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ber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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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yberPunk ] in KIDS
글 쓴 이(By): cara (니샤이시스)
날 짜 (Date): 1998년 10월 19일 월요일 오전 02시 06분 25초
제 목(Title): 『리더스 다이제스트』<1997. 10>에서 발췌


       『리더스 다이제스트』<1997. 10>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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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머리를 쓰면 단시간 내에 해치울 수 있는 집안일에
     대해 주부들은 왜 그렇게 불평이 많을까?" (이반 크라우스)
 
 
 
    ● 월요일 ●
 
    혼자서 집을 보게 되었어. 아내가 일주일간 집을 비우게 되었거든.
   꽤 괜찮은 기분이지 뭐야. 이제 우리집 개와 나는 잊지 못할 일주일
   을 보내게 될 거야.    "우와이고오~ 개운해~"
 
    우선 계획을 세우고 시간표를 짰어. 기상시간, 욕실에서 쓰는 시
   간, 아침식사 준비시간 등을 모두 정해놓고, 또한 설거지하고 청소
   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시장 보고 요리하는 시간도 넉넉히 잡아놓
   았지. 아니,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아유~ 놀랍기도 해라. 기분이 무지 좋네.
    이렇게 짧은 시간이면 다 해치울 수 있는 집안일을 두고 여자들은
   왜 그렇게 법석을 떠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야. 아 이렇게  머리
   를 좀 써서 시간만 잘 배분하면 될 일인데 말야.
 
    나는 우리집 개와 함께 저녁식사로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어. 멋진
   분위기를 내려고 나는 축제 때나 입는 옷을 차려입고 촛불과 장미
   를 꽂은 꽃병으로 식탁을 꾸몄는데, 아주 멋있었지. 나는 우리집
   개에게는 오리 간으로 만든 전채요리와 기묘한 맛의 야채를 곁들인
   스테이크요리를 만들어주었고, 디저트로 비스킷도 주었어. 나는 분
   위기 있게 포도주를 마시면서 담배도 한 대 피웠지. 참말로 오랜만
   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어. 이야, 오늘밤은 너무 행복해!
 
 
   ● 화요일 ●
 
    시간표를 검토해 봐야겠어. 약간의 변동사항이 있을 것 같아. 이
   렇게 매일 축제처럼 지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는 우리집 개에게
   설명했어. 이제부터 우리집 개는 전채요리를 먹는다거나, 식사 때
   마다 세 개의 그릇에 담겨진 정찬을 먹는 일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야. 내가 그 그릇을 다 닦아야 하기 때문이지. 아침을 먹으면서
   나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오렌지주스의 단점을 알게 됐어.
   믹서기를 사용할 때마다 매번 닦아야 한다는 게 그거야. 이 문제
   의 해결책은 이틀분을 한꺼번에 갈아놓는 거야. 그러면 믹서기를
   이틀에 한 번만 닦아도 되겠지?
     또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소시지를 수프에 넣어서 데울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하면 설거지할 냄비 하나는 줄일 수 있
   잖아. 오, 난 아내가 바라는 대로 매일매일 진공청소기를 돌릴 생각
   은 추호도 없어. 왜냐구? 청소는 이틀에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
   집에 들어오면 실내화로 갈아신고 개 발을 닦아 주면 만사형통이
   잖아.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만 아니면 기분이 정말 최고일텐데.
 
 
   ● 수요일 ●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안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는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또 바꿔야겠어.
 
    그 첫번째 조치로 나는 패스트푸드를 좀 사왔는데, 요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음식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되겠어?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참 문제야. 이불에서 빠져나와 침실을 환기시키고
   침대정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야.
    침대를 매일매일 정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특히 그날 밤 또
   다시 똑같은 잠자리에 들어가 자게 될 경우엔 더욱 그렇지. 잠자리
   를 매번 정리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의미한 일인것 같거든.
 
    우리집 개에게도 더이상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어주지 말아야
   겠더라구, 그래서 나는 가게에서 파는 애완견 먹이를 샀어. 녀석이
   인상을 좀 쓰긴 했지만 다른 수가 없지 뭐. 주인인 나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일 아냐?
 
 
   ● 목요일 ●
 
    오렌지주스는 이제 그만!
    아니, 어떻게 그처럼 깔끔하게 생긴 과일이 그토록 난장판을 만들
   수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이제부터는 병에 담긴
   오렌지주스를 사먹어야겠어.
 
    나는 침대커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터득했어. 담요를 반듯하게 하기만 하면 돼. 물론 그렇게 하려면 연
   습도 필요하고 잠을 험하게 자지 말아야 하지. 등이 약간 아플 수도
   있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금방 괜찮아질걸.
 
