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sumer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Quest) 날 짜 (Date): 1997년12월29일(월) 21시58분45초 ROK 제 목(Title): 의사들의 교묘한 책임 회피 발 행 월 : 97년 12월 의사들의 교묘한 책임 회피 23세의 여자 환자가 알레르기성 피부병으로 94년 7월 중순 부터 모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던 중 피부병은 더 심해졌다. 3개월 이상 치료를 받다 견디지 못한 환자는 94년 9 월 말경 대학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으면서 증세가 호전됐다. 그 후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하던 환자는 1년이 지난 95년 10 월경 갑자기 양측 골반이 아픈 증상을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 히 운동을 하다 삔 것으로 생각하고 한달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점점 통증이 악화돼 개인병원 정형외과 의원에서 x- ray검사를 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정확한 병명을 알려 주지 않 고 단지 『최근에 피부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고는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불안을 느낀 그녀는 대학병원에 가 서 정밀진찰을 받았다. 검사결과 「양측대퇴골 경부 무혈성괴 사」(양측 허벅지뼈의 골반 부위가 썩어버리는 병)이며, 관절 뼈가 썩었기 때문에 인공관절을 넣는 치료법밖에 없다는 것이 었다. 미혼여성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병이었다. 그 후 그 녀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전전했으나 의사 들의 진단은 한결같았다. 의사들은 병의 원인으로 부신피질호 르몬제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 피부병을 치료한 의사가 부신피질호르몬제를 과다 사용해 뼈가 썩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의사를 형사고 발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담당의사는 수사관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 장했다. 수사관은 양측의 이야기를 들은 후 대한의사협회에 감 정을 요청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 「▲질의1. 부신피질호르몬제를 사용해야 하는지 여부. 회신1. 환자와 비슷한 질병인 경우, 그 치료로서 부신피질 호르몬을 반드시 사용해야 합니다. ▲질의2. 무혈성괴사의 원인. 회신2. 무혈성괴사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많은 환자들의 경 우 수개월 전 고관절을 삐었다는 환자가 많고, 종종 나이가 젊 은 무혈성괴사 환자는 수개월 전 운동을 하다 다친 후부터 병 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경미한 외상도 그 원인이 아니라 고 말할 수 없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 이와 같은 회신으로 인해 형사사건은 무혐 의 처리됐다. 그녀는 다시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소송의 쟁점 은 부신피질호르몬제와 대퇴골괴사와의 인과관계였다. 민사소 송과정에서 대한피부과학회에 또 한번의 감정신청이 있었다. 「▲질의3. 부신피질호르몬제가 양측고관절 대퇴골두괴사를 일으키는지 여부. 회신3. 부신피질호르몬제의 부작용으로 대퇴골두괴사는 없 음」그녀는 이 대목에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고 말한다. 필자 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피부과학회의 감정서를 살펴보았다. 감 정서는 극히 편파적일 뿐만 아니라, 뻔한 사실까지도 숨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약물의 약리작용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었다. 필자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피부과학회의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 소견서를 만 들어 주었다. 「▲회신1에 대하여(부신피질호르몬제의 사용여부에 관한 감정). 피부과 환자에게 부신피질호르몬제의 사용은 대체로 학문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가 주장하듯 담당의사가 부 신피질호르몬제를 과다 사용하여 양측고관절대퇴골두괴사가 왔 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약물의 용량만을 놓고 볼 때 의사의 처방용량은 적정수준 이하입니다. 그러나 이 환 자의 경우 사용을 중지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환 자는 치료를 받으면서 위 약물의 부작용으로 확인되는 심한 증 세들이 발생했습니다. 위 약물은 사람에 따라 부작용의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적정한 용량이라 하더라도 부작용이 심 하면 감량하고, 그래도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으면 사용을 중지 해야 합니다. 