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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1월 25일 월요일 오후 06시 21분 15초
제 목(Title): 김동춘/임금경쟁력부활의 비극 



‘임금경쟁력 부활’의 비극

                     한국경제의 임금경쟁력이 되살아났다고 정부나 기업주쪽에서는
                     기뻐하는 모양이다. 제조업체들의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어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98년 상반기중 한국 제조업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4.3달러로 일본의 14.7달러, 미국의 13.4달러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며, 대만의 6.1달러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달러화로 환산한 우리나라 제조업의 평균임금은 지난
                     94년에서 97년에는 대만보다 높은 수준이었으나 98년 상반기
                     들어 대만의 약 70% 수준으로 하락했다. 

저임금은 더이상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기업주들이 제품경쟁력 부활을 기뻐하는 잔칫상 뒤에는 노동자들의
‘뼈를 깎고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 소득 분포를 보면
1분위에서 4분위까지의 80% 인구의 소득이 14.9∼5.5%까지 하락했다고 한다. 수백,
수천의 기업이 쓰러지고 10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나마도
사정이 좋아서 임금삭감이냐 정리해고냐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았던 사업장에서는
‘고통분담’의 명분 아래 임금삭감을 받아들였고, 양보교섭의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사업장의 90% 이상에서 임금이 삭감되거나 동결됐으며, 80% 이상에서
상여금이 반납됐다. 수많은 사업장에서 체불임금이 급증했으며 그 액수는
전국적으로 약 8천억원에 달했다. 그 결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노동자의 44∼50%선인 500여만명의 노동자가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되는
면세점 이하에 포함된다고 한다.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또 통탄스럽다. ‘선진조국 창조’를 위해 달려온 우리가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에 와서 맞닥뜨린 현실이 고작 “저임금으로 국제경쟁력
살아났다”는 70년대로의 회귀란 말인가? 그때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산업
역군들이 좀더 참고 희생해야 한다”던 논리는 오늘날 “IMF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대신됐다. 그때 나이
어린 노동자의 희생이 재벌기업의 몸집 불리기로 연결됐던 것처럼 오늘 노동자들의
고통은 ‘임금경쟁력 부활’로 연결됐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잔업과 철야를 해 잔업수당이라도 받아야만 했던
70∼80년대의 지긋지긋한 기억들이 이제는 영원히 역사의 한페이지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오늘 우리 노동자들은 또다시 부족한 생계비를 충당하기 위해 찬 새벽의
인력시장에서 서성여야 하고, 다행히 일자리를 구해서 쥐꼬리만한 일당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하게 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 70, 80년대가 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기아임금을 거름으로 수출산업을 육성하던 70, 80년대에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기업과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오늘날처럼 한국이 아시아
저개발 국가의 추격을 받는 처지에 놓이고 또 자본이 국경을 쉽게 넘나드는 국제
경제질서 아래서 저임금은 더이상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없게 됐다. 한국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3분의 1이나 5분의 1만 주어도 인근 국가의 양질의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임금 비용이 생산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임금이 경쟁의 원천이 될 수 있겠는가?
이론적으로는 임금삭감에 힘입은 기업의 일시적 경쟁력 강화는 곧 신규고용 창출과
임금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형성되는 오늘날 이 역시 이론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저임금은 소비시장을 위축시킬
것이고, 만약 해당 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저임금으로
인한 기업의 이윤은 곧 추가적인 고용의 창출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라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는 귀에 익숙한 구호가 나타난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복 과잉투자와 중소기업 시장을 잠식하면서 커온
한국 재벌기업의 주력산업들이 과연 국제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키워왔는가? 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이들은
기술력 향상이라는 전진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보다는 임금부담 때문에 기업 못해
먹겠다는 타령만 하면서 10년을 보내온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임금경쟁력의 부활’은 기쁜 일이기는커녕 차라리 비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비극을 자초한 책임자들을 가려내 엄격하게 책임 추궁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목을 치고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기업경쟁력을 수혈받으려는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서는 오늘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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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1월 28일 제2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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