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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Sman (inigo)
날 짜 (Date): 1998년03월18일(수) 15시51분02초 ROK
제 목(Title): 문디님, 그리고 용운님..


문디님.. 

>첫째, 님이 전에 올리신 글(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부가적인 해석 즉 아버지는 한분
>     이신가 ? 청년은 누구인가 ? 불교나 이슬람교를 통해서도 그 아버지에게로 갈
>     수 있는 것인가 ? 라는 것이고...

제말에서..
아버지는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현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두분일 수가 없겠죠?
청년이 예수인지 부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아버지의 집에는 문패가 없다고 믿셔미야..
이대목에서 아마도 저를 사이비라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둘째, 바울의 회심과 같은 '님의 회심'의 배경(기독교 용어로는 간증이라고 하지요
>      아마 ?)이 궁금합니다.

가톨릭에서는 간증이란 말을 쓰지 않죠. 신앙고백 정도로 말하죠.
저가 회심한 날은 96년 10월입니다. 교리가 시작된 날이죠.
물론 그전에도 가톨릭에 대한 인상은 나쁘지 않았고, 개신교계 미션 스쿨을 다닌 
관계로
어릴때 교회도 몇번 나갔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 와이프가 모태신앙을 갖고
있었고요.
그러나 분명히 저는 그때까지 반종교적 입장에 있었고, 지금 스테어님, 
클라우드님, 
문디님등과 한치의 차이도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 개심은 많은 경우 개인적인 동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생관, 세계관이 그렇게 의식적으로 바꾸어 지는건 아겠죠.
일반적으로 개인적 고난, 고민 같은게 중요한 동기가 되지 않을까 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적극적 해결책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에 메달려 있는게 아니라 문제위에 올라서서 문제 자체를
조정하신다고 보면 어떨까요?
아무튼 제 경우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회심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별로 
없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잃은 것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얻은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남이 볼때는 딴사람이 된것 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안하던 말을 막 하니까요. 제가 이런 글들을 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감히 깨달음에 대해 말할 자격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귀동냥 눈동냥한건 있어서 이렇게 주절거리게 된 겁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뱀 꼬리를 달자면...
>하느님 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의 님에 대한 느낌이랑, SSman님...종교란...에 
대한
>답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무척이나 달라 보입니다.

기독교,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저의 개념을 일련의 제 글들에서 알아차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가 가톨릭에서 공인된 개념인지는 저도 불확실 
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생각들의 대부분은 많은 가톨릭 서적들을 통해 습득한 것이고,
제가 알고있는 바로는 가톨릭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그렇게 경직되고 
폐쇄된 교리체계를 고수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올바른 길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한 유연성이 신앙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종교를 내 취향에 맞추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무조건적 믿음이 더바람직할 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서두르지 않으렵니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게 마련이고, 지금의 이러한 제 신앙관은 오직 초보자의
자기 위안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압니다.
제 신앙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극복되리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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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용운님..

>"너에게는 인생을 낭비한 죄가 있다.."
>20대에..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등등..
>누구가 가지는 삶에 대한 화두에 고민할 때..
>저 대답에 제게 답을 주었죠..
>맞아요.. 저도 깨달았다 이겁니다.

무엇을 깨달았는지 궁금하군요.
안소니 드 멜로 신부의 "awareness"란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오죠.
"인생에서 우리가 진실로 안타까와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어떤것이 
아니라
우리가 놓친 수많은 기회들이다" 라고. 
무슨 기회를 말하는 것일까요?
성공할 기회? 돈벌 기회?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참으로 한번 살아보고 죽을수 있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바로 남입니다.
나의 자아가 강할수록 타인의 존재가 그만큼 크게 부각 됩니다.
그런 속에서 자유란 없습니다. 
반면,‘나’라고 부를게 없으면 ‘남’이라고 부를것도 없습니다.
‘나’가 없는 상태가 바로 대 자유입니다.
이것이 제가 인식하는 바로는 모든 종교의 목표입니다.
불교의 열반도, 기독교의 구원도 바로 ‘나’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내가 잘나서 여기 이자리에 지금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그분이고 따라서 나는 그분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고 왜 나를 만드셨는지.
그런데 그것을 아는데 최대 걸림돌이 바로 ‘나’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란 바로 ‘나’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게 볼때 불교와 기독교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교리, 전례, 경전, ..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기회란
바로 내가 누군지 그리고 너는 또 누군지 깨달아서 
너와 내가 참으로 한번 잘 살아볼 기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깨어남을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깨닫지 못한 우리는
지금 자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면서 밥먹고, 자면서 회사가고, 자면서 일하고, 자면서 술마시고,
자면서 사랑합니다.
그러다가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자다가 죽습니다.
“말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예수님께서 귀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근데... 깨닫고 보니 어쩌고 하는 기독교인들..
>저 말에서 별로 깨닫는 게 없는 사람도 있겠죠.

속세의 관점에서 보면 구도란 시간 낭비일 뿐이겠지만,
진정 시간낭비는 우리가 꿈결에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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