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pazu () 날 짜 (Date): 2000년 7월 31일 월요일 오후 02시 37분 29초 제 목(Title): Re: 윗글 보충 앞서의 글과 마찬가지로 이 글은 교회의 공식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스테어님과 다른 분들께도 저의 개인적인 신념으로 인해 누가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초심자의 입장에서 이 글을 씁니다. --- 스테어님의 리플라이 잘 읽었습니다. 스테어님의 <공부>라는 것, 또한 그 태도에서 많은 부분 존경을 느낍니다. 말씀하신대로 '궁극의 진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이란 진리탐구의 한 갈래로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을 듯 합니다. '하느님'에 관한 얘기는 이제 그만 해도 될 것같습니다. 의인화라는 문제 라든지 진리관이라든지는 만만치 않은 문제일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말씀드린 '자신의 신념을 위한 여러가지 행위'라는 것은 스테어님의 경우는 적어도 끊임없는 의심과 비판에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제가, 또는 간디가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의인화' 라고 말하기보다는 제 입장에서는 '이름붙인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도'를 '도'라고 지칭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인 한계일 뿐입니다. 먼저 스테어님께서 가지고 계신 '스테어는 스스로의 믿음 또는 신념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 또한 그런 진리관의 부재 등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고 환영합니다. 하나의 가치에 고착되는 것, 그로부터 파생되는 권위주의 따위 에 우리는 가까운 과거에서도 이미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스테어님의 그러한 <의심>은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가치만을 받아들이고 시작하겠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교회나 기타 종교가 가지는 체계에 대해 불만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자들이 교회가 제공하는 <은빛 갑옷>으로 무장하여 허약한 사고체계를 이어나간다고 보시는 것은 어느정도는 종교에 대한 <편견>도 있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자들이 겉보기에 순한 양처럼 교회에 순종한다고 생각하셔서 그들이 허약하다고 보시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신자들 역시 끊임없는 갈등과 의심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공고히해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빗나간 신앙을 통해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과거에, 또한 현재와 미래에도 끊임없이 발생하여 신자와 비신자를 모두 실망시키겠지만, 스테어님이 '스파링'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테스트하고 또 발전시키듯이 그들 역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오류를 치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스파링'을 저마다의 진리탐구의 일환으로 땀흘려 마치고 난 뒤, <부족한 몇%>를 보충하며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아쉬운 것입니다. 상대의 눈가를 펀치로 찢어놓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 상처난 자리를 치료해주는 것은 몇 주가 걸리는 일일테니까요. 스테어님의 그런 <의심>, 또는 '진리는 움직이는 거야!'론은 (^^;;) 불교에서의 <공>과도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느껴지네요. 선불교가 얘기하는 <깨침>이라는 것이 곧 '세계관이 밑바탕부터 뿌리째 뒤집어지는' 절대진리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겠구요. 스테어님께선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지만요. 불교에서 얘기하는 <자비> 라는 큰 화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소견으로는 기독교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자비>, 곧 인류에 대한 공감과 동지애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린왕자에 관해서는 그런 문법적인 것을 따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린왕자를 읽다보면 공감하는 (과연 공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여러가지 통찰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할 뿐입니다. 유명한 '길들이기'라는 부분을 볼 때, '아!'하는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스테어님께서 그런 공감을 하셨기에 그 어린왕자를 즐겨 인용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번 어린왕자를 읽어온 동안 새로 읽을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다른 것으로 봐서 스테어님의 '아!'가 혹은 '와우!'나 '쳇!'이더라도 적어도 뭔가 느낌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고 싶었고, 그런 측면에서 성서를 읽을 때, 반드시 같은 느낌을 받지 않더라도 분명 성서에도 통찰이 존재함을 지적한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비신자의 경우에도 어떤 느낌을 제공하기에는 충분한 것이 아닌가요? 애초에 어린왕자를 언급한 이유도 성서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신자들만의 편협한 해석을 벗어난다면 성서역시 어린왕자와 같은 일반적인 텍스트로서도 크게 무리가 있지 않다는 것에서입니다. 단지 교회의 입장이라 함은 '기적으로서의 오병이어'와 같은 부분을 지지한다는 점이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비유로서의 오병이어'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일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떡과 생선으로 배불리 먹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배불렀다는 식의 비유적인 해석이 있듯이 말이지요. 아니면 이런 입장보다도 더 물러서서 기적을 완전히 배제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어린왕자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일깨우듯이. 해석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더라도, 제가 받아들이기로는 '승천'의 문제가 '상향병진운동'이냐 아니냐를 분석하는 것이 교회에게도, 또한 비신자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논의의 목표는 차이점을 확인하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함께 공감할 수 있고 같이 걸어갈 수 있는 공통된 길을 찾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