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globule (하늘항해) 날 짜 (Date): 1997년05월03일(토) 22시15분50초 KST 제 목(Title): 추억속의 연희동 성가대 먼저 늦었지만 이 보드의 신설에 대해 축하하며 신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시샵님의 도움이야 빼놓을 수 없는것이긴 하지만, 4월 24일(25일?)경의 어느 이름모를 guest님의 천주교보드 신설 건의, 이어 byulnim님의 체정, 그리고 뒤를 이은 여러분들의 건의가 사실상 효시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가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며 숙식을 해결했던 곳은 서대문구 연희동의 이모님 댁입니다. 어려서는 복사를 중.고등부 시절에는 학생회에 열심히 참가했던 영향으로 서울에 올라와서도 처음에는 일주일에 2-3차례를 미사참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보통의 서울유학생 답게) 점차 성당에 소홀해 지고 급기야 일요일마저 미사에 빠지려하는 게으름을 느끼에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사회상이 시끄러웠던지라 학생들 사이사이에 퍼져있던 유물론, 또한 저는 상당히 자연과학에 심취하였는데, 자연과학의 특성상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는 경향, 등을 무시할수는 없었지만, 성당을 가기 싫어하는 자신을 발견하는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고, 생각 중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열심히 하였던 성당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탓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활동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평소에 미사때면 사람들의 감정을 무너뜨리는 화음을 구사하는 성가대라고 생각했던터라 저의 짧은 노래실력으로는 안되겠다 생각했으면서도 무작정 성가대 문을 노크하고 말았습니다. 아주 간단한 오디션을 받았는데 이 오디션이 part를 정해주려는 것이었기에 망정이지,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었다면 저는 겨우 문턱만 밟아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 목소리는 저음도 고음도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표시가 덜 나는 베이스로 정했습니다. 행여 실수라도 할 때, 생소리 나는 것보다는 안들리는게 낫다 싶었죠. ..... 성가대 연습이 일주일에 두번 이어서 우선 성가대에 가입한 일차적은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아울러 미사를 보다 정성드레 드리는 저를 발견한 것도 성가대 활동의 덕이었지요. 많은사람을 사귈 수 있었고, 또 부활절과 성탄절 특송을 준비하기 위해 성당을 오가던 그 길들. 그 해 성탄절 성가대원들 끼리 주고 받았던 마니또 게임! 행복하게도 저에게 선물을 준 사람은 제가 성가대 활동하며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던 한 여학생이었지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성가대 활동 그 자체보다는 무었인가 아무런 득실을 따지지 않고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나의 ㅐ�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난 진실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고 경제적인 이유로 연희동을 떠나게 되고... 그리고는 성당에 아주 소홀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방황탓이었는지, 당시 봉천동에 계시던 수녀님(고교때 다니던 성당에 계시던 수녀님)과 상담도 많이하고, 마음이 터져버릴 때면 그냥 성당에가서 어두운 감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서는 그냥 시계추 신자가 되버렸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성당의 미사는 제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니...... 우선 천주교회와 미사를, 그리고 천주교의 교리를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 사랑에 대한 관심도 없는 지금은 최소한 나의 영혼에 관한 한 무미건조한 생활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말라진 내 영혼에 단비를 내리려면....? 보이지 않는다고 한 낮의 하늘에 별이 없나요. 하늘항해 또 가슴에 품은 이상은 어떡할 것인가요. kimwt@astro.snu.ac.kr 꿈찾아 먼길 떠나는 하늘항해 globule@kids.kornet.nm.kr 꿈찾아 떠나는 하늘항해 globule@chollian.daco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