피고 의사는 부작용이 나타나는데도 불구하고 약 의 사용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피부과 의사에게 책임 이 있다고 봅니다. ▲회신2에 대하여(무혈성 과사의 원인에 대한 감정). 대한의사협회의 감정 의견서는 의학적으로 전혀 별개의 다 른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에 제시해야 하는 소견입니다. 고관절 을 삐는 등의 원인으로 괴사가 발생하면, 관절의 한쪽 편을 삐 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서 한쪽 부위만 고관절괴사가 나타납 니다. 약물에 의한 고관절 무혈성괴사는 약물이 혈관을 따라 전신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양쪽 고관절에 괴사가 나타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렇듯 약물에 의한 것과 외상에 의한 것의 차 이를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외상이 원인인 것으로 판단케 유도 했습니다. 즉 의사에게 도움이 되는 판정을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했습니다. 약물이 전신에 퍼져 나타나는 고관절 무혈성괴 사의 경우에는 어느 한쪽을 가리지 않고 양쪽고관절에 영향을 끼치므로 양측고관절이 괴사돼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여자 환 자는 약물에 의한 대퇴골두괴사로 판단해야 합리적입니다. ▲회신3에 대하여(대한피부과학회의 감정). 대한피부과학회에서 회신한 자료에는 참고문헌이 첨부돼 있 었습니다. 그런데 그 참고문헌에는 부신피질호르몬제의 부작용 으로 골의 괴사가 온다는 것이 분명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대 한피부과학회는 감정의뢰인이 비의사라는 것을 이유로 이처럼 뚜렷한 의학용어도 부인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 불공정 감정에 대한 필자의 반론은 수많은 외국문헌과 함께 환자에게 넘겨져 법정에 제출됐다. 이 사건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재판부도 필자의 주장대로 대 한의사협회와 대한피부과학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재판부는 의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고, 최종 신체감 정이 나오면 그에 따라 선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환자도 1 차 수술 후 경과가 좋아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 그나마 다행이다. 『법대로 해보자』 대한의사협회의 불공정한 감정은 일부 의료사고를 낸 의사 들에게 자만심을 심어주었다. 자신의 실수로 의료사고가 발생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뿐더러, 시쳇말로 『법대로 하라』는 의사들도 없지 않다. 심지어 형사고발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더라도 환자측이나 수사관에게 당당하게 거짓진술을 하고, 재판부가 의학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빌미로 외국의학의 학설을 왜곡 번역하거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재판부에 제시하는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의 사례들은 의학이라는 배타 성과 전문성을 빌미로 자신의 과실을 잡아떼는 전형들이다. 20대 중반의 산모가 95년 10월12일 제왕절개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틀 뒤인 10월14일 산모는 원인을 모른 채 갑자기 쓰러 져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10월16일 사망했다. 담당의사는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책 임질 일도 없으니 억울하면 법절차를 밟으라고 했다고 한다. 유족의 고발로 부검이 이루어졌다. 부검 결과 복강에는 3천cc 의 혈액이 고여 있었고, 과다출혈에 의한 혈액응고장애로 사망 한 것으로 판정됐다. 일반적으로 과다출혈이 생기면 인체는 스스로 출혈을 멈추 기 위해 혈액응고반응을 일으키며 이러한 반응에는 혈액응고인 자가 개입된다. 그런데 심한 출혈이 있을 때 우리 인체에 있는 응고인자를 다 사용해도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 상태에서는 혈액응고인자가 거의 소진돼 더이상 지혈을 하 지 못하게 되는데 이를 혈액응고장애라고 한다. 이 경우 출혈 이 점점 더 심해져 환자는 사망한다. 출혈의 원인은 첫째 제왕절개수술 과정에서 지혈조작을 잘 못한 경우, 둘째는 환자가 선천적으로 혈액응고장애가 있는 경 우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의사의 과실이고, 후자는 의사의 과실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산모는 계획된 절차에 따라 수술을 받았다. 모든 수술은 심 한 출혈이 동반되므로 수술 전에 반드시 혈액응고장애 질환 여 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한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이 검사를 하 지 않고 수술을 했다. 