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ucationLearning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lab5.hsg.usu.edu> 날 짜 (Date): 1999년 7월 19일 월요일 오전 04시 13분 53초 제 목(Title): 젊은이여....(박노해) 경제난국을 한 고비 넘긴 듯하자 주식투자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직장인.주부.농어민.대학생 할 것 없이 주가 등락에 촉각을 세우고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고 있다. 요즘 우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저 친구 주식값이 떨어졌구나 짐작하면 십중팔구 틀림없다는 얘기다. 온 국민이 공인된 투기판에 들떠 있는 모습이다. 이제 다시 돈 바람인가. 이 투기 붐 너머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정말 우리에게 미래가 있는가? '그 나라의 미래를 보려거든 숲과 젊은이를 보라' 는 말이 있다. 푸른 숲이 우람우람 자라고 젊은이의 눈빛이 살아 있다면 그 나라엔 미래가 있는 것이다.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온몸으로 현실에 도전하면서 넓고 깊은 바다를 꿈꾸는 젊은이는 그 자신이 이미 희망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젊은이들에게 원대한 꿈이 있는가? 당장 '전백련 (전국백수연합)' 에라도 가입해야 될 처지인데 꿈이 무슨 의미인가.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살벌한 시대에 무슨 사치스런 꿈이고 이상인가. 그러나 젊은이의 꿈과 이상은 미래의 현실이다. 꿈은 가져도 좋고 안 가져도 좋은 것이 아니다. 꿈을 가질 때만 세상의 모든 사건과 정보와 인연들이 살아 있는 의미의 그물망으로 포착된다. 꿈이 있을 때만 덜 중요한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선택의 능력이 생기고, 한정된 시간과 생명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꿈이 있을 때만 유혹을 이겨내고 다시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꿈이 있을 때만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단순히 나이와 함께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간다. 가슴 깊이 간직한 꿈이 있는 사람만이 나이 들수록 새로워지고 나이 들수록 아름다워진다. 미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늘 푸른 청춘이다. 세상의 '평온한 저녁' 을 꿈꾸며 격동하는 시대의 어둠 속을 불처럼 내달려온 내 젊은 날이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벽, 얼어붙은 벽, 단절의 벽이었다. 첫새벽이면 냉수마찰을 하고 벽 앞에 좌정한 채 나는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예수.붓다.간디.마르크스.체 게바라.원효.이순신.다산.추사…. 나는 그분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 특히 긴 호흡으로 '재창조하는 삶 (double life)' 을 이룬 현대의 인물들에게서 영감과 자극을 받았다. 중국의 덩샤오핑 (鄧小平) 은 항일 투쟁기와 건국의 시기에 놀라운 카리스마를 떨쳐 보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세번이나 숙청당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70살이 다 된 나이에 문화혁명을 주도한 4인방에 의해 대륙의 변방 농촌으로 하방 (下放) 당했을 때였다. 그는 스스로 논밭을 일구고 닭을 치며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아들은 홍위병들에 의해 척추가 부러진 채 불구의 몸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과 접촉이 금지되고 정보도 차단됐다. 그러나 鄧은 매일 일터에서 돌아오면 총검을 든 감시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40분씩 마당을 걸었다. 대륙의 지평선에 붉은 노을이 질 무렵 어둑한 마당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묵묵히 돌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키 작은 노인 하나! 그는 70살이 되던 해에 부총리로 복권돼 정력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시련은 그치지 않았고 4인방의 쿠데타로 또다시 도피여행을 떠나야 했다. 鄧은 덜컹대는 호송차 바닥에 누워 중국 대륙을 누비며 항일전 시대의 동지들을 규합했다.숨막히는 더위에 눈이 짓무르고 연신 터져나오는 기침에 시달리면서도 鄧은 "시간이 없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다" 며 강행군을 계속했다. 마침내 4인방은 체포되고 중국은 鄧의 개혁노선으로 나아갔다. 그의 생사를 건 투쟁은 그후 20년간 지속됐다. 90살이 넘자 鄧은 세대교체에 전력투구했다. 절대권위와 권력을 지닌 자신이 사라지면 중국은 자칫 내전의 불길에 휩싸일 위험이 있었다. 鄧은 혼신의 힘을 다해 후계자들의 인물됨을 저울질하며 그들 사이의 힘 관계를 조율해 나갔다. 그는 무서운 절제력으로 노욕을 억제해 자신의 신격화를 금지하고 그림자처럼 뒤로 물러갔다. 그리하여 오늘의 안정된 지도체제를 구축해놓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덩샤오핑의 장엄한 투혼으로 늙고 잠들었던 거대한 중국은 힘차게 살아나 밝은 미래를 향해 약동하고 있다. 만델라와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도 미래를 품은 사람, 미래를 품은 조직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백인 독재정권의 탄압이 점점 유혈로 치달아가는 정세에서 만델라는 '민족의 창' 이라는 무장투쟁 조직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가장 급진적이고 과격했던 이 조직은 ANC로부터 거부당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승인을 받게 되었다. 