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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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워싱턴사과)
날 짜 (Date): 1999년 1월 10일 일요일 오전 06시 38분 28초
제 목(Title): 이코노/ 인텔 3인방 




해외 / Overseas 제 469호 199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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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실리콘 밸리 역사(5) 인텔社의 탄생 
반도체산업 성공모델 만든‘인텔 3인방’ 
세계 최초의 D램 발명 이래 세계 최대 마이크로프로세서 회사로 
성장하기까지의 견인차들 



이장우 경북대 교수(現 스탠퍼드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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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1968년 6월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페어 
차일드社를 떠나 인텔을 창업했다. 앤디 그로브(Andy Grove)도 곧 그들의 뒤를 
따라 인텔에 합류했다. 이들은 98년 3월 앤디 그로브가 크래그 바렛에게 자신의 
회장직을 물려줄 때까지 차례로 총수직을 역임하면서 인텔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만들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텔은 휴렛팩커드와 함께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회사다. 
이 한 회사의 주식가치는 우리 나라 전체 상장회사들의 주식가치를 합한 것보다도 
크다. 

이 회사는 메모리(DRAM)칩을 발명한 이래 반도체 산업의 리더가 되었으나, 80년대 
중반에는 일본 기업들의 물량공세로 인해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메모리 
분야의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함으로써, 90년대 
이후에는 세계 최대의 마이크로프로세서 회사로 성장하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 
회사는 97년 말 현재 2백5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전체 매출의 56%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텔의 드라마틱한 성장과정 뒤에는 앞에 소개한 세 사람의 리더십이 
있었다. 

이들에 관해 살펴 보자. 
로버트 노이스는 터만, 쇼클리, 휴렛, 팩커드 등과 함께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 인물이다. IC를 공동 발명하고 페어 차일드와 인텔의 창업을 
주도했다는 업적만으로도 그의 이름은 세계 전자산업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1927년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났으며, 1953년에 MIT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쇼클리반도체연구소에서 일하다 페어 차일드를 창업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가 발명한 IC 기술은 실리콘 밸리를 과수원에서 세계적인 하이테크 중심지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그의 경영자로서의 활동은 후배 
벤처기업인들이 새로운 경영방식을 배우는 데 귀감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공로가 
인정돼 1979년에는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국가과학훈장이 수여했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을 보면 비행기 조종, 스키, 스쿠버 다이빙 등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낭만적이라고 평가하였다. 

고든 무어는 소위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론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법칙은 60년대 초 개발된 것으로 반도체의 집적도가 매년 2배씩 늘어난다는 
기술추세를 설명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이후 2년마다 2배의 집적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다소 수정되었지만 지금도 유효한 이론이다. 

고든 무어는 192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노이스와 함께 인텔을 창업한 
후 1975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았다. 바다낚시가 취미인 그는 자신의 집에 
잡은 물고기를 박제해 진열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앤디 그로브는 1956년 20세의 나이로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이민 
당시 영어를 거의 못했던 그는 3년만에 뉴욕시립대학에서 공대생들 중 1등으로 
졸업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앤디 그로브는 버클리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해 
1963년 화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페어 차일드에서 5년을 근무한 후 인텔에 
합류한 그는 경영자로서 고속 성장을 했다. 

 
▲인텔사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대명사로 통한다. 사진은 인텔의 컨셉PC.  
 수십 편에 이르는 논문, 대학교재로 정평이 나있는 저서 등은 과학자로서 그의 
능력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그는 정작 경영이론가로서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 이미 ‘High Output Management’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최근에는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그는 20억 달러가 넘는 적자에 허덕였던 위기상황에서 회사를 떠맡았다. 그는 
회사의 존립근거 그 자체였던 메모리칩 사업에서 과감히 손을 떼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으로 뛰어드는 용단을 내렸다. 그의 대담한 의사결정과 
엄격한 경영방식에 힘입어 90년대 들어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앤디 그로브는 평소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으면 시장경쟁에서 금방 뒤지게 
된다. 자기만족이야말로 기업활동에서 가장 큰 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의 경영스타일에 관해서는 평가가 다소 엇갈리고 있다. 통찰력과 
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거만하고 인내심이 없으며 잔인하다는 
평도 있다. 하여간 그의 경영스타일은 매우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며 포천지도 그를 
‘터프’한 경영자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했다. 

올 3월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아직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요즈음은 
스탠퍼드대학에서 버글맨(Burgleman) 교수와 함께 기술경영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그의 강의에는 벤처경영의 요체를 배우려는 학생들로 가득 
메워지고 있다. 

성공모형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인텔은 인간중심적인 휴렛팩커드 방식과는 달리 
강인하면서 엄격한 경영모형을 보여 주고 있다. 이 Intel Way는 HP Way와 함께 
실리콘 밸리의 성공 모형으로서 수많은 후배기업들로부터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성공 모형은 창업자들의 선택과 실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텔의 
창업자들은 경력사원들을 스카우트하기보다는 갓 졸업한 공대생들을 채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폭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창의력을 활용하려 했다. 
이와 함께 낮은 지위의 젊은 사원이라도 최고 경영진과 함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좋은 아이디어를 밑에서부터 구하려 했으며, 회의에서는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똑같은 권한을 갖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회사공동체를 만들자는 기치 아래 스톡옵션제를 실시하고 경영자와 
하급사원들간에 차량, 사무실, 식당 이용 등에 있어 일체의 차별을 철폐했다. 
인텔의 회장이 다른 사원들과 같이 좁은 칸막이 공간에서 집무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
제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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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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