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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ottugi ()
날 짜 (Date): 1995년05월16일(화) 19시30분32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 신문 독자마당 중에서...[지존파..]



다음은 한겨레 신문 독자마당에 올려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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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지존파를 위한 변론 - 5.18에 부쳐

1.
강간이 벌어졌다. 
벌건 대낮이었다.
으슥한 골목도 아닌 광장이었�
건장한 사내가 저항하는 여인을 붙들어 매고
시커먼 음경을 꺼내 
거부하는 여인의 성기에 곧추 쑤셔 넣었다. 
여인의 절규를 교성삼아 이내,
사내는 침흘리고 할딱거렸다.
우리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우리들의 눈은 고통스런 여인의 얼굴을 떠나 
사내의 저릿한 쾌감으로 차근차근 옮아갔다.

2.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분별한 살인 -
그들에게서 묻어나는 
戮습텝냄새가 역거워
우리들은 고개를 돌렸다.
세상이 온통 들끌었다.
저럴수가, 저럴수가 -
저녁 밥상 앞에서도
옹기종기 모인 TV 앞에서도 
소주잔 넘어가는 술자리에서도
사람 모인 곳 어디에서건 
인륜과 천륜과 도덕성을 들어
지존파의 죄악에 분노했다.
욕해 대며 노여워했다.
근엄한 법관은 법과 양심에 의거
지존파의 폭거를 단호히 응징했다.
급속심리.
"사형!"
신속히 집행되었다.
우리들은 환영했다.

3.
우리들은 79년 12월 12일을 기억하고 있다.
일단의 정치군인이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이듬해 5월,
민주주의와 민족발전의 갈망으로 저항하는 
특정다수에 대한 분별있는 살해가 자행되었다.
2000명이 학살되었다.
그 날의 학살을 반석으로 삼아 유혈의 정권은 
고문과 경찰력과 구조화된 폭력과 
반공으로 무장한 압제로 정권을 유지했다.
이 나라를 유린했다.

4.
그리고 94년, 문민은 이렇게 선언했다.
"12.12 관련자 기소유예!"

죄는 인정되나 처벌은 없다."
"그들을 처벌하면 안정을 헤친다.
지속적인 풍요와 성장을 위해 구원은 접어두자!"
    [D80년 5월의 광기로 튀어나와 무등의 산에 걸린 
   아이의 눈이 천진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물을 흘렸다. 십수년 동안 주인 모를 땅에 
   묻혀 죽지도 못하고 구천을 헤매던 문드러진 
   시신의 심장이 놀라움에 다시 쿵쾅거렸다. 
   임산부의 배속에서 난자당한 아기는 울어보지도 
   못했던 울음을 이날 터뜨렸다. 군사정권의 
   고문실 - 그곳에 뿌려져 말라 버렸던 선각자의

   피는 노여움에 새로 붉어져 부글거렸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존파 앞에서 그토록 호들갑스럽던 우리가
침묵을 지켰다.
아무일 없다는듯 일상을 영위했다.
   - 침묵은 암묵적 동의?

5.
가난한 시절. 우리는 정의 앞에 순결했다.
순백의 영혼들은 무수한 고뇌와 결단과 행동과 희생으로 
시대를 수놓았다.
젖과 꿀의 단내가 스며들면서 우리는,
가슴에 충만했던 정의를 움큼움큼 덜어내고
그 자리를 "포만과 안락"으로 채워 넣었다.
   
   우리는 어느새 이나마 얻은 경제적 풍요를, 혼란
   의 개연성을 내포한 정의와 맞바꾸고 싶지 않았던
   게다. 그보다는 지위와 돈과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향해 온 정력을 쏟아 부어야 했던게다.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사회'에 대한 열망이 
'젖과 꿀이 넘치는 사회'에 대한 집착으로 전이되었다.
포만의 논리가 정의의 논리를 압도했다.

6.
어느날 칼을 가진 사나이가 불쑥 우리를 찔렀다.
죽어가며 우리는 우리 살을 베어 물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당신을 본 적도 없는데...."
"나? 광장의 강간 - 그때 사내가 쏟아낸 정자로 난
잉태되었어."
그는 오래전부터 우리들 스스로에 의해 예비되어 
'죄의 삯은 사망'임을 역사하신 지극히 존귀한 자였다.

7.
지존파를 위한 변론은 바로
강간의 방관이다.
정의를 등진 포만에의 동조다.
하여, 지금
12.12, 5.18 앞에 드리운
우리들의 침묵이다!
NOTE)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사회'가 아니라 
어느새 '젖과 꿀만 흐르는 사회'로 전도되었나 보다. 지존파 사건의 
소란과 곧이은 12.12의 침묵이라는 대비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존파 몇명 죽여봐야 우리에게 무엇이 해가 되나?
오히려 우리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버러지 같은 인간에게 인륜과 도덕성을 
들어 속시원히 욕해대지 않았나? 그리고 종국에 그들을 죽여버림으로써 
죄짓고 못산다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실현을 보고 이 사회에 아직 
정의는 살아 있구나하고 안도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12.12 관련자를 
그 죄과대로 처벌하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삶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는 개연성 앞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는 그 개연성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것도 아니면 지금 그런 구시대적 갈등에 발목잡히지 말고 보다 재미있고
보람차고 돈도 따라오는 직업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할런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이 정의의 외면까지 방관한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퍼득 강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의가 정치와
경제, 포만의 논리에 의해 강간당하는 모습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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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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