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s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사과같은내)
날 짜 (Date): 1999년 1월  7일 목요일 오전 04시 53분 25초
제 목(Title): 한/정운영 유로이야기 


.

[정운영에세이] '유로' 이야기 
▶프린트 하시려면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1993년 발효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대해 이렇게 
비꼬았다: “귀하고 엄숙한 사람들이 책상보 덮인 테이블에 탄산수 한병씩 놓고, 
듣기에는 좋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완전히 난센스인 협정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달러는 미국의 
국내 통화로서 전후에 기축 통화로 행세했었다. 그런데 이제 특정 국가의 화폐가 
아니면서, 국내 통화와 국제 통화의 역할을 겸하는 유로가 출현한 것이다. 나는 세 
측면에서 유로 출범의 의미에 주목한다. 

*유럽을 향한 떫은 심사* 

첫째 측면은 미국과 유럽의 경쟁이다. 1996년 세계 결제 수단의 52%, 공적 보유 
외환의 64%를 차지했던 달러의 위세는 앞으로 크게 흔들릴 것이다. 대신 유로가 
결제 통화와 공적 보유에서 각기 40%와 35% 정도를 잠식할 전망이다. 달러에서 
유로로 전환되는 각국의 외화 자산이 1조달러로 추산된다니, 그 권세의 추락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유로를 받쳐줄 실물 경제의 토대도 만만치 않다.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의 8%와 미국의 14%를 넘어, 유로권은 32%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런 땅뺏기 싸움보다 처량한 일이 있으니, 달러가 위험해도 전처럼 
세계가 구출 작전에 나서지 않는 `왕따'의 고독이 그것이다. 선진 5국의 
중앙은행들이 공동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여 달러 가치를 안정시킨 1985년 
`플라자 합의' 같은 감동과 전설은 앞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유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사는 한마디로 `떫을' 터이다. 당초 `적극적 
무관심'으로 일관한 미국은 “유로의 성공으로 미국이 받을 위협보다는 유로의 
실패가 미칠 경제적 충격이 더 큰 걱정”이라고 엉뚱한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로렌스 서머스 재무차관은 “유로는 국제 화폐가 아니라 역내 화폐”라면서 달러 
패권의 유지를 강조했다. 유로와 달러의 세계 경제 재편에 가장 초조한 나라가 
일본이다. 엔화 경제권 창설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려는 노력이 양극의 각축에 자칫 
수포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명적으로 달러에 기우는 일본과 달리, 중국과 
홍콩은 달러의 전횡을 억제하는 견제구로 유로 선호를 일찌기 밝혔다. 확실한 
주인이 없는 아시아 시장은 유로와 달러의 한판 싸움터가 될 공산이 크다. 

금융자본의 이해로 보자면 유로가 전혀 떫은 감이 아니다. 이것이 유로 출범의 
둘째 측면이다. 1997년부터 동아시아와 러시아를 강타한 금융자본은 대단한 승리를 
거두고 엄청난 전리품을 챙겼지만, 그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특히 
롱텀캐피털(LTCM)의 도산 위기를 고비로 투기자본 규제의 목청이 높아졌다. 미국과 
달러가 난공 불락의 요새가 아니라면, 위험 분산을 위한 제2 피난처가 필요하다. 
하나로 통합된 유로랜드 11국의 단일 시장, 경쟁을 통한 동질적인 금융 서비스, 
인수합병으로 출현한 초대형 금융 기관은 초국적 금융자본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서의 책임과 감독마저 상실한 별천지 
무대 또한 `불안 프리미엄'을 뜯어먹는 투기자본에 대단한 매력을 선사한다. 

실제로 미국계 은행들은 유로 출범을 앞두고 대거 유럽 진출을 서둘렀다. 현재 
3조달러 규모의 유로랜드 증권 시장은 역외 자금 유입으로 10년 안에 4배 가량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의 대응도 기민하여,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8개의 유럽 증시는 통합 증권거래소 결성을 협상 중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월 스트리트 중심의 세계 자본 시장은 미국과 유럽으로 양분된다. 사채 발행보다 
은행 차입에 의존하는 유럽 기업의 관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낙후된 채권 시장도 
통화 장벽이 제거되면 크게 활발해질 것이다. 유로 등장이 미국과 유럽의 경제에는 
마찰의 여지를 남겨도, 초국적 자본에는 이렇게 구원의 낭보를 전한다. 유로 
출범에 회의적인 조지 소로스마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김영사, 1998)에서 
유로와 달러 양대 통화권이 등장하면 “각국의 경쟁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협력은 전보다 더 쉬울 수도 있다. 이제는 둘만 합의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협력의 가능성을 비쳤다. 둘의 합의는 열둘의 합의보다 쉽지만, 그 
결과는 경쟁보다 끔찍할 수도 있다. 

*경쟁보다 끔찍한 합의* 

고용 불안은 유로 논쟁에 가장 경시된 부분으로 이것이 셋째 측면이다. 유연성 
공세로 실업이 늘고 경쟁력 공세로 임금이 떨어져도, 통합의 전제로 물가 안정과 
재정 지출 감축을 받아들인 노조한테는 어떤 보상이 없었다. 통화 통합은 본래 
자본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고, 고용과 임금 문제는 회원국 정부에 위임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통화 관리를 유럽중앙은행(ECB)에 양도하고, 재정 수단마저 
대폭 상실한 형편에 각국 정부가 독자적 출구를 마련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노릇이다. 특히 좌파 정권의 고용과 임금 안정 시책에 불만을 토해온 고용주들이 
이 기회를 틈타 `잃어버린 영광'을 일거에 되찾을 결심이어서, 노조는 아주 절박한 
궁지로 몰리고 있다. 11국의 화폐는 단결했지만, 11국의 노동자는 여전히 실직 
유령과 함께 배회하고 있다. <논설위원> 

 ♠위로 


기사제보·문의·의견  opinion@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