 대한 새로운 정신, 사조를 탄생시켰다.
  2차대전 이후 세계미술의 중심지는 마침내 파리로부터 뉴욕으로 옮겨졌다.  내면
의 소리를  뜨거운 표현으로 쏟아내던 추상표현주의는 미술사상 최초로 미국의 미
술, 뉴욕의 미술로 주목받으며 세계미술계를 지배한 사조였다.  많은 화가들이 물
감을 흘리고 뿌리는 기번에 매료되었으며, 미술은 대담하고 거칠고 표현적이어야한
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몇몇  작가들이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들기 시
작하여 감정이 배제되고 생경하고 고상하지 못하고, 적나라하거나 엉뚱한 이미지들
이 미술작품으로서 이곳 저곳에서 모습을 나타낸 것이 1960년대 초반이다.  추상표
현주의에 이념을 제공하였던 미국의 영향력있는 비평가들이 이 새롭고 이상한 미술
에 대해 혹평하고 분노하기까지 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앤디 워
홀을 위시한 이 팝아트에는 어떠한 모임 강령, 리더, 통일된 양식도 없었고 팝아티
스트라고 불리우는 작가들도 서로 일단의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의식, 동기 성향, 
스타일 면에서 모두 각약각색이었으나 짧은 기간 내에 큰 반향을 블러일으켰다.
  팝아트 출현의 전조는 팝적인 생활약식의 만연이었다. 변화가 미국만큼 극적이고 
파장이 큰 곳이 없었다.  팝아트는 현실을 재창조하지 않고 단지 주변의 일상환경
에서 가공된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풍족하고 낙관적인 생활과 분위기  속
에서 미술만이 심각할 수는 없었다.  실존적인 추상표현주의는 새로이 도래한 풍요
의 시대에 자리를 잃은 것이다.  무비판적 시각이 팝아트의 특징이라 간주되면서  
팝아트는 예술계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대중의 예술관을 변화시켰다.
  워홀은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저수지가 만수위에 이른듯 산업자본주의와 
대량생산의 새대에서 예술의 변화는 피할 수 없이 임박한 변화였고 워홀은 단지 그 
변화의 물꼬를 튼 것 뿐이었다.  또 예술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적극 인정하고 그 
상품적  속성을 드러내는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로의 이행을 능동적으로 주도한 워
홀, 뛰어난 통찰로 변화의 흐름을 포착했던 그 역시 시대 변화의 한 산물일 뿐이었
고 워홀이 없었더라도 또 다른 `워홀'이 그의 역할을 대신 했을 것이다.
  1960년대 당시만 하여도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쾌락추구의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대도시의 경우 외에는 전통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시대였는데 한편에서는 급속하게  
그리고 무서운 기세로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소비와 광고, 전파
미디어,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유명해짐, 부의 추구와 경제적 성취, 자기과시, 
성, 성도착, 동성애, 말초적 쾌락, 감각과 감성, 디자인, 록음악, 패션, 가십, 의
외성, 자동차 등 60년대 미국의 이러한 양상들이 워홀 예술의 주제요 관심 대상이
었거나 그의 삶 자체였는데, 오늘날 90년대 미국과 전 세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도 이들이 가장 절실한 이슈가 되어 있다.
  성급하며 편리하고 쉬운 것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세태도 우리는 워홀의 눈을 통
해 볼 수 있다.  워홀은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하였고  한
때 회화작업을 포기하고 독특한 방신의 영화제작으로 돌아섰다.  이는 신상품을 생
산해내고 그 이미지를 대중에게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심어주어 상품을 소화시키고 
소진시켜야 하는 대량소비체제의 산물이었다.
  미디어와 소비문화가 만나는 곳에서 대량전달과 광고의 위력은 폭발적이었으며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현상이 본질을 압도하고 문화는 감각적으로 치달았고 순수미
술은 값은 비싸지만 대중매체에 비해 그 위력은 이미 상실된 분야가 되었고 미술관 
 밖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시대의 에술 개념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 에술 자체가 되어 예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성급히 
유명해 지고 대가가 되려는 욕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예술
사업가로서의 의식  등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워홀 이후의 많은 작가들이 공유
하게 되었다.  이 모두 `앤디의 세계'에서 비춰지고 예고된 현상들이었다.
  팝아트의 이미지가 당시 문화상황에  대한 예찬인가 비판인가는 단정하기 어렵
다.  이미지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의미는 이미지가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맥락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작품속에는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소비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적어도 우리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미국적 문화현상의 본질에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열고 
모든 어둡고 밝은 외부의 현상들을 빼어난 감수성으로 다  받아들여 그것을 작품과 
삶을 통하여 그대로 비쳐내었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위대한 리포터, 사회를 비추
는 거울이라는 평을 받았다.
  앤디워홀의 작품들을 통해  미술은 시대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전
개되고 있는 양상들과 기존에 뿌리박고 있던 가치들과의 갈등속에 새로운 정신, 즉 
미술이 탄생하며 작가는 가치를 부여받게 되고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게 된다고 생
각한다.  앤디, 그는 기존의 추상표현주의에 반하는 팝아트란 새로운 사조를
낳았으며 이는 포스트모던니즘으로 연결된다.  어떤 미술작품, 사조이던간에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게 되고 이는 곧 팝아트의 정신처럼 결코 미술이 소수 만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으며 소수에 의해 존재 될수도 없음을 드러내는 이유라고 
여겨진다.


                            ∼◎ Ðωi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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