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virt ( TЯIV) 날 짜 (Date): 1997년12월11일(목) 04시14분01초 ROK 제 목(Title): [한겨레21] 나웅배,한승수만 아니었어도... 나웅배·한승수만 아니었어도... (사진/구제금융 합의문을 발표하는 임창열 부총리와 캉드쉬 IMF 총재. 공정거래위가 시도했던 '채무보증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를 IMF는 요구했다.) IMF 신탁통치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은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하락에 따 른 외환위기. 해외 금융기관들의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신규대출 중단, 기존 대출의 연장 거부 및 회수로 외화부도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러 나 외환위기는 한국경제 위기의 한 외피일 뿐이다. 금융기관 대외신인도 하락의 근저에는 50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금융권 부실채권이 숨어 있고, 그 뒤에는 다시 금융기관 차입금에 의존한 채 확장경영을 일삼다가 부실 을 견디지 못하고 연쇄도산한 대기업들이 있다. 40년 관치경제가 키워온 썩은 상처 부실기업과 그들에게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금고문을 활짝 열어준 부실금융기관의 문제점이 40년 가까운 관치경제 아래서 치유되지 않고 곪 아 오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해 2백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서도 7%가 넘는 성장을 한 우 리 경제나 400% 이상의 높은 부채비율을 안고서도 확대경영에만 골몰해 온 재벌기업 모두 고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이 국가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경고 는 진작부터 있었다. 재경원의 한 간부는 “버블방식을 통해 고도성장을 해 온 국내 대기업의 경우 80년대 말부터 국내시장의 포화와 대외개방으 로 인해 독점이윤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기술개발 등으로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지 않고 확장일변도의 경영을 지속할 때 이미 위기는 예고돼 있었 다”고 말한다. 캉드쉬 IMF 총재는 지난 12월1일 스페인 <엘 파이스> 신 문과의 회견에서 “한때 유용했던 경제모델도 낡아 수명이 다하면 버려야 한다. 한국의 재벌기업과 인도네시아의 독점기업은 폐지해야 할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이 말이 재벌해체를 요구한 것이든, 아니든 한국 재 벌들의 독단적인 경영행태를 전면 개혁하라는 메시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IMF는 그 구체적인 압력으로 구제금융 지원조건에 재벌그룹 계열사간 채 무보증 폐지와 결합재무제표 의무화를 포함시켰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처럼 예견된 비극을 막으려고 사전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다. 공정거래위는 IMF가 최우선으로 요구한 재벌그룹의 채무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를 지난해 추진했 다. 그러나 공정위는 실패했다. 왜 실패했는가. 누가 반대했는가. 우리가 냉철하고도 정확하게 들여다 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더이상의 실패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그룹 계열사간의 채무보증은 계열사에 대한 출자와 함께 금융기관 차 입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다. 예를 들어 A그룹이 1백억원(자기자본)으로 a기업을 세운 뒤 은행에서 4백억원(부채) 을 빌려 오면 자기자본비율 20%에 부채비율 400%가 된다. A그룹은 다시 a 기업의 출자를 받아 자기자본 1백억원의 b기업을 세운다. b기업이 a기업 의 채무보증을 받아 2백억원을 빌려오면 다시 자기자본비율 33%에 부채비 율 200%인 회사가 생겨난다. A그룹은 결국 단돈 1백억원으로 각각 자산이 5백억원과 3백억원인 기업 2개를 거느리게 됐지만, 그룹 전체로 보면 자 기자본 1백억원에 외부차입 6백억원으로, 자기자본비율 14%에 부채비율이 600%에 달하는 빚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A그룹은 똑같은 방식으로 순차적 인 출자를 통해 c,d,e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이같은 채무보증은 평상시에 는 부실기업의 퇴출을 막아 산업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금 융기관이 e기업을 부도내고 싶더라도 채무보증을 선 나머지 계열사 d, c, b, a기업의 연쇄부도 우려 때문에 추가로 자금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재벌그룹의 대마불사 신화가 생겨난 것이다. 역으 로 금융기관들은 절대로 부도가 나지 않는 재벌그룹 계열사들을 상대로 땅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를 해왔다. 그러나 채무보증은 최악의 경우에 는 1개 부실 계열사 때문에 수십개의 계열사들이 흑자를 내고서도 함께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몰고 오기도 한다. 올해 국내 대기업들의 연 쇄부도가 바로 그것이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쇠사슬로 엮인 수많은 조조 의 배들이 손권의 화공작전에 모두 잿더미가 되었듯이. 결합재무제표 의무화 재경원이 반대 공정위는 96년 5월 초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계열사에 대한 채무보증 한도 를 자기자본의 200%였던 97년부터 0%로 낮추겠다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 고했다. 