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Sman (♣ 평화 ♣맧) 날 짜 (Date): 1997년10월17일(금) 15시08분52초 ROK 제 목(Title): [퍼옴]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안녕하세요. 유니텔에 ID가 없으신 분을 위해 유니텔 가동에서 퍼온 글을 올려 드립니다. 내용은 "종교와 문화"라는 강좌입니다. 유니텔 아이디 있으신 분은 가동의 엠마오 마을에 가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 종교을 어떻게 볼 것인가? >> 97. 10. 15 심백섭 예수회 수사 지난 번에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왜"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필자는 그 이유를 가톨릭 종교의 근본적인 정신으로부터라는 내적인 측면과 다원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현대적 상황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외적인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의견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필요성에 대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기 머리와 자기 가슴과 자기 손발로 생각하고 느끼고 생활하는가이다. 필자의 글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생생하고 더 절실하게 반응하는 것이 독자의 몫으로서 중요한 것이고 이 글을 읽고 그 필요성을 널리 알릴 수 있으면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번에 이어서 이 번에 다룰 주제는 상당히 논쟁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좋다. 다양한 종교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크게 갖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 가톨릭 신자로서 타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나 배타적 태도는 바람직할 것 같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타종교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수용적 태도는 자칫우리 신앙을 약화시키고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가톨릭 신자로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으로서도 그렇다. 종교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지 않을까? 프로이트가 종교는 미성숙한 인격의 유아기적인 강박 신경증이라고 본 데에는 적어도 어떤 일면적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을까? 포이에르 바하가 다음과 같이 종교를 본 것도 마찬가지이다. 즉,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애정이 메마르고, 무엇 하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을 때에 그에 상반되는 전지 전능하고 애정에 가득 찬 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 그렇게 자신의 주관적 희망을 투사(projection)한 것이 종교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비록 일면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는 할지라도 전면적 진실이라거나 핵심적 통찰이라고 보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를 총체적으로 보지않고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측면이나 보이는 것만을 보면서 종교의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 바 부분을 성급하게 전체화하고 특수를 조급하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처럼 타종교까지 포용하려는 것이 우리 신앙을 흔들리게 할 우려가 있다거나 종교라는 것이 일면 부정적 측면을 안고도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정직하게 승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종교에 대한 적극적 접근의 의욕을 상실할 수도 있다. 굳이 우리 신앙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면 주관적 환상물에도 불과할 것에 대해 누군들 무슨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려 하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타종교에 대한 고려가 없을 때에 한해서만 흔들리지 않을 신앙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다. 그런 신앙은 자기 방어나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신앙 공동체자체를 병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주관적 환상이거나 인민의 아편일지도 모른다는 등의 문제 제기에 대해 성실한 고민을 거치지 않은 종교도 차라리 던져 버리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종교는 분명 비합리적 측면을 핵심적 요소로 지니고 있지만, 그 비합리성이 합리성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단계의 것이라면 사춘기 이전이나 근대 이전에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비합리성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성숙해 버렸다. 근대와 사춘기의 시기는 그래서 모든 비합리성을 거부하는 때였고 합리성이 전부인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