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11일 목요일 오전 07시 24분 14초 제 목(Title): 퍼옴/신자유주의 비판한 '교황권고'발췌게� 국제 제 280호 1999.3.1 ------------------------------------------------------------------------------- - 新자유주의 비판한 '교황 권고' 발췌 게재 '신자유주의는 힘없는 자 지배를 정당화해 주는 이념적 근거' 정리·강대인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 - 지난 1월22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멕시코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메리카 교회’(Ecclesia in America)라는 제목의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ation)를 발표했다. ‘교황 권고’란 주교대의원회의에서 전체 가톨릭 교회의 뜻을 모아 발표하는 문서로, 신앙과 도덕은 물론 사회문제 등에 관한 가르침을 제시하는 ‘회칙’(回勅)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다. 이번에 발표된 권고는 지난 97년 11월 바티칸에서 열렸던 ‘주교대의원회의 아메리카 특별총회’의 결과로 제시된 문건이다. 이번 권고문에는 빈부격차와 이념의 문제가 복잡하게 엉켜 있는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한 가톨릭계의 입장이 망라돼 있다. 라틴어를 비롯한 6개국어로 발표된 이 문서는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를 진단한 2장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5장의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멕시코시티의 한 병원을 방문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어린이 환자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다. 예수는 사회에서 버림받고 배척당한 사람들과 함께 구원의 희망을 나눌 때 그 희망이 더욱 빛난다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헌신하라는 대(對)사회적 교리는 그리스도 공동체로 하여금 온갖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극복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개인적인 봉사와 활동을 통하여 빈곤 완화를 모색해야 할 뿐 아니라, 사회악의 근원을 밝혀 더욱 정의로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교회는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서 독재체제가 퇴조하고 민주적 정치제도가 지지를 받아 인권이 존중되는 긍정적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법치는 진정한 민주제도 확립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국민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도자들이 ‘진리 없이는 자유도 없다’는 확신을 갖지 않는다면 진정한 법치란 불가능하다. 실제로 인간의 존엄, 가정, 혼인, 교육, 경제, 노동조건 등 삶의 질과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많은 문제들이 법의 지배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대 세계의 특징은 세계화 경향이다. 이것은 아메리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현상임에 틀림없으며, 도덕적으로 볼 때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에 관심 가져야 경제의 세계화는 몇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다. 효율성과 생산력을 높이고 여러 국가간의 경제발전을 유도해 민족들간의 일치를 이루고 인류에 대한 보다 나은 봉사를 가능하도록 도와 줄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가 오로지 힘있는 자들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시장의 법칙에 지배받는다면 그 결과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업(失業) 증대, 공공 서비스의 감축과 퇴보, 자연자원과 환경의 파괴, 빈부격차의 심화,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열악한 처지로 몰아넣는 불공정 경쟁 등이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들이다. 따라서 교회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가치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부정적 측면들을 우려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힘으로 조장된 세계화는 또 어떤가. 어디서나 대중매체들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적이거나 자의적인 새로운 가치척도를 강요하고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민간단체 등은 인간 존엄에 걸맞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교회는 국가간의 화합을 증진하여 참으로 세계화된 연대(連帶)의 문화를 창출하도록 도와야 하며, 특히 경제 영역에서 자행되는 강자의 지배와 지역문화의 가치상실 등의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협력해야 한다. 한 국가나 국제 공동체 사이에서 또는 대륙의 지역 사이에서 평화와 화합을 파괴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사회악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마약 거래, 불법 자금의 유통, 사회 전반의 부패, 폭력에 대한 공포, 군비경쟁, 인종차별, 사회적 불평등, 무분별한 자연파괴 등이 바로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죄악들이다. 이 죄악들은 인간이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도덕적 원리를 잃어버린 데서 야기된 심각한 위기의 징표들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소위 ‘신자유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인간을 순전히 경제 개념만으로 파악하는 이 이론은 오로지 시장의 법칙과 이윤을 유일한 변수로 고려한다. 인간의 존엄을 손상시키는 이러한 이론은 때때로 사회·정치적 영역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이념적 근거로 악용돼왔다. 점점 늘어나는 가난한 사람들은 불의한 사회 구조와 정책의 희생자들이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 대한 최선의 응답은 진정한 정의를 추구하는 연대와 평화의 증진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재정 및 금융기관과 사법기관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모범적인 인물들을 격려하고 지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제도는 권력의 남용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므로 현재 아메리카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 과정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시민교육과 인권존중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정치지도자들의 도덕 훈련에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외채문제 해결 위해 국제적 지혜모을 때 주교들은 수많은 나라를 괴롭히고 있는 외채 문제를 우려하고 그들 국가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명하였다. 일반적으로 볼 때 외채는 조악한 행정과 부패의 결과다. 막대한 외채를 조장해온 원인은 투기성 금융정책으로 야기된 고금리만이 아니다. 실제 상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부 인사들의 무책임도 외채위기의 원인이 됐다. 해외 차관으로 얻은 거액을 국가 발전에 필요한 개혁에 쓰지 않고 개인적 치부(致富)를 위해 착복함으로써 외채는 더욱 악화되어왔다. 이러한 무책임한 결정으로 생긴 외채를 그러한 결정에 참여한 적이 없는 일반 국민에게 부담지우는 것은 불의(不義)한 일이다. 교육·보건·고용 창출 등 지극히 기본적인 분야에서조차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국가들에는 이자마저 짐이 되는 외채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교회는 여러 나라의 주교회의들에서 외채문제에 관한 연구모임을 갖고 가능한 해결책들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인은 대희년(大禧年)을 눈앞에 두고 발표한 교서에서, 성서의 희년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상기하며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인들은 희년이 다수 국가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국제적 부채를 전면 탕감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실제적으로 감면해 주도록 배려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제안하면서,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본인은 주교들과 더불어 그러한 희망을 거듭 밝힌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는 국무원, 외무부와 같은 관련 기구들과 함께 협의하여 제1세계의 대표자들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의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연구하여 외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또 앞으로는 기채 때부터 이와 유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한 광범위한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경제와 금융의 전문가들이 세계 경제질서를 분석하도록 하여 현재의 질서를 고치도록 하고, 개인과 민족간의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와 조직을 제안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막대한 공공 채무를 야기한 원인이 돼온 부패도 심각한 문제다. 