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olic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maika (별물도령)
날 짜 (Date): 1997년06월07일(토) 17시51분10초 KDT
제 목(Title): 베낀글.. 그리스도당시의 유대종파.



기독교보드에 올렸는데, 카톨릭보드에도 올릴께요..

열심히 베낀글입니다.
절차탁마대기만성, 金容沃著,p92-97.통나무출판사, 일부발췌


 
 유대인 예수가 살았던 시대의 유대교 종파는 대강 다음 넷으로 구분된다.
 
 1.바리새인 2.사두개인 3.열심당원 4.엣세네인 
 
 前三者는 신약 성서에 언급되어 있고 第四者는 1세기의 유대인 철학자 알
 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 B.C.15-10 사이에 출생)와 유대
 인 史家 후라비오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 혹은 38년에 예
 루살렘에서 출생하여 A.D. 100년경 로마에서 죽음)의 문헌속에 기술되어 
 있다. 이 중 열심당원은 A.D 6년에 구레뇨 총독이 행하는 국세조사를 반대
 하기 위해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로마에 세금내기를 거부했고 로마인의
 축출을 게릴라전법으로 시도하였다.
 로마인들이 유대의 신을 유일신으로 받들지 않는 한 용서할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적 바탕 위에 서 있는 종말론적 경향을 갖는 제사장들의 운동었
 다.  정치적으로 보면 바리새인은 로마통치를 인정치 않았으나 항거하지 
 않았다. 열심당원들과는 달리 신의 섭리에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 나라를 얻는다는 종말론적인 희망이 모세의 율법에의 복종으로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열심당원들은 로마와 타협하는 
 인사들의 테러를 행하였다.
 요세푸스는 A.D 54년에 조직된 이러한 테러단을 시카리(Sicarii=Assassins
 )라고 부르고 있는데 시카리란 시카리오이(Sikarioi)라는 희랍어에서 온 
 것으로 칼잽이들이란 뜻이다.  그들은 死海부근의 마사다 성채(the fortre
 ss of Masada)에서 로마병정에게 포위되었을 때 모두 자결한 문자 그대로
 의 열성당원이었던 것이다.(A.D 73)
 
 이들에 반하여 사두개(히브리어로는 체도큄)인은 극히 보수적이고 귀족적
 인 그룹으로서 대부분 늙은 제사장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토라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면에서는 바리새인과 같으나 바리새인은
 율법의 구전을 더 중시한데 반하여 이들은 기록된 5경에 집착하는 엘리트
 주의자들이었으며 부유하고 거만한 귀족들이었다.  그리고 사두개인은 로
 마당국에 협조적이었으며 헤롯왕을 신봉했다.  사두개인을 극보수적인 
 右로 본다면 바리새인은 퍽 진보적인 左로 속한다.
 
 바리새인은 어원적으로 "더럽고 속된 것으로부터 격리된"이라는 뜻을 갖는
 바루쉬(parush)란 말에서 기인하고 있는데 이들은 돈많고 권세많은 제사장
 그룹의 압제에 항거한 도시의 중산계급으로 구성된 서기관(the scribes=so
 ferim)그룹에서부터 발생하였다. 이들 서기관의 특정한 그룹을 하씨딤(Has
 idim=Pietists)이라고 불렀는데 이 경건파 하씨딤이야말로 바리새인의 모
 태이고 이들은 토라의 구전을 중시하여 토라와 예언서를 자기들의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해석한 중산계급의 리버럴한 유대인들이었다.
 즉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절대적 일의성을 부여하면서도 그것의 적
 용과정에서는 매우 혁신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두개인과는 달리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주장하여 그것을 민주화시키려고 하였다
 . 즉 제사장들의 율법까지도 일반인들이 지켜야 하며 일반인들 속에 제사
 장다움(priesthood)이 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토라에 이스라엘의 모
 든 사람이 복종할 때 天國(Kingdom)이 도래한다는 종말론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죽은 자의 육체적 부활을 믿었다.  사두개인은 부활은 구약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여 믿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난 사실
 을 발견하게 되는데 유대사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결국 바리새인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속에서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서기자들은 예수사
 상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예수와 바리새인의 대립되는 측면만 부각시켜 기
 록하고 있지만, 예수는 실로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하여도 큰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기본이념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예수가 바리새인과 가장 많이 변론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들과 가장 가까웠고 또 그드의 이념라인에서 볼 때 가장 래디칼한 성향
 을 지닌 인물로서 또 그들과 많은 충돌이 있었던 것같다.
 예수는 우선 바리새인의 율법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토라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시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 5:17-8)
 라고 한 것은 구약(토라와 네비임)의 전통 내에서의 예수 자신의 자기이해
 의 소박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율법주의와 복음주의가 대립
 적으로 즉 일자가 철저히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된 것은 철저히 헬라
 화된 유대인인 바울의 이해 속에서였다.  그리고 우리는 바리새이즘을 
 사해문서의 연구성과에 비추어, 단순히 소수에 한정된 특수종파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유다이즘의 전통 자체 내에서 유ⅱ인의 일반적 태
 도의 폭넓은 관점 속에서 그 묵시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성격이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바리새인이라고 규정할 때 그것이 예수의 아
 이덴티티 전체를 덮는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예수라는 실존인물의 이해의
  복합적 측면의 일면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할 뿐이다.18)
 각주: 물론 이런 주장들은 나의 사견이 아니다. 유대학에 있어서 일반화된
 상식적 견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EB 10:315c.)
 