결국 출혈 질환이 있었던 산모는 아무런 대비 없이 수술한 의사만 믿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의사 는 현대의학이 허용하는 한계내에서 최선을 다해 검사와 대비 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적절한 검사만 했으면 수술전 출혈 질환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이 검사를 소홀 히 하는 바람에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 하게 됐다. 여기서 필자를 더욱 분개하게 만든 것은 담당의사의 억지 주장이었다. 그는 수술전 반드시 해야 할 혈액응고반응 검사를 『수술하고 나서 해도 된다』고 수사관에게 설명했던 것이다. 이것은 의사가 아니면 누구도 의료과실을 밝힐 수 없다는 오만 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 사건을 검토한 뒤 필자는 의사의 과실 을 소견서로 작성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해 주었다. 필자의 소견 서가 접수되자 다급해진 병원측은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망 인의 남편에게 적절한 선에서 합의를 제의, 사건이 종료됐다. 이 사건은 담당의사가 수사기관에 거짓진술을 한 대표적 사례 일 것이다. 의사에게 불리한 것은 외면 의료사고를 낸 의사가 수술기록지를 조작한 예도 있다. 96 년 6월4일 55세의 남자 환자는 소화불량으로 내원하여 초기 위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 일반외과에 입원했다. 수술 준 비를 마치고 6월12일 위암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약 1주 일간은 경과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금식을 끝내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 날부터 환자는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그 러나 담당의사는 경과를 관찰해 보자면서 2주간이나 시간을 끌 었고, 6월27일경에야 담당주치의가 급성맹장염이니 수술을 해 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2차수술을 받았다. 그 러나 2차수술 뒤에도 환자는 호전되지 못하고 11월15일까지 고 열과 복통, 구토 등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망인의 유족은 1차수술을 잘못하여 환자가 사망했다고 주장 하면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병원의 의사들은 1차수술이 성공적이었고 2차수술(맹장염수술) 역시 성공적이었는데, 환자 의 선천적인 면역력 장애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 고 2차수술 당시의 소견을 기록한 기록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2차수술기록지에는 「급성맹장염이 발생해 맹장을 제거하는 수 술을 했다」고 기재돼 있었다. 필자는 망인의 유족과 상담할 당시부터 1차수술 잘못으로 환자에게 복막염이 생겼다고 확신했다. 담당의사는 이 과실을 숨기기 위해 재수술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적절한 수술시기를 놓친 것으로 판단됐다. 당연히 피고병원측이 제출한 2차수술기 록지는 날조된 것이다. 실제 진료기록을 검토하면 2차수술기록 지에는 1차수술의 잘못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1차수술시 봉합한 부위가 터져서 복막염이 왔고, 이 터진 부위를 재봉합했다」 담당의사는 이 기록을 제출할 수 없어서 새로운 2차수술기 록지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다. 필자는 피고병원의 허위 증거 제출에 대한 소견서를 작성해 유족들에게 보내주었다. 재판부 에서의 증인신청에 대비해 참고문헌도 마련해 두고 있다. 이처럼 의학에 문외한인 법관과 변호사들을 상대로 의사들 은 무모할 정도의 허위 자료를 제출하곤 한다. 의사들의 이같 은 비양심적인 행동은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사고에 관해 공정한 감정을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고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의료사고 소송시 대한의사협회의의 감정은 의학전문가라면 뻔히 알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에게 불리한 대목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의심이 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음은 의사라면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심근경색증 증상을 감춘 사건이다. 30대 초반의 남자 환자가 군복무중 다친 무릎을 수술하기 위해 모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했다. 수술을 위한 모든 검사를 마치고 96년 9월10일 무릎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 나 9월21일 새벽 3시50분경 갑자기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이때 담당의사가 나타나 산소를 공급하고, 진통제를 투여하고, 혈압 상승제를 투여하고, 심전도 모니터를 다는 등 최선의 치료를 했으나 사망했다. 