국경이 없는 부패는 특히 국가와 민간의 권력구조와 지배층에 만연돼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제도, 투명하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못하면서 효율적이지도 않은 사법기관과 공공 투자기관 등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부정축재를 조장하고 있다.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확고한 도덕적 양심을 지닌 권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러한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 적절한 감독기관들과 경제 및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가 부패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부패의 참담한 결과를 그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 떠맡아야 하며, 사법기관 자체가 부패에 물들 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게 된다. 군비경쟁은 평화 위협하는 낭비일 뿐 교회는 유능한 신자들의 폭넓은 참여를 통하여 시민사회의 부패 추방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 이를 위하여 가정과 학교와 성당에서 진실과 정직과 근면과 공동선 등의 올바른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인간 존엄과 연대와 보조성의 원리를 세 축으로 삼고 있는 사회 교리를 실천한다면 부패 근절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아메리카 국가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가 군비경쟁이다. 교회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드높여 추악한 무기거래와 군비경쟁을 단죄해야 한다. 빈곤 극복과 사회 발전에 쓰여야 할 엄청난 돈이 군비경쟁으로 낭비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무기 비축은 그 자체가 정세불안의 원인이 되고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민족간의 평화와 형제애 증진을 위한 활동을 모색해야 한다. 요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도외시하거나 제거해 버리는 사회모델이 부각되고 있다. 본인은 여기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낙태의 희생자들, 노인들, 불치병자들, 안락사 대상자들, 그리고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때문에 사회 변두리로 쫓겨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본인은 또한 불필요한 사형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격자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해내는 데는 사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하다. 오늘날 범죄자의 자기구원의 가능성을 박탈하지 않고서도, 그리고 범죄자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하면서도 국가가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피고를 사형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있는 사건은 실제로는 그다지 많지 않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주교들은 바로 수정(授精)의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과 헌신을 강력히 천명하고 낙태와 안락사 같은 죄악을 단죄해야 한다. 신법(神法)과 자연법에 따르려면, 국가 법령과 사회 관습 안에서 가정과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해 연대의 길을 따라 걸으려면, 교회는 오늘날에도 차별을 당하고 있는 인종 집단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원주민들을 소외시키려는 온갖 시도를 배척해야 한다. 이것은 원주민들의 땅을 존중하고 그들과 맺은 계약을 지키는 한편, 원주민들의 정당한 사회적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본인은 아직도 인종 편견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후예인 출신의 아메리카인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인종이나 처지가 어떠하든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으므로, 민족간의 이해와 화해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구체적인 활동들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활동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다리를 놓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 아메리카는 세계 도처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밀려드는 수많은 이민의 물결을 경험해왔다.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민 현상으로 인해 특히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북부 대륙으로 이주하여 그곳 인구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흔히 그리스도교의 문화적·종교적 유산을 갖고 들어간다. 교회는 이민으로 일어나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잘 알고 있다. 교회 공동체들은 이러한 현상 속에서 복음의 형제애를 실천해야 할 특별한 소명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메리카 교회는 자기 나라 안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로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는 개인의 자연권이 부당하게 제한당하는 경우를 감시하고 이민자들을 보호하는 깨어 있는 변호자가 되어야 한다. 불법 이민의 경우에도 이민과 그 가정의 권리 보호와 인권 존중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메리카에는 도시화 현상이 증대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끝없는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흔히 편의시설·교통·교육·보건 등의 시설이 부족한 시골의 빈곤과 저개발이 그 주요 원인이다. 도시는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환락과 풍요의 환상으로 단순한 시골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무계획적인 도시 이주는 수많은 죄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어떤 도시 지역은 청소년 비행과 폭력 그리고 절망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섬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들 도시의 복음화는 교회의 심각한 과제다. 모든 사람은 환경 분야에서 구체적인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무의 이행은 자연자원의 고갈로 이어지는 이기적인 태도와 생활양식을 바꾸게 하는 정신적, 도덕적 개방성을 그 전제로 한다. 이 분야에서도 신앙인들의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입법·행정 기관들과 함께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은 효과적인 환경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도처에서 얼마나 많은 환경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기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환경 파괴는 수많은 땅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려 마침내 비참한 굶주림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복음을 출발점으로 삼아 연대의 문화를 증진해야 한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특히 폭력을 피하여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난민들을 적시에 도와 주어야 한다. 교회는 국제기구들이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제 공동체의 공동선 추구, 재화의 공정한 분배, 민족들의 통합적 발전이 지배하는 경제질서 등을 구축하도록 권유해야 한다. 신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라 올바른 양심을 형성해야 하며, 그 가르침을 출발점으로 삼아 실천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실업률이 높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나라들에서는 인간 존엄의 성취 요인인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노동문화의 증진은 조직사회의 도덕적 책임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소외당해서는 안된다. 노예제도와 사회적 차별 등 아메리카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기억은 화해와 친교로 나아가는 진지한 회개의 열망을 일깨우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그 누구도 배제돼서는 안된다. 그러한 사랑을 결코 편파주의나 파당주의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하게 사셨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또 따르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는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의 곤경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의 말과 행동, 그 삶은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와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 1999.3월호 ------------------------------------------------------------------------------- -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