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nggukUniv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메아리) 날 짜 (Date): 1995년12월18일(월) 11시54분45초 KST 제 목(Title): 수누보드에서 퍼온글... [ SNU ] in KIDS 글 쓴 이(By): huggies (하기스) 날 짜 (Date): 1995년12월18일(월) 10시57분14초 KST 제 목(Title): 이덕인씨 사망 관련 속보 역시 나우누리 찬우물에서 가져왔습니다. -- <인천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씨 사망사건> 11월 24일 인천 아암도에서 노점상에 대한 대대적인 (2000명 규모로 추산) 철거가 있었다. 철거깡패와 전경에 밀린 노점상들은 근처 8미터 규모의 철탑으로 대피했다. 수일째 음식물과 의약품도 얻지 못한 채 노점상들은 고립되었고, 전경 과 깡패들은 영하의 날씨에 철탑에 대고 물대포를 쏘아댔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었던 이덕인씨가, 혼자 포위를 뚫고 나가려고 시도하면서 철탑을 내려갔으나 소식이 끊겼다. 이덕인씨는, 소식이 끊긴지 며칠 후 인천 앞바다에서 주검 으로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당시 시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남아있어, (이 사진은 포스터로 제작되어 관악 곳곳에 붙어 있다.) 한눈에 보아도 구타가 주된 사망원인임을 알 수 있다. 발견당시 시신은 얼굴과 팔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두 손은 밧줄로 묶여 있었다. 또한 사진에 의하면, 이덕인씨의 등은 매끈한 상태였는데, 경찰발표대로 익사라면 등이 그렇게 매끈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이야기이다. 이덕인씨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과 친지들은, 인천중앙 길 병원에 빈소를 차렸다. 의사는 이덕인씨의 사망이 구타로 인 한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최기선 인천시장이 직접 영안실로 찾아와 항의하는 유가족들에게 "사인을 규명할테니 안심하라." 고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최기선 시장이 다녀간지 불과 30분 후, 전경 5개 중대가 들이닥쳐 이덕인씨의 시신을 강제로 빼앗아갔다. 그 과정에서 빈소를 지키던 학생들이 구타 당하여, 한 학우는 다리가 부러지고, 또 다른 학우는 두부를 심하게 다쳐 CT촬영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이덕인씨의 시신을 빼앗아간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여 유가족을 강제입회시킨 채 부검을 강행, "수영중 탈진 에 의한 익사"라고 사인을 규명(!)했다. (한겨울에 자신의 얼굴 과 팔을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자기손을 묶고 인천앞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라니??) 그리고는 소견 서에 서명을 거부하는 이덕인씨의 형을 구타, 형까지 병원신세를 지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줄 때 구타 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될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피멍이 들었던 얼굴과 팔을 도려내고, 내장을 모두 제거하였다. 이덕인씨의 시신이 길병원에서 탈취될 때 연행되었던 인천의 학우들은, 지금 7명이 구속되었으며 죄명은 '살인미수'(전경에 맞서 삽을 들고 싸웠다는 이유) 및 '공무집행방해죄'라고 한다. ........ 어떻습니까?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문민정부의 개혁쇼 뒤에는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 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덕인씨 사망 뒤 한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 사건은 일체의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아 전혀 여론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집회에 나가면서 지하철역 곳곳에 포스터와 소자보를 붙였습니다. 시민들은 두눈이 휘둥그래져서 처음 접하는 이 소식 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전전으로 이 사건을 알게 된 사람 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아직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은폐되어 있습니다. 관악 내에서도 분향소까지 설치되었음에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사람들은 적은 편입니다. 어제 집회는 이 사태를 다루는 정권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었습니다. 어제 집회는 종묘공원에서 있었고, 명동 성당까지 평화행진을 할 계획으로 신고서까지 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는 명동성당까지의 행진로를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샛길로 내주어, 사실상 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하는 의도를 여실히 드러냈 습니다. 그래서 시위대는 종로 거리를 점거했습니다. 그리고 전경 측에서는 최루탄을 한발도 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최루탄 한발도 안쏘고 곧바로 백골단의 곤봉세례가 날아왔습니다. 백골단 의 무차별 구타 및 연행으로 많은 학우뿐만 아니라 집회에 나왔던 전국 철거민 연합 및 전국 노점상 연합 회원여러분도 많이 연행 되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흩어진 대열을 다시 모아 정리집회를 한 뒤, 연행 자들이 갇혀 있는 종로경찰서로 항의방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명동골목을 나서자 마자, 매복했던 백골단이 다시 치고들어 와 명동성당 경내까지 들어오면서 다시 시민들과 학생들을 한명에 7-8명씩 자들이 갇혀 있는 종로경찰서로 항의방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명동골목을 나서자 마자, 매복했던 백골단이 다시 치고들어 와 명동성당 경내까지 들어오면서 다시 시민들과 학생들을 한명에 7-8명씩 달라붙어서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그래서 종로서 항의 방문도 무산되었고, 명동성당어귀에서 대치하다가 시위대는 해산 했습니다. ............................................................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의사표명도 지금까지는 공개적으로 이루 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많은 기자들이 시위현장을 촬영 해 갔으나, 이 시위에 대해 기사 한줄이라도 실린 것을 보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끝까지 싸울 것입 니다. 80년 광주에서 폭도로 몰려가면서도 의로운 사람들이 끝 까지 싸웠던 것을 본받아서. -------------------------3벌식맨! the Pilgrim of Salsin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