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olic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luvhurtz (  송 훈)
날 짜 (Date): 1998년 4월 19일 일요일 오후 05시 27분 26초
제 목(Title): Re: SSman님의 뗏목과 불화






원문:

"하나의 사물(하나의 관점)에  집착해서 다른 것들(관점)을 열등하다고 멸
시하는 것,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족쇄라고 부른다"(<經集>), "비구들이
여  명확하고 분명한  관점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집착하고  애착하여 달라
붙는다면 내 가르침이 강을 건너면 놓아 버려야 하는 뗏목과 같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중아함경>)이라는 가르침 등에서도 확인된다.           

>제가 말씀드리려 했던 요지는 뗏목을 버리지 말았어야 한다는게 아니었습니다.
>뗏목을 버리느냐 안버리느냐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죠.
>뗏목을 안버리고 있는것도 집착이지만, 버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또다른
>집착이겠죠.
>다 건넜어면 그냥 일어서서 제 갈길 가면 되지요. 뒤 돌아볼 필요도 없이.
>그런데 문제는 다 건넜는지 아닌지 확인도 않고 대충 뭍이 가까워 보이니까
>대뜸 땟목을 부수는 경망한 행동에 대한 우려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뗏목에 집착하지 않는데 기독교는 뗏목을 놓고 절을 하고 난리더라
>하는 김용옥 류의 비교는 잘못된 것이라는 제 생각을 말씀드린 거구요.

SSman 님이 쓰신 그전 글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원문은 '강을 건넘'와 '뗏목을 버리지

않음' 둘 사이가 양립할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역시 뗏목과도 같은 그의 '가르침'에 포함되어 집니다.

전 SSman 님의 "뗏목을 부수면 안된다.", 혹은 "다 건넜는지 확인해야 한다"라는

예는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걱정하는 마음도 하나의 집착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다 건너지도 않았는데, 땟목을 너무 일찍 버리면 빠져 죽을 수도 있겠죠.
>>제 생각엔 강을 건넜어도 땟목은 그대로 놔 뒀으면 더 좋았을 걸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건너게요.

"강을 건넜어도 뗏목은 그대로 놔 뒀으면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은 

원문의 "강을 건너면 놓아버려야할 뗏목"하고 일맥상통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SSman 님은 "놓아버린다"란 말이 뗏목을 없애거나 부수는 행위로 

오해하신듯 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잘못 해석 했나요?

'다른 사람이 건너게요'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또한 불화를 짓밟고 침뱉는다는 데 대해 신성모독을 느낀 때문이 아니라 그 스님이 
>진정으로 그랬길 바라는 마음에서 “땡중”이라는 불경스런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진정 깨달았다면 자신이 얻은 대 자유의 표현도 좋지만 거기에다
>미천한 중생에 대한 대자비심을 발해서 그 불화에 조용히 합장해서 순교하셨더라면
>더 많은 중생의 제도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짧은 생각에서 한 소리였습니다.
>중생은 불화를 부처로 알고 절하고, 깨달음을 구하는 자는 거기서 부처님을 알고자
>절하고, 깨달은 자는 자신이 부처이므로 아무에게도 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누구에게나 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부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김용옥님의 예는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논하기 위해서 든 적절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님의 글을 읽을때 주로  '태도'를 많이 봅니다. 위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아

님은 기독교와 불교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님이 버릴수 없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

에 맞게 불교의 사고방식이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불화는 그 스님에게 '우상숭배나 유혹의 한

상징'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십자가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불교는 기독교만큼 '포교'에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많은 중생의 제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사고

방식으로 보여집니다. '의타'적인 태도라고나 할까요?

중생의 제도을 위해 순교하시는 그 스님은, 스님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더 어울리는

말이지요. 불교의 진리를 추구하는 스님이 거기에 맞는 당연한 행위를 하는데

그 역의 행동으로 순교하기를  바란다니.. '억지'에 가깝습니다.

그 밑에 쓰신,

>중생은 불화를 부처로 알고 절하고, 깨달음을 구하는 자는 거기서 부처님을 알고자
>절하고, 깨달은 자는 자신이 부처이므로 아무에게도 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누구에게나 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부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위 글에서,

님의 그 스님이 절을 해서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피해가는 행동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설득력없는 논리밖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기독교인들이 우상을 숭배해서 죽지 않도록 십자가를 밟고 가기를 
바라셨어야

했습니다. 성경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은 '십자가'에는 해당이 되지 않나

봅니다. 기독교의 순교는 우상숭배적 태도에 의해 일어나는것이군요.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 글은 순교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바로 기독교의

'우상숭배적인  태도'와 불교의 '우상숭배를 버리려는 태도'의 극명한 차이를 
보이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를 두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봅니다.

제가 말하는 '우상숭배적인 태도'는 어떤 실재로 존재하는 불상이나 십자가 같은 
것에

대해 절하고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

가짐의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행동도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이나 '예수'도 예외는 아닙니다. 



공존을 위한다는 것은 위의 님의 태도처럼 남의 것이 바뀌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존할 수 없는  부분을 버리고,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둘이 똑같다면 '공존'이란 단어는 불필요 합니다.

또한, 나의 모든것을 버리기는 힘들겠지요, 모든것을 버린다면 이미 '나'가 아닐 
테니

까요. 제 짧은 생각에는, 이 뿌리깊은 기독교의 사상은 공존을 위해 버려야할 것이 

많습니다. 불교의 사상은 공존을 위해 순조롭게 적응되어질수 있습니다. 

키즈에서만 보더라도 기독교 사상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아도 불교를 비판 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대부분 '기독교의 공존을 위하지 않는 요소' 즉 '배타성'과 
'우상숭배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스테어님의 '기독교  멸절론'은 기독교 사상이 존재하는 한 '배타성과 우상숭배적인

태도'가 없어지지 않을 거란 결론에 의한 것일 겁니다. 아직 저는 그러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잠시 여행을 다녀오느라, 리플라이가 늦어졌습니다.





 
   \_   //_//__\\\  |     ************************************************
        /\0' `0~ |\ /     8      email: gt3738a@prism.gatech.edu         8
        (|^<, ^  .)|      8             hsong@cc.gatech.edu              8
         ( ._.  ||/       8  >>RoSeS Of LoVe gLaD tHe GaRdEn Of LiFe<<   8
          \ .  / |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