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31일 목요일 오전 09시 59분 53초 제 목(Title): 서평/김균 한국사회에 주는 충고 서평 『한국 사회에 주는 충고』 김균 〈고려대 교수·경제학〉 ------------------------------------------------------------------------------- - 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적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다. 한국의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질서에 관한 외국 학자들의 글 10편을 모은 이 책을 통해 엮은이들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진행방향을 크게 우려한다. 이들은 IMF 처방을 기본틀로 삼고 있는 정부의 구조조정 및 개혁정책은 대처하의 영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한다. 정리해고제 도입, 완전 자본개방, 공기업 민영화, 적극적 외자유치 정책, 시장주의적 구조개혁 등은 한국 사회를 영미식 자본주의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방향은 정부의 위기원인 진단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IMF와 정부는 위기원인을 전적으로 우리 내부에서 찾아, 제대로 된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온 것으로 본다. 그래서 위기극복의 기본방향도 시장을 만들고 도입하는 데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IMF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들도 거의 예외없이 왜곡된 금융구조와 과잉투자 등 내부적 요인과 투기적 자본의 단기이동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결합돼 현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주의적 인식과 해법은 위기의 다른 한 측면을 외면하는 것이다. 즉 현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적 국제 금융질서 속에 한국경제가 무방비적으로 편입됐기 때문에 초래됐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시장주의적 해법에 따른 외자유치와 자본개방은 위기를 가져온 원인인 바로 그 국제 경제질서 속에 더욱 더 철저하게 얽매이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국제 금융질서의 논리에 의해 타율적으로 신자유주의 사회로 재편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용인하기는 힘들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경쟁원리만 작동할 뿐 패자에 대한 고려가 결여된 승자만의 사회, 정의가 상실된 사회다. 그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는 철저한 개인주의 원리가 전제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형태의 공동체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릴 수도 없다. 바로 이런 까닭에 이 책의 엮은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형태로 눈을 돌렸다. 최근의 「제3의 길」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비판적 현실인식 때문일 것이다. 엮은이들은 이를 동아시아 모형 또는 발전주의 국가모형의 정당한 유산인 일종의 협조주의로 파악하고 이를 승인하면서 대안적 사회 시스템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들이 제안하는 체제는 장기적 시장효율성과 비시장적 가치가 양립할 수 있는 라인형 협조자본주의다. ------------------------------------------------------------------------------- - 신자유주의에 적극 대항 권고 ------------------------------------------------------------------------------- -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한국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에는 엘리스 암스덴과 다카시 히키노, 제임스 크로티, 하랄드 슈만, 로버트 웨이드 등이 쓴 4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 중 암스덴과 웨이드는 국내학계에 이미 잘 알려진 한국경제 전공자이고, 크로티는 좌파 금융경제학자이며, 또 슈만은 최근의 베스트 셀러 『세계화의 덫』의 저자이다. 암스덴과 히키노는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를 기본적으로 외환 및 금융위기로 파악하며, 이는 외국자본의 개방압력에 굴복한 조급한 자유화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또 외국자본의 유입을 유일한 위기극복 방안으로 삼고 있는 IMF 처방은 효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며, 그것보다는 오히려 동아시아 모형에 고유한 개입주의적 경제정책을 외국자본의 조력없이 독자적으로 펼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크로티는 한국 경제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초국적 자본 세력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또 IMF 협약 역시 신자유주의 질서의 전파자인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크로티가 사회적 항의를 무기로 삼아 IMF 프로그램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에 적극 대항하기를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생각 자체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그만큼 신자유주의 지배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웨이드는 그의 발전국가 모형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위기를 이해한다. 과거의 고부채 모형에서 가계저축이 기업의 투자로 연결되는 핵심적 요소는 정부가 은행을 통해 금융을 할당하는 것이었는데, 이 고리가 성급한 금융규제 완화와 자본개방으로 인해 붕괴되면서 금융위기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또 이 성급한 자본개방의 배후에는 미국 금융계인 월가―미국 재무성―IMF 복합체가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경계 ------------------------------------------------------------------------------- - 제2부 「자본 세계화,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실체」에는 70년대 이래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질서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3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테일러는 현재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파자인 IMF와 세계은행의 전후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는데, 그는 IMF와 세계은행의 90년대 정책 기본틀이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워싱턴 합의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비판적 관점에서 지적하면서 이 두 기관의 개혁을 역설한다. 셰네의 논문은 70년대 이래 경제 세계화 현상을 「금융이 주도하는 세계적 축적체제」로 정의한다. 셰네는 새로운 축적체제의 지대적·착취적 성격을 강조하며, 또 자본의 세계화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산업적 축적메커니즘의 약화, 노동조건의 악화, 보수주의적 정치구조 등으로 귀착된다는 비관적 평가를 내린다. 제3부 「발전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라인형 협력 자본주의의 미래」는 조셉 스티글리츠, 아마티야 센, 미셸 아글리에타 등 3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세계경제체제가 워싱턴 합의를 넘어서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을 파괴하며, 제대로 된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건전성 규제, 공정경쟁정책, 투명성 확보, 기술이전 장려 등의 정부개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함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또 시장에 세계의 미래를 맡길 수 없으며, 지속 가능성, 평등, 민주화 등 비시장적 가치가 탈워싱턴 합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곤」의 경제학자 센은 경제발전은 1인당 소득증가가 아니라 인간능력의 확대가 그 기준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장주의적 경제발전에 대한 맹신을 경계한다. 동시에 그는 시장배제적 정부개입과 시장보완적 정부개입을 개념적으로 구별하면서 후자를 옹호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글리에타의 논문은 전후 세계자본주의의 역사를 조절이론의 관점에서 개관하면서 현대자본주의의 향방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아글리에타는 세계 차원에서 볼 때, 현재 영미형 자본주의와 라인형 자본주의라는 상이한 사회 시스템이 경합하고 있다고 파악하면서, 후자는 개량국가, 협조주의적 기업지배구조, 협력적 국제통화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3부의 스티글리츠, 센, 아글리에타는 각기 상이한 학문적 전통 위에 서 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맹목적 시장주의를 부정하고 있으며, 비시장적 가치와 시장의 결합을 모색하고 있으며, 또 그 과정에는 일정한 정부개입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 ------------------------------------------------------------------------------- - 비시장적 가치의 중요성 ------------------------------------------------------------------------------- - 지금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세계를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한국 사회에서 반성적 사고는 결코 덕목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따지는 것은 고도성장 사회의 불필요한 장식이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가 끝나면 더 이상 고도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사회는 어떤 형태일까. 지금처럼 무반성적이고 타율적 강요에 의해 사회가 변화한다면(만약 현재의 변화가 자율적 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억지고 기껏해야 무지의 소산이다), 우리 사회는 머잖아 승자만의 사회, 또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속에 주변화된 국가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는 반성적 사고와 사회적 방향감각의 회복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 시스템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시장의 사회적 통제를 말하고 또 민주주의, 평등, 환경 등과 같은 비시장적 가치가 시장과 함께 추구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그 윤곽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들이 제시하는 생각들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논의하는 데 매우 타당한 출발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한국사회에 주는 충고』인 것이다. 한국경제와 같은 개방형 소국경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바깥으로 나아가 세계시장의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물질적 번영을 추구하고 또 세계적 수준의 삶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외부의 강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더구나 우리가 신자유주의 수용을 숙명으로 생각하는 지금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그 퇴각 조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단기성 국제 금융자본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통제(Global Govern-ance)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또 유럽은 제3의 길을 선택한 듯하다. 동아시아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확인케 하는 최후의 전장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 -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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