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04월12일(일) 00시23분30초 ROK 제 목(Title): 예리큰아빠님께 저의 기독교 멸절 운동은 나치의 유태인 멸절 운동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들을 죽이거나 배교시킴으로써 멸절시키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대생 시절의 병원 실습때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의 부탁을 들어 준 일들을 제외하면 아직 한번도 기독교인을 살해하고자 한 적이 없으며 아직 한번도 기독교인에게 배교를 권유한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개신교회의 목사 김준곤은 헌법에 '대한민국의 국교는 기독교다'라는 구절을 넣고 싶어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믿음에 관한 선택을 강요하는 권력이 있다면 그것이 국가든 교회든 다른 무엇이든 저항할 것입니다. 정부가 기독교를 금지하면 제가 박수를 쳐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에 개신교 보드에서도(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 보드'라는 이름은 문제가 있는 듯...) 언급한 적이 있지만 현대는 이미 '기독교 이후 시대'입니다. 기독교는 인류에 대한 장악력을 상당 부분 잃었으며 점점 더 약해질 것입니다. 저는 그 과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독교 측의 반동적인 저항이 예상되므로)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 주로 어린이와 중고생들이지만 - 인간이 기독교 없이도 도덕적으로, 경건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기독교의 경전과 교리의 문제점, 역사에 저지른 과오 등을 알리는 일을 합니다. 그리하여 아직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웬만하면 기독교를 택하지 않도록 이끌어 줍니다. 기독교는 스스로 멸절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지 누가 쓰러뜨리려고 애쓰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제가 멸절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천년 만년 번창할 장사도 아니고 일 개인의 멸절 운동같은 시시한 이유 때문에 쓰러질 약골도 아닙니다. 전쟁이나 잔혹한 학살을 연상하셨다면 이런 설명을 듣고 김이 빠질지도 모릅니다만... 간단히 말하자면 저는 기독교를 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빈사 상태의 기독교를 위해 안락사를 준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천주교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달동네 공부방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유도 아직 비판 능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정보만이 주어지기보다는 불신자의 견해를 접할 기회도 같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주일학교 교사로 일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그래도 잔혹해 보인다면 할 수 없지요. 찐따 anti-christian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show를 구경하십시오. 구경거리라고 할 만한 게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천주교와 불교, 원불교 등은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공존을 원하지 않는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공존'을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공존에 능숙한 편이죠. 콘스탄티누스라는 군벌과의 제휴를 통해 원시 기독교가 변질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제휴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사소한 것 하나만 예를 든다면 원래 콘스탄티누스 군단의 군기였던 labrum이 십자가와 나란히 기독교의 상징물로 등장합니다. (P자의 세로 획에 X자가 겹쳐진... 개신교에서는 이런 걸 인정 안하겠지요?) 그 이후에도 기독교는 여러가지 밀교나 토착 신앙과의 '공존'을 모색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슬그머니 일요일로 넘어가고 태양신의 축제일이 예수의 생일이 되고 달력에는 수호성인으로 이름을 바꾼 갖가지 정령들의 축일이 넘쳐나고 다산의 여신 숭배가 성모 숭배가 되는 등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요. 소위 '찐따 개신교인'들에게 그때문에 씹히고는 있지만요. 그렇지만 늘 공존만을 추구해 왔던 것도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칼로 해결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거든요. 요즘의 천주교가 여타 종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칼로 당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형세가 아니기 때문이죠. 바티칸에서는 60년대부터 이미 형세 불리함을 알고서 유화 전략을 내걸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60년대 이후 이슬람과의 과도한 마찰을 자제하고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위에 다른 분들의 글에서도 언급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 시기의 일입니다. (물론 개신교회는 이런 움직임을 좋게 볼 리 만무하죠. beegee님께서 차마 '공존은 당치 않다'라고 말하기 뭣하니까 '공멸은 원하지 않는다'라는 투의 김종필식 초점 흐리기를 시도하신 것이고...) 형세가 호전되면 다시 칼을 빼어든다는 것은 이미 천주교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시 호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티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자주 보이는 천주교측의 유화 제스쳐는 기독교 이후 시대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향후의 생존을 모색하는 움직임인지도 모르지요. 무해한 집단으로 비쳐지기를 기대하는... 그냥 밟히라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모색하자는 말씀은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공존을 거부하고 무자비하게 밟아대는 것만을 능사로 행하던 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살벌해보이는 멸절론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공존'의 틀에 저의 기독교 멸절론도 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겠지요. 기독교 멸절론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정당한 이해를 근거로 한 것이든 당신은 기독교 멸절론을 '잔인'하고 '무자비'한 '찐따' 반기독교인의 사고방식으로 파악하고 계신 듯 합니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불평할 이유가 없지요. '기독교 멸절론'이나 '천주교 음녀론'이 공존의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하는 게 더 이상하겠죠. 즉, 아무리 너그럽고 모든 걸 다 포용하는 체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당신에게 기독교 멸절론에 대해 그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라(기독교 멸절 운동에 동참 하시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당신의 '공존론' 역시 용납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편협하다거나 더 포용성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기독교 멸절론은 기독교를 위험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퇴치를 추구합니다. 당신은 공존론은 기독교 멸절론을 위험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철회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양자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막연히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너그럽고 아름답고 재미있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저도 당신만큼이나 공존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 더우기 그런 코끼리가 '그래도 포용성 있는 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다지 > > 유쾌하지 못하군요. * >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 여기서 코끼리는 무엇을 나타내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만을 골라 포용하는 체하며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단호하게 배격하는 SSman님의 세계관입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의 세계관도 거기에 속하는 듯 합니다. 저의 세계관만큼이나 편협한 코끼리겠죠. 끝으로... 당신이 추구하는 (김수환씨가 추구하는?) 공존을 향한 노력이 진실로 결실을 맺는다면 그 순간을 기독교 멸절의 완성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그때는 이름만 기독교일 뿐, 나사렛의 목수나 타소의 천막장이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될 테니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전부터 시대착오적인 구절들을 성경에서 삭제하거나 상징적인 비유로 치부하거나 순박한 청년 예수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심오한 의미를 저 좋을 대로 붙여 가며 지키기 편한 것만 지키는 데에 익숙해 있으니까요. 그러니 알고보면 당신과 저는 같은 코끼리를 만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하시겠지요? '당신의 세계관에 따르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