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8월 23일 일요일 오전 06시 04분 32초 제 목(Title): 정운찬/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 정운찬 I. 머리말 1987년 6 9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는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고 또 바꿀 수 있는 것만 보아도 정치적 민주주의는 확실히 신장되었다. 그렇다면 경제적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경제적 권력은 정치적 권력과는 달리 직접 관찰하기가 쉽지 않아서 때로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사되곤 하기 때문에 국민 소득이나 물가와 같은 거시경제 지표만 봐서는 경제 민주화 정도를 파악할 수 없으며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경제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가장 소극적 의미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란, 원하지 않는 거래를 강요당하지 않고 거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칼 포퍼Karl Popper의 민주주의관을 원용하여 경제적 민주주의를, "경제 사회의 구성원간에 이해가 상충할 때 각자가 별손해 없이 다른 구성원과의 교환을 거부할 수 있는 장치"로 정의했다.1) 이러한 정의는 판매자seller와 구매자buyer가 존재하는 모든 교환경제에 적용된다. 하지만 이를 현실에 비추어 해석할 때는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거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없도록 경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도 가진다. 지난 몇 년 간 우리나라에서는 소극적 의미의 경제적 자유는 강조된 편이었으나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 구조를 타파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무시되어왔다. 자유시장 원리가 복음처럼 전파되면서 규제 완화를 비롯한 많은 '개혁' 조치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군사 독재 시절 같은 강제적 자원 배분과 통제는 줄어들었지만, 이것이 강자 지배 구조를 개혁하지 못한 채 진행된 점에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시장 원리와 경제적 자유는 오히려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 구조를 합리화시켜주는 면죄부에 불과할 수 있다. 특히 재벌이라는 무소불위의 경제 주체가 존재하며 경제의 심판 격인 금융 부문이 뇌사 상태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 이후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사례들은 너무나 많았다. 경제 민주화를 앞당겨야 할 금융실명제는 애꿎은 중소 상공인들을 파산으로 내몰았으며, 공정 경쟁을 촉진해야 할 규제 완화는 소수에 의한 경제 지배를 확대시켰다. 급기야는 경제의 혈맥인 금융 기관마저 한국은행이 찍어주는 돈으로 연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 민주화를 촉진하려던 여러 시도들이 오히려 경제를 왜곡시키면서 사실상 비민주적인 결과들을 초래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경제적 강압을 적발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합법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비민주적인 경제 구조를 찾아내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필자는 경제적 민주주의의 적극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본 후 우리 경제의 민주주의 정도를 진단해보자. II.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와 궤를 같이해왔으며, 시장경제가 아닌 경제 체제에서 민주적 국민 국가가 이루어진 예는 없다고 한다. 그만큼 시장은 민주주의와 동일시되어왔다. 다시 말해 정치적 민주주의는 시장에 의해 뒷받침되고 시장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의해 원활한 작동을 보장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답하려면 먼저 민주주의적 권력 관계가 어떤 것인지 살펴본 후, 시장이 민주주의를 보장해줄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봐야 한다. 민주적 권력 관계는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 혹은 지배자는 정치적 영역에서는 정치가요, 경제적 영역에서는 기업가(특히 대기업가)다.2) 이 지배자와 피지배자(일반 국민)간의 관계가 적절히 설정되어야만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권력이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하면서 행사되어야 한다.3) 첫째, 권한은 책임을 수반하도록 한다. 둘째, 권한은 특정인named person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직위role player에 부여되어야 한다. 셋째, 권한을 가진 자는 이를 사적으로 남용하지 않는다. 넷째, 권한을 가진 자는 임의로 다른 사람(특히 자손)에게 권한을 넘길 수 없다. 다섯째, 권한을 가진 자는 이를 미리 정해진 제한된 목적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여섯째, 권한은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보장하는 룰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막을 수 있고 민주주의적 권력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 조건들은 매우 자명한 것이며, 현실에 잘 반영되고 있는지의 여부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조건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권력의 기본 요소인 사유재산권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유재산권은 경제 주체들의 자율과 창의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경제 민주화의 바탕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유재산권이 특정인에 의해 사적으로 광범위하게 행사될 수 있고 또 자손에게 상속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와는 