    매일 면도하는 일도 그만두었어. 이제는 그것도 시간낭비라는 생각
   이 들겠지. 면도할 필요가 없는 아내로서는 결코 낭비하지 않을 귀
   중한 몇 분의 시간을 이젠 나도 얻을 수 있게 된 거지 뭐.
    식사때마다 새 접시를 쓰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어.
   그토록 자주 설거지를 해야 하다니 슬그머니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
   거든. 우리집 개도 같은 그릇에 먹이를 담아주고 있어. 그 녀석은
   사람도 아닌데 뭐.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는 결론에 도달
   했어. 참 놀라운 발견이지? 점심식사는 물론 저녁식사도 소시지를
   먹기로 하고, 그렇게 했어.
 
 
   ● 금요일 ●
 
    으휴, 이제 과일주스라면 넌더리가 난다! 주스병은 또 왜 그렇게
   무거운지!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어. 아침에 먹는 소시지
   맛은  꽤 그럴듯하지만 점심에 먹는 소시지는 맛은 그냥 그렇고, 저
   녁때 먹는 소시지 맛은 정말 지독해.
    그런데, 이틀 이상 소시지를 먹으면 가벼운 구토증세가 유발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 우리집 개는 시중에서 파는 먹이를 먹는데,
   영양도 풍부하고 그릇을 더럽히는 일도 없잖아. 또한 수프를 끓여서
   냄비째 가져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렇게 먹어도 맛
   은 똑같은 데다가 그릇도 국자도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편리해!
   이제 더이상 내가 식기세척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어. 와우~ 이게 바로 해방된 기쁨이란 걸거야.
    주방의 바닥을 닦는 일도 그만 해야겠어. 이 일 역시 침대를 정
   리할 때처럼 나를 화나게 만들거든. 통조림 음식도 그만 먹을래.
   캔 따개가 더러워지면 골치아프니까.
    아침에 다시 입을 옷을 굳이 저녁에 벗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잠
   깐 동안이긴 하지만 차리리 그 시간도 침대에 누워서 보내는 게 낫
   다고 생각해. 게다가 옷을 입고 있으면 침대커버를 덮을 필요도 없
   으니까 침대는 언제나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잖아.
    개가 먹이 부스러기를 남겼길래, 나는 녀석에게 다 먹어치우라고
   말했어.
             "나는 네 하인이 아니라구!"
 
   오잉? 참 이상하다. 아내가 가끔씩 나한테도 이것과 똑같은 말을
   한 게 갑자기 생각나네.
 
    오늘은 면도하는 날이야. 그런데 면도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난 지금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거든. 아침식사는 포장을 뜯거나
   열거나 자르거나 펼치거나 요리하거나 섞을 필요가 없는 것이어야
   해. 이런 모든 일들이 내 비위를 건드리기 때문이지.
    봉지에서 꺼내 곧바로 스토브에 데워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점심식사
   를 할 작정이야. 접시, 나이프, 포크, 식탁보 등 거추장스러운 것들
   은 딱 질색이거든. 아이고, 잇몸이 좀 쑤시네. 과일을 충분히 먹지
   못해서 그런가봐. 과일은 너무 무거워서 사들고 다닐 수가 없더라구
   아휴 이거 아무래도 괴혈병에 걸린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
 
    오후에 아내가 전화를 걸어 창문을 닦고 세탁을 해놓았느냐고 묻대.
   나는 너무 기가 막혀 웃었어.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아내에게 말해주었지.
    욕실에 문제가 생겼어. 스파게티 때문에 배수구가 막힌 거야. 하지
   만 샤워를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별로 걱정할 일은 없어.
    우리집 개와 나는 냉장고에서 바로 음식을 꺼내 먹어야 해. 냉장고
   문을 오래 열어 두면 안되니까 민첩하게 행동해야지.
 
 
   ● 일요일 ●
 
    우리집 개와 나는 침대에 앉아 TV에서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맛있
   는 음식들을 먹는 장면을 보았어. 우리는 둘 다 군침을 흘렸지 뭐.
   우리는 갑자기 배가 더 고파져서 힘이 빠져 비실거리기 시작했어.
    오늘 아침에는 개 밥그릇에 담아놓은 것을 우리집 개와 함께 먹었
   지. 하지만 우린 둘 다 그것이 너무 싫었어.
 
    세수도 하고, 면도도 하고, 머리도 빗고, 개에게 먹이도 주고, 산
   책도 시키고, 설거지와 청소도 하고, 쇼핑도 하고, 그밖의 다른 일
   들도 해야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졌어. 균형감각도
   잃어가고 눈도 침침해지는 것 같아. 우리집 개는 이제 꼬리도 안쳐.
 
    자기보호의 마지막 수단으로 우리는 레스토랑까지 힘없이 걸어가서
   접시에 담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한 시간이 넘도록 먹고 나서
   다시 호텔로 갔는데, 방은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너무나
   아늑했어.  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편안함이여!
 
    나는 비로소 이상적인 살림살이 방법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
   데, 과연 내 아내도 이런 방법을 생각해본 일이 있었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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