원인은 심근경색증이었다. 임신 8개월에 졸지에 남편을 잃은 부인은 남편의 가족들과 상의해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병원측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멀쩡한 젊은 사람이 다리수술을 받고 사망했으니 그 억울함은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의료사고소송은 녹록하지 않 은 일이다. 병원측은 자신들이 최선의 치료를 했으므로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소송이 진행되던 중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다 음과 같은 감정결과서를 보내왔다. 「▲질의1. 수술후에 담당의사의 처치과정이 적정했는지 여 부. 회신1. 9월20일까지 치료과정은 양호하다. ▲질의2. 가슴통증 호소 후 처리과정에서 과실이 존재하는 지 여부. 회신2. 혈압상승과 가슴통증에 따른 약물투여 및 산소공급 과 심장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심전도 장착 등 제반사항은 적정한 조치였던 것으로 사료됨. ▲질의3. 입원일부터 사망전날까지 심근경색증을 의심케하 는 증상이 있었는지 여부 회신3. 없었음. ▲질의4. 9월20일 이전에 타과(내과)에 의뢰할 증상이 나타 났는지 여부. 회신4. 의뢰의 필요성을 판단할 증상 없음」 대한의사협회의 감정결과를 요약하면 환자의 가슴통증은 사 망당일인 96년 9월21일 처음 나타났는데 이때 적절한 치료를 다했으나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요지다. 수술후 입원기간 내내 심근경색증을 의심할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의사로서는 과실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감정은 거짓이었다. 우선 심근경색증에 관해 살펴보자. 심근경색증은 심장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막히는 질환 이다. 따라서 혈액공급이 안되는 부위의 심근이 괴사돼 갑자기 심 장마비가 와서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심근경색증은 내과계 질 환 중 가장 응급하고 무서운 질환이다. 심근경색증의 초기 증 상은 가슴통증이다. 가슴통증을 호소하면 환자를 절대 안정시 키고, 즉시 여러 가지 검사를 실시하고, 산소공급을 하면서 강 력한 진통제(모르핀)를 투여하고, 심전도 모니터를 통해 심장 의 이상유무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 이런 치료는 가능한 한 빨 리 시행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진료기록을 검토해 보면 망인은 96년 9월10일 수술을 받고, 사망하기 1주일 전인 9월14일 새벽 3시부터 2시간30분 동안이 나 심근경색증이 의심되는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간호사는 당 직의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으나 당직의사는 환자를 진찰하지 도 않았고, 검사나 적절한 처방을 하지 않고 방치했다. 이처럼 심근경색증이 강력히 의심되는 가슴통증이 2시간30분 동안이나 지속됐는데도 정형외과 담당의사는 환자를 내과에 의뢰하지도 않았다. 담당의사의 무성의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질병을 놓쳐버렸고 결국 환자는 적절한 치료기회를 잃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수술 후부터 9월20일까지 심근경 색증을 의심케하는 기록이 없음」이라고 감정회신을 했다. 동 일한 가슴통증이 9월14일과 9월21일 두 차례 나타났는데 9월21 일의 치료절차만을 언급하여 적절한 치료법이었다고 감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심근경색증이 나타나면 1차치료제로 모르핀이 사용되는데, 9월21일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형외 과의사는 이조차 처방하지 못했다. 심근경색증이 조기에 나타난 9월14일 담당의사가 조금만 주 의를 기울여 진료했다면 환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 가 대한의사협회는 1차 치료약 선택의 잘못, 조기 진단과 치료 를 하지 않은 사실 등을 숨겨줌으로써 망자를 두 번 죽이는 행 위를 한 것이다. 조작된 진료기록 의료사고에서 유일한 증거는 진료기록이다. 이 기록이 정확 하게 번역돼야 소송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다. 현재 진료기 록 번역은 병원근무 경력이 있는 간호사, 혹은 피고측인 의사 가 번역해서 제출하기도 한다. 의학용어를 정확히 안다면 누구 든지 번역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피고 의사가 진료기록을 번 역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래도 위에서 보았듯이 용 어의 의미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간호사가 번 역한 경우라면 반드시 번역한 간호사의 이름을 기록해 번역 잘 못이 소송 잘못으로 직결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무책임하고 잘못된 번역이 소송을 패하게 한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91년 11월20일 오후 6시경 당시 6세의 여자아이가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에 화상을 입고 대학병원에 입원했 다. 