상이한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사유재산권의 이중성 때문에 민주 국가라 할지라도 경제적 권력 관계는 민주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는 경제민주주의의 필요 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개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권력자, 즉 기업가가 권력(사유재산권)을 남용하지 못하고 정당하게 사용하게끔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시장이 곧 민주주의인지, 다시 말해 시장이 민주주의적 권력 관계를 보장해주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서는 경제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시장에 내재해 있느냐가 관건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이 '경쟁의 압력'을 통해 기업가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시장이 완전 경쟁적으로 작동한다면, 소비자들은 기업가가 생산한 상품을 사거나 사지 않음으로써 (정치가에게 투표하는 것과 같이) 일종의 투표권 행사를 할 수 있다. 즉, 기업가가 잘못된 판단을 할 때에는 그 기업가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국내시장이 경쟁적이지 않다면 시장 개방을 통해 해외로부터 경쟁의 압력을 끌어들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현실에서의 '경쟁'은 그렇게 순수하고 민주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Chandler는 대기업 경영자들이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이미 '계획'이라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으로 대체해버렸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한 나라 경제의 계획가nation動 economic planners가 되어버린 경영자들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도 했다.4) 그러므로 자유시장 자체가 경제민주주의를 확보해준다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 지배자가 자유 경쟁의 본래 기능을 왜곡시키는 상황에서의 시장은, 민주주의보다는 소수 지배로 흐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의 경제적 권력(재산권)이 정당하게 획득·행사되도록 하고 그 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만 비로소 시장을 통해 경제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이러한 장치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필요하다면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5) III. 우리나라의 경제민주주의 우리나라의 경제민주주의는 어떠한가? 경제 민주화의 정도는 경제적 강자(지배자)의 힘을 약자(피지배자)가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로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 지배자인 대기업가 또는 재벌은 피지배자인 소비자와 노동자의 자유로운 선택권(또는 경제적 투표권)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우리의 상황은 일찍이 갤브레이드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기업이 생산물의 주기product cycle를 계획하고, 얻고자 하는 수익률을 미리 결정한 후 대규모 광고를 통해 그들 상품에 대한 수요를 창조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6) 결국 소수에 의한 경제력 집중과 남용이 적자 생존의 자본주의 원리를, 강자에 의한 구조적이고도 영구적인 지배 원리로 바꿔놓고 말았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강자 지배 구조의 실상을 알아보자. 1) 경제력의 집중 ─기업 부문 우리 경제에서 소수의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경제 전체를 보아도 그렇고 어떤 산업 하나만을 보아도 그런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제력 집중은 특정 산업 내의 독과점을 넘어서 산업의 경계를 초월한 전반적 집중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재벌'이라는 거대 기업 집단이 존재한다. 30대 재벌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하며 중화학 공업에서는 50%에 이르고 있다. 광공업 출하액은 30대 재벌의 비중이 1977년 32%에서 1990년 35%, 1992년 39%에 이르며, 부가가치 창출액도 1977년 29%, 1990년 30%, 1992년 36%나 된다. 또 이들은 1995년에 138개 시장 지배적 품목 중 3분의 2인 90개 품목을 공급하였다. 시장 지배적 품목(독과점 품목)의 수 자체도 1984년 71개에서 1988년 122개, 1995년 138개로 늘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4대 또는 5대 재벌에 의한 독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들어 5대 재벌의 매출액은 GDP 대비 60% 수준으로 육박해왔다. 1995년에는 주요 공산품 중 48개 품목이 5대 재벌에 의해 독과점적으로 공급되었다. 이렇게 공급 측면에서 소수 재벌에 의한 독점이 심화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자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 자금의 편재에 의해 더욱더 부채질되고 있다. 자료의 제약으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994년에 30대 재벌에게 은행 자금의 16%, 제2금융권 자금의 40% 이상이 흘러들어간 점을 볼 때 그 심각성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한보 사태, 기아 사태 등으로 웬만한 재벌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4∼5개의 확실한 재벌에게로 자금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재벌, 그것도 큰 재벌만이 살아남게 되면서 중소기업들은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다. 1993년에는 3,396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였고, 1994년에 4,498개, 1995년에 6,026개, 1996년에 5,150개, 1997년에는 7월까지 이미 1993년 전체 수치보다 큰 3,997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했다. 