재벌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이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 나 복병은 뜻밖의 곳에 있었다. 나웅배 당시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재경원 금융정책실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들의 부담만 가중시킨다” 는 논리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았다는 것도 허사 였다. 결국 공정위는 97년부터 채무보증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로 낮추 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공정위의 자체조사 결과 9 6년 4월1일 기준으로 30대 재벌그룹의 계열사에 대한 평균 채무보증비율 이 자기자본의 55.9%로 나타났기 때문에 100%로 한도를 낮추는 것은 사실 상 큰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30대 재벌그룹에 대해 그룹 단위의 결합재무제표 의무화를 추진 한 것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결합재무제표는 채 무보증이나 내부거래를 통한 재벌그룹 계열사 간의 변칙적인 자금, 상품 거래 내역을 꿰뚫어 보여주는 투시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그룹의 a 기업이 연간 1조원어치의 제품을 생산한 뒤 같은 계열사인 b기업에 수출 을 맡기게 되면 유통마진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1조원의 매출이 이중으로 계산된다. 결합제무재표는 이런 거품과 허수를 빼고 기업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당시까지 결합재무제표는 모기업과 자회사 간에만 제한적으 로 작성하도록 해 그룹 단위로 전체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번 외환위기 때도 잘 드러났지만 한국기업들의 재무제표에 대한 외국인 들의 불신감은 대단하다. 내부거래와 같은 변칙은 물론 매출과 순이익 등 가장 중요한 사항까지 고무줄처럼 늘리고 줄이는 한국기업들의 재무제표 는 외국인들에게는 단순한 숫자놀음으로 비칠 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제화, 개방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 이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한다. 재벌들의 반대는 예 상대로였다. “당장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작성이 힘든 데다 돈 도 많이 든다”는 등 온갖 이유가 쏟아졌다. 채무보증 완전 금지에 반대 한 재경원은 다소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나웅배 부총리 후임으로 임명된 한승수 부총리가 재경원에서 개정작업을 벌이고 있는 외감법에 반영시키 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 재경원은 청와대 정책수석실에서 오래전부터 작업을 해 온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방안을 이어받아 실무작업을 진행중 이었다. 그러나 재경원은 얼마 안 돼 자신들에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파기 한 채 결합재무제표 의무화 방안을 책상 서랍 속으로 넣어 버렸다. 경제 장관회의에서 김인호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신상발언을 하면 서까지 당초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당시 경제장관회의 에서는 한 부총리 외에도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과 추경석 건설교통부까 지 거들며 반대했다고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김인호 위원장이 경제장 관회의에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데 반발해 자신의 발언내용을 회의록에 남겨 줄 것을 요청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다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석채 당시 청와 대 경제수석도 공정위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당시 김인호 위원장은 “우 군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재벌들 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꼴 재경원은 올해 들어와 뒤늦게 30대그룹의 결합재무제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는 올 3월 새로 임명된 김인호 경제수석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시행시기는 당장이 아니라 2000년 사업 연도로 늦춰졌다. 그러나 IMF가 이행요구안에 채무보증 완전 금지와 기업집단 결합재무제표 의 신속한 도입을 포함시킴으로써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재벌들은 공 정위라는 곰은 피했지만 국가경제 전체의 파산위기와 IMF 체제라는 호랑 이를 만난 셈이 됐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지난해 채무보증 완전 금지 와 결합재무제표 도입이 법제화되었더라도 이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들의 경영행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아이들은 미래를 물고 늘어지고 나이든 사람은 과거를 물고 늘어진다. 현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미래나 과거를 만들어낸다. 노인들의 미래는 과거이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지금'을 통해서인데, 많은 사람들은 시간의 굴레에 묶여 있어야 편안하리만큼 무력하다. 과거와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