 그러면 엣세네파란 무엇인가? 어떠한 믿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가?
 사해문서에서는 "義의 스승"과 대적되는 상징적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사악한 제사장(The Wicked Priest)이란 고유명사와 "예루살렘의 마지
 막 제사장들"(last Priests of Jerusalem)등의 표현이 그 예이다.
 즉 쿰란집단의 사람들은 항상 가상의 적을 긴박하게 느끼고 있으며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고 자기들의 선택받음을 믿는다.  한마디로 이들을 강하게 
 특징지우는 것은 종말론적 사고다.  종말론적 사유는 필연적으로 선자의식
 을 동반하고 이 선자의식은 그들에게 강력한 공동체적인 의식을 부여하였
 다.  사해문헌 중에 '빛의 아들들의 암흑의 아들들에 대한 전쟁'(The War 
 of the Sons of Light Against the Sons dof Darkness)이라는 책이 있는데
 , 이것은 쿰란집단 소속의 사람들을 빛의 아들로 규정하고 그 외의 모든 
 인간들을 암흑의 아들로 규정하고 그 양자 사이의 종말론적 전쟁을 묘사하
 고 있다.  처음에는 자기들을 제외한 모든 유대인들과의 전쟁이며 다음 단
 계에서는 모든 이방인들과의 전쟁이다.  암흑의 자식들은 악마인 벨리알(
 Belial)과 그의 군대의 도움을 받으나 결국 완전히 박멸되고 광명의 자식
 들은 이 세상을 완전히 정복하게 된다.  이 집단에 입회하기 위해서는 최
 소한 3년의 매우 엄격한 이니시에이숀과정을 거쳐야 하며 정회원이 되는 
 마지막단계에서는  "무서운 서약"(tremendous oaths)을 해야만 한다. 그리
 고 이들이 가장 엄격히 한것은 성찬이다.  성찬에는 정회원만 참석할 수 
 있으며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David와 Aaron)에 대한 준비이다.
 이들은 모두 독신이었으며 육체노동을 했고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판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
 었다.  즉 이들은 강렬한 묵시론적-종말론적 성격을 갖는 유대종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종말론적 성격은 초기기독교집단과 동일하다. 초기 기독교 
 집단 역시 유대사적 입장에서는 유대교의 한 종말론적 종파에 불과하다.
 그러나 초기 유대인 기독교집단은 소위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후였고
 파루시아(Parousia=the Second Advent)의 때에 올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알
 고있었으며 이미 사탄의 권세를 제압한 역사적 인물 예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으므로, 엣세네 종파에 비해서는 종말에 대해 훨씬 더 구체적이
 고 긴박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쿰란종파에서는 현세를 정복하고 
 현세 위헤서 빛의 세계를 실현하는 현실론적 종말론을 가지고있는 데 반하
 여 초기 기독교종파는 철저히 현세부정적인 종말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이 매우 다른 것 같다.  이 점이 아마도 쿰란종파와 영지주의자들이 종말
 론적 사유패턴에 있어서 매우 유사성이 있으며 상호관련성이 있으면서도19
 ) 각주: 엣세네파를 영지주의화 된 바리새인들(Gnosticizing Pharisees)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EB, 10:314h.)
 ,양자를 우주적 드라마에 있어서 다른 성격을 짓느게 만드는 점일 것이다.
 20) *각주:
 20) 세례요한이 바로 이 엣세네파의 한 사람이라는 가설은 학자들 사이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EB 2:947b and 10: 315a).요한
 복음 1장 5-8절에,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온 자라"
 하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 구절은 요한복음서 기자가 속해 있던 일파와 세
 례요한이 속해 있던 일파간에 모종의 이념적 대립을 예시하고 있다.
 세례요한파에서는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떠받들고 있었고 그에 대립하는 
 요한복음기자파는 세례요한의 성격과 위치를 정확히 규정하여 그는 빛 그 
 자체가 아니고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고 하였고, 예수의 출현을 
 마련한 전단계적 인물로서 예수에 철저히 예속시켰고 유대 전민족의 회개
 와 새로운 소망을 위한 지도자 혹은 예언자로서 그를 아필시키고 있지 않
 다.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은 사건도 물론 기록하고 있지 않다.
 요한복음서의 기자가 영지주의계통의 사람이라는 것은 불트만의 주장을
 떠나서라도 이미 모든 성서학자들에게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엣세네파와 영지주의의 만남을 여러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불트만은 이러한 측면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 주어진 
 자료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兩者가 이에 대립적으로 인식되었다
 는 것은 兩者가 이미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쿰란문서에서나 요한복음에서 "빛과어둠"의 사상은 공통된 것이다.
 단지 세려요한파 엣세니즘(Essensism)과 쿰란집단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
 었나 하는 것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리고 물론 요한복음서 
 기자가 소속해 있던 집단과 체노보스키온의 영지주의 집단과의 관련성 또
 한 동일한 논란으로 남는다. 그러나 영지주의 사상과 쿰란집단과의 관련성
 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EB, 10:314-315). 參見 류형기,
 '성서주해', III : 771,772,795,796. R. 불트만著, 허혁譯, '요한복음서연
 구', (서울: 성화문화사,1979),pp.1-39.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