이들 중에는 비효율적인 기업도 있었겠지만 자금 결제시 대기업의 횡포와 금융 기관의 외면으로 쓰러진 기업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은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건전하고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경제 민주화에 명백히 어긋난다. 물론 소비자는 재벌 기업 제품이 좋다고 여겨 그들 제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금융 기관은 이윤을 획득하려고 재벌에게 돈을 빌려준다. 외양으로는 아무런 폭력이나 강제가 없다는 점에서 고전적 경제민주주의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실상 몇몇 재벌에게 힘을 몰아주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재벌이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확대시키면서 그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자나 금융 기관의 입장에서 당장은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의 폭을 얼마나 좁히고 있는지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더라도 개별 경제 주체의 입장에서 적어도 당장은 이에 대항할 힘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 부문: 분배의 형평성 다음으로 개인간의 경제력 배분 문제를 살펴보자. 이 문제는 경제력을 투표권에 비유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돈을 투표권이라고 생각하자. 경제적 투표권은 정치적 투표권과 달리 한 사람에게 하나의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돈에 비례하여 투표권을 주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즉, 1원에 대해 하나의 투표권을 준다고 가정하면 100만 원을 가진 사람은 100만 개의 투표권을 가지며 1억 원을 가진 사람은 1억 개의 투표권을 가지는 셈이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이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원 이용에 대해 자신의 투표권 수만큼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경제력을 가질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정치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엔 안보리의 의사결정권은 상임이사국에만 주어지며, 한 직장의 노조위원장을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은 소정의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부여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투표권이 사람들마다 다르게 주어지는가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경우에 사람들 사이에 경제력이 불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면, 소득과 부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가지고 비민주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사실 분배의 형평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충분치 않다. 지니 계수나 상위 소득 계층의 소득 점유 비중 등의 통계만으로 판단하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외국에 비해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7)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이는지 자문해보자. 그 대답은 아마 지극히 부정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부당하게 높은 소득을 얻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부당하게 돈을 버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지대추구rent seeking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지대추구란, 효율성보다는 희소성에 근거하여 소득을 올리고자 하는 행태를 말한다. 즉, 힘들여 경쟁하기보다는 경쟁을 배제하여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까지도 지대추구에 빠져들고 있다. 경쟁 없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만 하면,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해도 너나할것없이 몰려든다. 지대추구와 불로소득이 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개인 부문 소득에서 이자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서만도 쉽게 알 수 있다. 1990년에 개인 소득 중 6%에 지나지 않았던 이자 소득이 1993년에 8%, 1995년에는 11%로 늘었으며, 이는 일본의 5%(1994), 독일의 6%(1993)를 능가하고 미국과 영국의 10%(1993)에 맞먹는 수준이다. 근로 소득의 불평등보다 자산 보유의 불평등이 더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분배의 형평성을 한층 더 악화시킨다.8) 또한 우리는 각종 투기 게임에서 경제적 강자가 정보력을 이용하여 많은 부를 획득하고 동시에 경제적 약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극도로 심화되어온 것을 똑똑히 보아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분배의 민주화는 지대추구를 어떻게 막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고 소득을 얻는 사람이 늘어나고 또 그러한 소득이 커질수록 분배에 관한 사회적 불만은 계속되고 경제 민주화도 요원해질 것이다. 2) 경제력의 남용 경제력의 분배 문제가 투표권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이 존재할 때 그 격차가 사회적으로 납득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면, 경제력 남용 문제는 투표권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신의 투표권에 해당하는 만큼의 의사결정권만을 행사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경제적 비민주성은 소수에 의한 경제력 남용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경제적 강자가 경제력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저지르는 횡포는 이제 한 나라 경제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재벌의 경영 행태가 입증해준다. ─재벌의 횡포 우리나라의 재벌은 총수 1인 중심이다. 