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queen (화가~경아) 날 짜 (Date): 1998년04월05일(일) 09시54분36초 ROK 제 목(Title): 통념을 폭파하는 예술가 단순명료한 사진 이미지와 짧은 문장을 멋지게 혼합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바바라 크루거. 그녀는 작품을 통해 소비사회의 상품문화와 물심주의, 가부장적인 권력의 문제점을 열심히 파헤치고 있다. 그녀의 이런 예술에 대해 비평가들은 '통념을 폭파하는 예술' 이라고 평한다. 통념을 뒤집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폭파시켜버리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살면서 스스로는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환각'을 깨뜨리는것을 예술적 지향으로 삼고 있는데, 구체적인 작품을 살펴보면,(여기 사진 올릴수도 없으니...설명만) <무제>라는 작품ㅇ은 그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데,젊은 여인의 얼굴이 정면으로 클로즈업 되어 있고 그 위에 '너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 라는 글귀가 이마에서 턱까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씌여있다. 여인의 얼굴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그러니까 사진의 양화와 음화 형식으로 정확히 반분되어 있다. 포스터 양식으로 돼 있는 이 작품은 그 이미지나 글귀 모두 강한 인상으로 관자의 눈길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일단 여인의 얼굴을 주목해보면, 상당한 미인이다. 그런데 헤어스타일이나 화장 처리 등에서 여인이 지금 이 시대가 아니라 50~60년대쯤의 여인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 무렵의 잡지의 화장품과 향수 광고에 많이 실렸던 여인상이다. 아름다움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소비할 준비가 돼 있는 여자, 바로 그런 여성의 모습이 이 작품에서는 크게 부각되어 있다. 그러면 이 여인은 왜 그렇게 모든것을 소비해서라도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힘 있고 멋있는 남성'에게 그녀가 '소비'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의 객체가 되기 위해, 다시 말해 하나의 '상품'이 되기 위해 소비에 모든것을 내건 여성의 모습인 것이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글귀는 바로 그 지점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비단 50~60년대뿐 아니라 지금도 스스로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만들고 잇는 여성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문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작품이 만들어질 무렵의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작품은 89년 4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낙태 찬성론자들의 시위에 쓰였다. 시위의 가두 포스터로 사용돼 당시 낙태 찬성론자(pro-choice)의 여권신장 노력에 적극 공감하고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상징물이 됐다. 낙태 찬반론자들의 대결이 벌어지는 곳으로서 현대여성의 몸은 바로 보수와 진보,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해방적 질서, 기왕의 가치체계와 새로운 가치체계가 충돌하는 장이 아닐 수 없다. 바바라 크루거는 이 작품을 여성운동 시위의 선전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명확히 압축해 보인 것이다. 이 작품과 대척점에 서 있는, 여전히 잔존하는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혹은 그에 기반한 전제적 폭력을 그린 작품으로는 86년작인 <로이 장난감>이다. 들고양이가 먹이를 물고 있는 사진을 삼등분한 뒤, 아래쪽에 '할테면 해봐라'란 글귀를 집어넣었다. 재미있는 것은 삼분한 화면의 맨위 오른쪽에 작은 사람얼굴 사진이 하나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50년대 미국 사회에 '빨갱이의 사냥'의 엄청남 회오리를 몰고 왔던 매카시 선풍, 그 선품의 일익을 담당했던 로이 콘의 얼굴 사진이다. 이로써 먹이를 물고 있는 들고양이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법의 이름을 빈 폭력이다. 게다가 '어서 할테면 해봐'(Go ahead, make my day)란 문장은 악당들을 자극해 덤비게 해놓고 무참히 죽이는 영화속의 말이다. 비록 '정의의 사자'라고 하더라도 남성우월주의의 전제적 폭력을 앞세울 때 매카시 선풍에서 보듯 그것은 쉽게 '악'으로 귀결될 수 있다. 앞서 <무제>가 시사하듯 여성이 억압을 받아온것도 나름대로 정의와 선, 질서를 주장하는, 이런 전제적 폭력에 의해서였다. 이같은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크루거가 91년 메리 분 화랑에 내 건 대형설치 작품은 모든 폭력, 혹은 폭력성 일반에 대한 그녀의 집요한 페미니스트적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집약한 작품이다.울부짖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바탕으로 '모든 폭력은 무가치한 상투성의 삽화이다'(All violence is the illustration of pathetic stereotype)란 글귀를 넣어 설사 어느 명분을 내걸어도 폭력 자체는 정당화 될 수 없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가 단순, 명료한 사진 이미지와 짧은 문장을 멋지게 혼합한 일련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데는 그녀가 광고계에서 편집일을 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 광고포스터와 잡지 광고에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과 순간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 그녀는, 현대미술의 영역을 파고들면서 그만큼 신속한 효과를 낳은 이미지와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바바라 크루거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중의 하나인데, 그녀의 모든 작품의 말들과..화면의 조화는 감각적이기도 하고,내면을 파고드는 느낌이 든다. 좋은 예술작품은,사람의 내면을 touch,하고 last...되는것 같다.(방금 Ano보드에서 my hearts will go on이라는 글을 보았는데 사랑에 대한 그 글의 가사와 좋은 작품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바라 크루거와 비슷한 계열의 제니 홀져란 작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인데, ...둘 다 작품을 보았을때,너무 느낌이 강하고 도전적인 느낌도 들어서 작품에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아주 강한, 분명한 사실이라는 주장 앞에서, 뭐라고 반론을 제기한다거나..의문을 갖기 힘든..그런 느낌을 받았다.... 누구 barbara kruger나 jenny holdger 웹사이트 아시는 분은 올려주세요. 그림은 역시 ..말로 해서는 안되고, 봐야죠..그래서 fineart보드가 썰렁한가봐요. 사진도 올릴 수 있으면 나날이 번성할텐데..... 비가 아까는 차분히 내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퍼붓는 느낌이 드네요. 비소리와 형광등은, 어떤때는 잘 어울리는것..같군요. My painting------->http://users.unitel.co.kr/~painter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