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2000년 7월 28일 금요일 오후 06시 14분 14초 제 목(Title): Re: 윗글 보충 > 결국은 '하느님'이라는 것은 '자신의 믿음'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가 아닐까요. > 스테어님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믿음 또는 신념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 아니겠지요. '하느님'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신지는 모르지만요. > 스테어님께서 그런 신념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없는 만큼 스테어님은 그런 자신의 > 신념을 위해서 여러가지 행위를 하고 계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정하실거라고 >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저는 스스로의 믿음을 '의인화'하지 않습니다. 의인화가 무어 그리 큰 문제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알고보면 그리 만만치 않은 문제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staire는 스스로의 믿음 또는 신념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입니다. 저에게는 진리관이 없습니다. 절대가치도 없습니다. 따라서 저의 신념, 저의 세계관이 밑바탕부터 뿌리째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을 늘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이 내일은 엉터리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신념을 '일종의 하느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 스테어님이 지난 몇년간 (제가 기억하기로도 적어도 5년동안) 크리스쳔 보드에서 > 활발한 토론을 벌여오셨잖아요? 누군가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으면서 꾸준히 > 이의를 제기하시는 이유는 뭔지 궁금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스테어님 자신이 > 추구하는 신념의 정당성 또는 무오류성 따위를 이런 보드에서의 논쟁을 통해 > 끊임없이 되물어보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말하자면 변증법적인 > 것이겠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잠시 생각해본 것이므로, 크게 신경쓰지는 > 마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일테니까요.) 근데, > 만일 그런 태도시라면, 길가는 여러 사람들을 스파링파트너로 불러 세우신 다음 > 스테어님의 강펀치를 한방씩 테스트해보시는 건 아닌가도 생각이 듭니다. ^^; > 사실, 키즈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천'과 같은 미묘한 문제에 대한 > 스테어님의 질문에 잘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토마스 > 아퀴나스쯤 돼도 아마 스테어님과 논의하다보면 결국 서로 평행선을 달리지 >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저에게는 신앙인으로서의 시각이 심하게 결여되어 있으므로 저의 설익은 논리는 기독교인들과의 논변을 통해 단련될 필요가 있지요. 그 과정이 늘 험악한 논쟁으로 치닫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도 키즈를 통해서 또는 키즈 밖에서 맘 편히 성경을 논할 수 있는 많은 기독교인 친구들과 선후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키즈에서는 험악하지 않으면 쓰레드가 길어지지 않기 때문에 '스파링'을 연상하실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제가 공부를 그만두지 않는 한 스파링은 계속될 겁니다. 저는 궁극의 진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있으므로 평행선을 달리는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저의 강펀치(?)에 얻어맞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지적이 행간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점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얻어맞는 것이 아프게 느껴질 만큼 허약한 사람은 이미 교회에서 제공하는 든든한 갑옷 뒤에 숨어 있으니까요. (ex:시만두, hbh, KennyG, aRoNg 등등... 물론 aRoNg은 시만두와 동일인이지만요.) > 그리고, 어린왕자를 <교회에서 이해하는 것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 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 또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 일반 사회에서 이해하는 것이나 비신앙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다른 > 것인가요? 또 교회에서 어린왕자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 것인가요? 흠... 여기엔 오해가 있군요. 잠시 지나간 과정을 replay 해볼까요? pazu: 어린왕자의 구절들을 글쓰기에 인용하실만큼 비유의 아름다움과 통찰의 날카로움을 인정하시는 분이 성서의 비유와 통찰을 이해하지 못하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staire: 이해하지 못한다기보다는... 교회에서 제시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 대화에서 '어린왕자의 구절'은 '인용'의 목적어일 뿐 '이해'의 목적어가 아닙니다. 파즈님도 저도 '성서의 비유와 통찰'을 이해의 목적어로 썼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대답은 'staire는 성경의 비유와 통찰을 교회에서 제시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이해한다'는 의미일 뿐, 교회와 어린왕자를 연관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론 어린왕자는 어떨지 모르지만 교회나 신앙인이 성경의 비유와 통찰을 이해하는 방식과 비신앙인이 성경의 비유와 통찰을 이해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