그런데 입원치료를 받던 중 화상 상처가 악화돼 결국 오른 쪽 다리 전체에 심한 흉터가 남았다. 환아의 부모는 몇년간 병 원측을 상대로 지루한 소송을 했다. 그들은 진료기록과 번역 문, 소송자료들을 가지고 필자를 찾아왔다. 부모의 주장에 따 르면 아이는 가벼운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측의 치료 잘못으로 세균에 감염되는 바람에 심한 흉터가 남게됐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부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1도 화상은 흉터를 남기지 않고 치료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1도 화상이 2도 화 상으로, 2도 화상이 3도 화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부모들이 이런 의학적 내막을 잘 몰라 오해가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사건이 필자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피해자 들에게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 주면 너무나도 감사를 표하지만, 피해자의 주장을 반박하며 의사과실이 아니라고 설득하면 십중 팔구 『선생님도 의사니까 별 수 없이 의사편이네요』라고 비 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부모 앞에서 진료기록을 검토해 보았다. 두 장째 진료기록 을 넘기는 순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진료기록이 조작돼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조작이면 번역만 충실히 해도 밝혀질 사건이었다. 진료기록 번역문을 확인해 보니 진료기록을 번역 한 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고 단지 어떤 단체에서 번역했 다고 돼 있었다. 번역자가 기록 중 일부를 마음대로 누락시켰 고,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는 기록을 번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료사고 사건은 의학용어 하나에 모든 인과관계가 숨어 있다. 의사가 아니면 의료사고의 쟁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섣 부른 번역이 심각한 오류를 일으킨다. 이런 번역으로는 1차소 송에서 패소할 수밖에 없었고 필자를 찾아왔을 때는 2차 소송 중이었다. 진료기록의 번역 과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상에 대한 기 본 상식이 있어야 한다. 화상은 1도 화상과 2도 화상을 구별하 는 특징이 있다. 1도 화상은 피부의 표피층만 손상된 상태로, 홍반증(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증상)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 이고, 화상부위에 통증감각이 남아 있다. 이 상처는 흉터가 남 지 않고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2도 화상은 1 도 화상에 비해 더 깊은 손상을 입은 경우로서 대부분 수포를 형성한다. 2도 화상은 둘로 나뉘는데, 표재성 2도 화상은 흉터 를 잘 남기지 않고 치유되지만, 심부성 2도 화상은 흉터가 남 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식을 갖고 환아의 진료기록을 살펴보자. 환아가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 처음 진찰한 응급실 당직의사는 환아의 상태를 「허벅지에 커다란 수포가 있으므로 2도 화상」이라고 진단했다. 두 번째로 피고병원의 주치의가 환아를 진찰했는데 환아의 「허벅지에 표재성 화상이 있고, 홍반이 있고, 수포는 없고, 통증감각이 있다」고 진단사항을 기록했다. 두 의사의 진료기 록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응급실에 올 때는 2도 화상이었는 데 잠시 후 주치의가 볼 때는 1도 화상으로 호전됐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처음 환아를 진찰한 의사와 두 번째 환아를 진찰한 의사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허벅지의 커다란 물집이 두 번째 의사가 진찰할 때 사라져버린 것을 실수라 한 다면 이런 실수는 10분 뒤 사망할 환자를 퇴원시킨 것과 같다. 그러나 이를 실수가 아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진료기록 조작 의 개연성이 매우 높다. 「환아가 피고병원에 입원한 초기에는 1도 화상이었다. 그 런데 입원해 있는 동안 담당의사의 치료 잘못으로 심한 흉터가 생기자, 부모들은 변호사 사무실에 진료기록을 가져가기 위해 사본을 요구했다. 