긴박하게 고조돼가는 투쟁의 불길 속에서 ANC 지도부는 주목할 만한 결단을 내렸다. 당장 일손도 달리고 재정도 취약한 형편이었지만 유능한 청년들을 선발해 유럽으로, 옛 소련으로 유학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지금의 남아공 대통령 타보 음베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1962년 그들이 고국을 떠나 영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만델라와 선배들은 그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 변화의 시대가 왔을 때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 그리고 얼마 후 만델라는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저 악명 높은 로빈슨 감옥의 돌 깨는 노역장에서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만델라는 함께 구속된 다른 지도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그것은 60년대 남아공에서는 누가 봐도 유별난 짓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새로 감옥에 들어오는 신세대 운동가들을 찾아 쉼 없는 열정으로 토론하고, 백인 교도관들을 통해 몰래 신문을 들여와 보면서 바깥세계의 변화된 정보를 감지하려고 극성이었다. 그런가 하면 옥중 처우 개선을 위한 긴장된 투쟁과 동시에 유연한 협상을 통해 자기 역량을 축적했다. 한편 음베키 등은 한시도 조국을 잊지 않고 미래 남아공을 경영할 실력을 길러나갔다. 만델라가 감옥을 사는 28년 동안 음베키는 망명객의 몸으로 'ANC 외무장관' 으로 불리며 국제 무대에서 만델라 석방운동과 ANC 국제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만델라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백인정권과의 단독협상을 시도했다. 조직의 사전승인도 없이 과격한 무장투쟁 조직을 만들었던 만델라가 이번에는 대타협의 모험을 독자적으로 감행해 남아공의 운명을 개척하려 한 것이다. 결과는 백인통치의 종식이었다. 인류 최후의, 최악의 인종차별 통치는 그렇게 해서 끝장이 났다. 1백50년 전통을 가진 ANC라는 탄탄한 운동조직, 긴 호흡으로 역량을 나누어 미래 인물을 키울 줄 아는 훌륭한 선배들, 그리고 스스로 처절하게 변화를 받아들여 미래를 품어내는 결단이 있었기에 만델라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격렬한 싸움 속에서 길러낸 만델라의 아름다운 얼굴과 ANC는 그렇게 온 인류 앞에 빛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만델라는 충분히 연임할 수 있는데도 음베키 세대에 권력을 넘겨주었다. 만델라는 단지 27년의 긴 감옥살이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27년간의 미래 준비, 27년의 단절을 뚫고 살아난 재창조 능력 때문에 그는 '짧은 권력 긴 감동' 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덩샤오핑도 만델라도 최악의 상황과 패배의 절망 속에서 미래를 품어 살려낸 '재창조하는 삶' 의 모범이다. 이들은 한시도 꿈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바탕은 자기실력이었다. 과거의 경력에 안주하지 않고 새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쉬지 않고 단련하고 공부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뚫고 나간 사람들이었다. 90살이 넘도록 현장을 지켰던 이들은 나이 들수록 푸르러지는 젊은이 중의 젊은이가 아닌가. 이 분들에 비하면 우린 아직 젊고 조건도 좋다. 그런데도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조로증에 빠져버리는 듯하다. 30대 중반만 되면 더 이상 물어볼 것도 배울 것도 없다는 듯 열정이 사라져버린 눈빛으로 과거를 까먹고 산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보수화하고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게 된다. 새로운 실력을 키우기보다 학연.지연.집안 따위의 연줄에 의존하려 든다. 긴 호흡으로 꽃피워 가는 첫 마음을 잃어버린 채 승패 경쟁과 줄서기에 조급해진다. 나이보다 더 빨리 정신과 영혼이 늙어간다. 어느덧 '조로증' 은 우리 사회의 한 특징이 되고 우리 젊은이들의 가장 큰 덫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성장곡선' 과 '운동곡선' 을 주목해 본다. 성장곡선이란 이미 실현되고 가치평가를 받은 역량을 말한다. 운동곡선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평가받지 않은 숨은 역량, 지금 안에서 길러지고 있는 역량이다. 성장곡선이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운동곡선이 떨어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나 조직체는 머지않아 시들게 된다. 21세기의 냉엄한 변화 앞에서 미래가 있는 사람인가? 재창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그 답은 날마다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하고 절제하는가,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기록하는가, 젊은 감성과 영성을 닦아 나가는가, 새로운 인연을 확장하면서 연대하고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찬 미래는 하루 아침에 오지 않는다. 이 고통의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만 한다고 미래가 저절로 밝아오지 않는다. 깨어 있는 창조적 젊은이들이 지금 여기서, 비록 작지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간다면 저 지친 눈빛들이 들꽃처럼 살아나리라.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돌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