중요한 의사 결정은 모두 총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과연 재벌 총수는 자신이 거느리는 기업들의 운명을 좌우할 권리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재벌 총수가 갖고 있는 주식 지분만 보아도 명확히 알 수 있다. 30대 재벌의 총수와 그들의 특수 관계인이 갖고 있는 지분은 10.5%(1995년 3월)에 불과하다. 재벌 총수 및 특수 관계인의 소유 지분 (1995년 3월말 현재, %) 현대 삼성 대우 엘지 선경 5대 재벌 30대 재벌 재벌 총수 3.7 1.5 3.9 0.1 10.9 3.0 4.9 특수 관계인* 12.1 1.3 2.8 5.6 6.5 5.5 5.6 *: 배우자,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계열 회사 임직원, 총수가 지배하는 비영리 법인 등.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하지만 이들은 100%의 지분을 가진 양 배타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한다.9) 뿐만 아니라 총수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이사회나 감사의 기능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소액 주주나 기관 투자가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액 주주는 재벌 총수보다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총수와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최근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모 그룹은 내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룹 회장의 독단적 결정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을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았다. 또 그룹 총수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한 재벌 그룹은 총수 한 사람의 판단으로 수많은 주주의 자금을 비생산적인 정치 게임에 낭비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당한 경제 권력은 총수의 자손에게 마치 전제 권력처럼 세습되고 있다. 재벌들이 각종 변칙적 자본 거래에 의한 증여, 공익 법인 설립 등의 방법으로 부와 경영권을 세습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한 상속세와 증여세의 납부 실적을 보면 정부도 이를 막을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1994년의 국세 중에서 상속세와 증여세의 비중은 1.5%로 일본의 4.9%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또 80년대의 10년 동안 4대 재벌이 납부한 상속세와 증여세는 256억 원으로, 정상적으로 납부되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과세 표준은 453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10년 동안 4대 재벌의 상속 및 증여 대상 금액이 500억 원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제력의 세습은 재벌 지배의 확대 재생산을 가능케 함으로써 시장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성을 해쳐왔다. 또한 경제력 격차에 대한 국민적 납득을 불가능하게 하여 경제 민주화를 더욱 요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효율성 면에서도 창의적인 경영인들의 경영 참여를 제약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경제력 남용 구조의 고착화 경제력 남용은 여러 수단을 통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재벌은 선단식 또는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산하에 수많은 기업들을 묶어 공동 운명체를 형성한다. 한 계열사의 파산은 그룹의 파산을 야기하고 그룹의 파산은 국민경제의 위기라는 공식을 만들어 국민경제를 볼모로 삼음으로써 이들에 대한 견제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였다. '우리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협박하는데 누가 용기 있게 칼을 들이대겠는가? 재벌의 확장은 꾸준히 진행되어왔으며 김영삼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어왔다. 5대 재벌의 계열사 수는 1993년 186개에서 1994년 199개, 1995년 204개, 1996년 210개로 늘었다. 해외 현지 법인을 포함시켜보면 1996년에서 1997년 7월 사이의 1년 7개월 동안 삼성그룹은 77개, 현대그룹은 47개, 대우그룹은 93개, 엘지그룹은 31개의 업체를 새로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이러한 재벌의 세력 확장은 산업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비관련 다각화'를 특징으로 한다.10) 이들은 자금 차입 등 각종 금융 수단을 동원하여 계열 기업 수를 늘린 뒤 소속 계열사들을 상호 지급 보증과 상호 출자 등 자금의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어 그룹 전체가 파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영구적 경제 지배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자금 관계는 재벌 기업에게 부당한 경제력을 선사한다. 특히 계열 기업간 출자는 실제로 투입된 자본보다 훨씬 많은 가공 자본을 형성하여 엄청난 부당 이득을 안겨준다. 예컨대 계열 기업 갑이 을에 투자하고 을은 병에 투자하며, 다시 병이 갑에 투자한다면, 실제 자금은 한푼도 투입하지 않고도 서로 자본금을 증가시킬 수가 있다. 이들은 이렇게 증가시킨 자본금으로 신용 평가에서 중요한 재무지표로 이용되는 자기 자본 비율을 부풀리고, 자기 자본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지급 보증 한도를 높인다. 재벌의 상호 출자 및 지급 보증 (1995년 3월말, %) 현대 삼성 대우 엘지 선경 5대재벌 30대재벌 상호출자/자기자본 23.1 16.5 24.3 20.1 34.7 22.0 22.3 지급보증/자기자본 197.7 43.0 155.7 64.3 45.0 107.8 161.9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재벌 지배 구조의 고착화는 중소기업의 성장 기회를 박탈해 불균형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부실한 재벌 소속 기업의 원활한 퇴출을 막음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에도 악영향을 준다. 