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76.tnt7.red> 날 짜 (Date): 2000년 12월 21일 목요일 오전 04시 06분 14초 제 목(Title): 한겨레/ 하론 신부님 [2000년의다윗들] 한국인 편견에 맞선 필리핀 노동자의 '벗' 8년전 선교위해 입국 동포차별에 '충격' 노동자센터 세워 고통나누며 희망찾기 지난 92년 글렌 지오바니 하론(37·한국명 장요한) 신부가 처음 맞은 한국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얼어붙은 대기는 그래도 견뎌낼만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한국인들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자그마한 얼굴에 쌍꺼풀진 큰 눈, 거뭇한 피부의 필리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한국인들의 눈빛에선 오만함이 배어났다. “그런 눈빛에 한없이 움추러드는 동포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필리핀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카톨릭 선교를 위해 한국땅을 밟았다. 하지만 강화도와 절두산 성당에서 사목을 하면서도 차별과 산재, 폭력에 내몰린 동포들의 절망은 늘 가슴을 내리쳤다. 마침내 지난 98년 그는 `필리핀노동자센터'의 주임신부가 됐다. 차갑고 신산한 동포들의 삶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올해는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불법체류 벌금이 면제되는 자진신고기간도 늘어났고, 경찰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있습니다. 이해하고 도와주시는 한국분들도 늘었구요.” 하지만 서울 성북동 성북빌라에 자리잡은 필리핀노동자센터엔 여전히 도움을 구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센터에서 만난 마르티노(50·한국체류 6년)는 3주전 경기도의 한 원단공장에서 쫓겨났다. 작업 도중 염료를 뒤집어써 온 얼굴에 1도 화상을 입었지만, 보상도 받지 못했다. 마르티노가 “사장님에게” 들은 건 “또 사고날까 두려우니 나가라”는 말뿐이었다. 글렌 신부는 전날 밤에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란디(25)와 마유미(26) 부부를 데려왔다. 지난 4월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마유미가 8개월만에 극심한 우울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입원까지 한 것이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마유미가 공장 상관들에게 혼난뒤 많이 괴로워했다”고 란디는 설명했다. 글렌 신부는 지난 19일 밤 마유미가 입원중인 강남성모병원에서 이들을 데려온 뒤 항공편으로 20일 오후 7시께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이날도 쉴 틈은 없었다. 일산보건병원으로 직접 승합차를 몰아 산재로 손목이 잘려나간 에릭을 만났다. 자원봉사자 황레지나(26·여)씨는 “도움을 원하는 곳이 너무 많아 신부님이 4시간도 못주무시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글렌 신부의 열성에 지난 6월 마르셀리노(40) 신부가 합류하면서, 센터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미사가 열리는 일요일 오후면 근처 혜화동성당엔 1500여 필리핀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매일 밤 8시 열리는 센터 미사에도 50여명이 찾는다. 황레지나씨는 “센터가 필리핀 노동자들의 삼바야난(공동체)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섬유공장 노동자 우즈(25)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늘 이 곳을 가장 먼저 찾게된다”며 “글렌 신부님은 좋은 친구”라고 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관심은 거대한 `골리앗'처럼 때로 약자인 필리핀인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벽도 친구가 된다면 넘을 수 있을 겁니다.” 손원제 기자wonje@hani.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