병원측은 환아가 내원 당시부터 2도 화상을 입어 심한 흉터가 남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제일 처음 진찰한 의사의 기록을 고쳤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두 번째 의사의 기 록을 고치지 못해 기록상으로 환아의 상태가 차이나게 남았 다」 같은 진료기록부 내에서도 의사에 따라 기록에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처럼 화상진단의 근거가 되는 수포 의 존재여부를 달리 기록하는 것은 조작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 더욱이 주치의가 기록한 진찰 결과를 요약하면 독자들도 1 도 화상이라 판단할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누락돼 번역됐던 것이다. 무책임한 진료기록번역은 피해자에게 이중의 피해를 입힌 다. 소송에 불필요한 부분을 빼고 번역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이 쟁점이 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도 모른 채 단지 번역하 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족쇄처럼 여겨 왔던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수술동의서 역시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여부를 밝히기 전까지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의료소송과 관련한 여러 가지 실례에서 살펴보았 듯이 의료사고 피해는 대한의사협회의 공정한 감정만 보장된다 면 지금처럼 사회문제화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대한의사협회의 불공정한 감정 시비로 인해 이제 의사협회가 의료사고의 또 다른 가해자로서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한의사협회의 권위와 입지 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의료사고 유발하는 의료보험제도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 전 의사들의 가입단체다. 필자 역 시 대한의사협회 회원이다. 그리고 협회가 의사들의 권익을 옹 호하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한의 사협회가 의료사고를 낸 의사를 감싸는 것이 의사를 위한 것이 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의료사고를 감 정할 때 갈수록 확산되는 의료사고로부터 의사의 피해를 최소 화할 수 있다. 맹목적이고 편파적인 감정은 대다수의 의사에 대한 모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과실이 있는 일부 의사에 게 반성의 기회를 주기는커녕 오만과 편견을 갖게 하고 더 큰 의료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의료소송과는 별개로 의료사고를 의사들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는 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이 각성해야 할 부 분이 있다. 의료보험이라는 싸구려 진료비에 만족해 자신과 가 족의 건강과 생명을 내맡기는 모험을 거둬야 한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3천2백원만 들고 가면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 라는 발상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가 환 자에게 특별한 검사를 권유하면 의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 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심지어 사기꾼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현행 의료보험은 환자의 건강을 위해 그에게만 나타날 수 있는 치명적인 특별한 질환을 찾아주지 않는다. 다만 통계적이 고 평균적인 질병만 검사하고 치료한다. 만일 감기 때문에 의 사의 진료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질병이 의 심되면, 의료보험은 보편성을 근거로 어떤 검사도 추가로 인정 하지 않는다. 이처럼 의료보험은 모든 의사의 뒤에 숨어서 의사에게 최소 한의 검사만을 하도록 강요한다. 의사의 치료행위에 전혀 도움 이 되지 않는 방해꾼인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무슨 검사와 치료를 하면 환자를 완치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하거나 검토하는 대신, 무슨 검사와 무슨 치료가 의료보험에서 인정되 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 만일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그에게 꼭 필요한 검사를 했 다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면, 의사는 과잉진료로 면허정지 2개월에 처해질 위험에 빠지게 된다. 어느 의사가 그런 위험부 담을 감수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의료보험은 의료사고가 명료하게 해 결되지 않는 1차적 원인을 제공한다. 치료과정을 정확하게 이 해하지 못하는 판결도 의사로 하여금 의료사고를 외면하게 만 든다. 이 모든 주체들이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의사에게만 책임 을 강요하면 의료사고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