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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30일 금요일 오전 12시 00분 48초
제 목(Title): 한/정운찬 재벌의 은행소유 안된다 


[논단] /재벌의 은행 소유 안된다/정운찬/서울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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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깊어가나 경제개혁은 부진한 가운데 재경부장관은 이달초 워싱턴 방문중 
은행법을 개정하여 은행주식에 대한 1인당 소유지분 한도를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은행인수 준비에 여념이 없음은 물론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작업에 매진해야 할 다급한 이 순간에 총풍, 국감, 세풍 
등에 가려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틈을 타 은행법을 반개혁적으로 개정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은 한국경제의 생존을 좌우할 
절대절명의 과제다. 과다한 차입금에 의존하여 과잉중복투자를 일삼는 재벌구조, 
그리고 천문학적 부실채권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금융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한국경제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벌이 은행을 소유토록 
허용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재벌을 핵심 개혁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개혁의 주체 역할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번 은행법 개정이 정부의 개혁의지를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부가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한다면 그것은 정부가 재벌개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든지 아니면 재벌의 저항에 굴복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은행부실의 원인을 주인이 없는 탓이라고 돌리는 이들이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은행의 부실은 표면상으로 부실채권으로 나타나지만 부실채권의 근본원인은 재벌의 
부실에 있다. 그런데 재벌은 주인이 있다. 이것은 경영성과와 주인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다는 증거다. 미국의 일류은행들은 눈에 띄는 주인이 없는데도 잘들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대주주에 대한 여신한도를 강화함으로써 재벌이 은행을 사고금화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은행계정에만 적용되는 현행 여신한도를 
신탁계정으로까지 확대하고 또 그 비율을 은행 자기자본의 45%에서 25%로 축소하는 
것은 대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여신기업에게 적용해야 할 당연한 조처이다. 그리고 
이미 국제통화기금과의 협의를 통해 동일인 및 동일계열기업군 여신한도를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낙후한 
금융감독시스템을 일부나마 개선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를, 마치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있다. 

가장 건전한 금융감독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은행의 도산이 
비일비재하다. 그 원인은 도산한 은행 자체의 부실보다는 그 대주주인 
은행지주회사의 부실인 경우가 더 많다. 완벽한 금융감독시스템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규제가 있으면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도 고안되는 것이며, 특히 
경영부실에 직면한 대주주는 산하 은행을 악용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부실재벌의 자회사로 있던 종금사들이 모기업 기업어음(CP)을 대상으로 이중판매, 
신용등급 조작 등의 불법을 저지르며 과잉투자를 부추기고 퇴출해야 할 기업을 
연명시켜 준 사례들이 과거의 일로만 치부될 수는 없다. 

또한 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적재적소에 빌려주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기업의 경영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취득·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은행은 방대한 기업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정보기관'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자금운용에 대한 감독시스템도 미비하지만, 정보운용에 대한 감독시스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정보의 저수지인 은행을 재벌에게 맡긴다는 것은 공룡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것이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순간 재벌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한국경제는 천길 나락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정부의 현명한, 
아니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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