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unitas (조수사) 날 짜 (Date): 2004년 1월 27일 화요일 오후 05시 52분 08초 제 목(Title): 치매 다른 공동체에 사시다가 지금 내가 사는 공동체로 이사를 오시게 되어있던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오시지 않으셨다. 왜냐면 신부님께서 오늘이 이사하는 날인지를 잊어버리신 것이다. 그 신부님은 치매를 갖고 계시다. 머리가 똑똑하시기로 유명하셨던 신부님.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방금 식사하신 것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 신부님을 바라보면서 얼마전 선배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났다. 어느 수녀원에서 한 수녀가 있었다. 그 수녀님은 치매를 갖고 계신 선배 할머니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덜컹 겁을 먹었다. 그 이유는 '내가 하나 둘씩 내 주변의 것들을 잊어버리고 결국에 가서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때문에. 한참을 질문 앞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수녀님은 얼마후 그러한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수녀님은 기도안에서 '내가 하느님을 잊더라도 그분들은 나를 잊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삿날을 까먹으신 신부님은 수녀님들의 이야기에서처럼 하느님을 잊어버리시거나 하시진 않으셨다. 하지만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안에서 이런 질문들이 올라왔다.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나도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될까? 내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면 과연 나에게는 남아있는 것이 무엇일까?... 솔직히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주는 혼미함이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기에 앞서서 그 신부님의 삶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존경의 마음이 가슴 깊이 올라왔다. 할아버지 신부님이 우리 공동체에 오시려면 아마도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삿날을 까맣게 잊어버리셔서 이삿짐 정리를 아예 시작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 신부님이 앞으로 사용하실 방을 둘러보며, 잠시 기도를 했다. "하느님, 우리 할아버지 신부님을 축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