이러한 위험성을 드러낸 것이 바로 최근의 기아 사태다. 기아그룹의 위기는 원래 몇몇 계열사의 부실에서 초래되었지만 지금은 전체 계열사가 난파선에 동승한 격이다. 이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준 금융 기관도 덩달아 부실해졌으며, 국민경제의 위기 상황이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 결국 정부는 기아가 파산할 경우의 파장이 엄청날 것을 우려하여, 한은특융이라는 극단적 조치와 함께 각종 변칙적 부도 방지책을 동원하였다. 기아의 장래가 어떻게 되든 기업 부실의 부담은 이미 국민에게 상당 부분 전가되었다. 기아 사태는 앞서 지적한 재벌 지배 구조 공식이 현실화한 사례이다. 재벌은 내부적 공동 운명체 형성과 함께 이들의 지배를 공고히해줄 외부의 안전판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정경 유착과 재벌의 금융 지배, 그리고 재벌의 언론 장악이다. 정경 유착은 한보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심각한 상태다. 재벌이 정치가와 관료를 사실상 장악하여 자원 배분에서 각종 특혜와 비리를 일삼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책금융을 통한 저렴한 자금 수혜, 공기업 민영화를 구실로 한 세력 확장, SOC 사업, 원전 및 방위 산업 등 국책 사업 참여 등 합법적인 수단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권력 실세를 통한 각종 비리까지 정경 유착의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정경 유착을 통한 손쉬운 지대추구는 자연히 경영 혁신이나 기술 개발보다는 로비에 많은 자원을 투입시키고 경쟁력은 있더라도 로비에 소홀한 기업을 망하게 하여 경제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저해한다. 정부도 은연중에 재벌 보호에 열중하게 되어 비민주적 경제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한편 재벌의 금융 지배도 이미 위험한 지경이다. 제2금융권에서는 주요 금융 기관이 재벌 계열사로 편입된 지 오래이고 이제는 은행마저 재벌의 먹이가 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말 현재 4대 재벌의 은행 주식 보유 현황은 다음과 같다. 4대 재벌의 은행 소유 현황 (괄호 안은 지분율, %) 삼성: 조흥(2.8), 상업(7.0), 제일(4.0), 한일(4.8), 서울(3.8), 외환(1.1), 신한(3.4), 한미(18.6), 하나(3.4), 평화(1.3), 대구(5.7), 부산(1.0), 경기(1.6), 전북(1.2), 강원(1.2), 경남(2.4) 현대: 제일(2.2), 한일(2.0), 서울(2.0), 강원(11.9) 대우: 한미(18.6) 엘지: 제일(3.0), 한일(2.5), 보람(7.6), 제주(1.8) 자료: 은행감독원. 지금까지 은행은 주인이 없거나 정부가 주인이었다. 이제 금융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은행 주인 찾아주기'가 시작되면 가뜩이나 은행 지배에 혈안인 재벌들이 은행을 나눠 먹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의 은행 소유는 효율성은 차치하고라도 경제 민주화의 측면에서만 보아도 위험한 일이다. 재벌을 견제하고 위험한 투자를 제어해야 할 금융 기관이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재벌의 경제 지배 구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사를 돌이켜보면, 위험한 사업가일수록 은행이라는 편리한 자금 공급기를 소유하길 꿈꾸어왔고,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자신의 파산과 국가적 금융 위기를 동시에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아야 할 것인가? 재벌은 언론과 지식인마저 장악하여 지배 구조의 완성을 도모하고 있다. 재벌이 직접 소유하는 언론사는 상당수에 달하며 다른 언론사들에게도 주주로서, 대광고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는 문화일보(지분율 99.6%, 1994년말), 삼성은 중앙일보(69.8), 대우는 항도일보(90.0), 엘지는 부산문화방송(27.7)과 진주문화방송(15.0)의 대주주이다. 1994년에는 50대 광고주가 지출한 광고 금액의 65%를 30대 재벌이 썼다. 또 재벌은 삼성언론재단(삼성, 1995년 설립), 상남언론재단(엘지, 1995년), 서울언론재단(대우, 1981년), 신영연구기금(현대, 1977년) 등 언론 재단을 설립하여 언론인과 언론 관련학 교수에게 자금 지원을 해주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재벌은 내부적으로는 자금 관계를 통한 공동 운명체를 형성하고 외부적으로는 정경 유착, 금융 지배, 언론 지배를 통해 각종 안전판을 만들어 무차별적 세력 확장과 경제 지배 구조의 고착화를 도모해왔다. 재벌의 이러한 행태는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두는 건전한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경제는 겉으로는 자유시장경제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재벌 중심의 이상한 계획경제로 가고 있다. 재벌 중심의 전제적 경제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우리가 바라는 경제 민주화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IV.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 우리 경제의 민주화는 앞에서 논의한 재벌 문제 이외에도 여러 차원에서 논의해볼 수 있다. 기업가와 소비자, 기업가와 노동자,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여러 부문에서 민주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형윤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란 비전제적, 비소수 지배적, 비군사 독재적, 비독점적, 비명령적 경제 운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1) 그는 권위주의적 정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지배 체제가 비민주적 경제 운용을 가져왔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한 핵심 과제는 민주적인 노조, 농민 조직, 소비자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적 피지배자가 제 목소리를 내고 경제적 지배자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필자 또한 우리나라 경제 민주화의 본질을 '경제력의 공평한 분배'라고 규정하고 경제 개혁 의지를 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었다.12)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개혁 의지 없이는 소수에게 집중된 경제력을 평화적으로 분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들어 이 모든 과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문제가 오히려 악화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은 경제적 지배자, 즉 재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다. 김영삼 정권이 경제 민주화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재벌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 글에서 재벌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도 경제 민주화의 핵심고리가 바로 재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나라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재벌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재벌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존재하고 그들의 지배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한 경제력의 공평한 분배도, 피지배자의 제 목소리 찾기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재벌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재벌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시장경제의 발전'과 '재벌의 성장'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고도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재벌의 판단력과 능력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속박하는 족쇄들을 속히 풀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13) 그러나 과거 고도 성장의 이면에는 위기의 싹이 배태되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최근의 한보·기아 사태 등이 이것을 입증해주는 좋은 예다. 이제 재벌은 경제에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 문제도 그렇고 경제 남용과 불공정 거래 문제도 그렇다. 뇌물, 탈세, 담합, 내부자 거래, 차별 거래 등 시장 질서를 무시한 불법 행위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우리 경제의 운용 방식과 가치관마저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 재벌은 그 거대한 경제력으로 단순히 시장을 지배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시장 룰의 정립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임 참여자가 만드는 룰은 결코 공정할 수 없으며, 불공정한 룰에 따른 게임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재벌의 성장과 기업 발전을 동일시하는 시각을 버리고 재벌의 내부적·외부적 경제 지배 구조를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에서나 경제에서 오직 힘만이 통용되어 민주주의는 실종될 것이다. 사람들은 재벌이 만든 물건을 쓰면서 재벌을 위해 일하고 재벌이 만들어내는 가치관을 주입받고, 적자 생존 원리가 강자 생존으로 대체되면서 누구나 적자보다는 강자·대자가 되려고 할 것이다. 재벌 개혁이야말로 모든 개혁의 핵심이며 경제 민주화의 전제 조건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경제 개혁도 재벌 개혁 없이는 완전할 수 없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치른 비용은 엄청나다. 이를 헛되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재벌 공화국만은 막아야 한다.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주 1) 정운찬 외, 『도전받는 한국 경제』, (주)한국신용평가, 1990, pp. 31∼32. 2) Martin Carnoy and Derek Shearer, Economic Democracy, M. E. Sharpe, Inc., 1980. 3) Charles E. Lindblom, Democracy and Market System, Norwegian Univ. Press, 1988. 4) Alfred Chandler, Jr., 欺ntroduction,羅The Visible Hand: The Managerial Revolution in American Business, Harvard Univ. Press, 1977. 5)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오이켄조차도 시장은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6) John K. Galbraith, The New Industrial State, New American Library, 1967, p. 44. 7) 정운찬 외, 『도전받는 한국 경제』, (주)한국신용평가, 1990, pp. 49∼53. 8) 1990년에 소득의 지니 계수는 0.4인 데 비해 금융 자산의 지니 계수는 0.77로서 자산 보유의 불평등이 훨씬 심각하다. 9) 물론 계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들을 다 더하면 실질적 내부 지분율이 40∼60%에 이르지만 이것이 재벌 총수 1인의 독단적 경영권 행사를 합리화시켜줄 수는 없다. 10) 우리나라 기업 집단의 유형을 보면 전업형 기업 집단의 수는 1974년 57개에서 1984년 11개, 1989년 7개로 줄고 있는 반면, 비관련형 기업 집단의 수는 1974년 11개에서 1984년 24개, 1989년 30개로 늘어왔다. 11) 변형윤 외, 『경제 민주화의 길』, 비봉출판사, 1992, p. 11. 12) 정운찬 외, 『도전받는 한국 경제』, (주)한국신용평가, 1990, pp. 33∼61. 13) 재벌은 개념적으로 일반적인 대기업과는 구별해야 한다. 재벌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경제사 속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총수 중심의 족벌 경영 체제 아래 비관련 다각화와 무제한적 팽창을 추구하는 대기업 집단이다. 내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도 바로 재벌의 이러한 속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