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aDA ] in KIDS 글 쓴 이(By): Dooly (Kinky) 날 짜 (Date): 2003년 6월 21일 토요일 오전 01시 27분 10초 제 목(Title): 마가린 두덩어리2 아내가 산기를 느끼지 시작해서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너무도 모든것이 순식간에 일어난지라, 아기가 나올것같다는 얘기를 양쪽집안 어른들께 이야기할틈이 없었다. 아내가 병실로 옮겨진후, 나는 공중전화로 양쪽집안 어른들께 전화를 드렸다. 한국에계신 장인어른은 아이를 낳았다고 말씀드리니까, 누구 딴 사람얘기하는 줄 알고, 별로 신경을 안쓰시고 들으시더니, 우리아기가 나왔다는 얘기를 확인하시곤, 장인어른 특유의 걱정이 시작되셨다. 아내가 퇴원하후, 나는 약 2주가 매일 병원엘 혼자 다녔다. 하루에 두세번씩 아이를 보러가는것이다. 사실 인큐베이터안에 있는 아이게게 아빠로서 내가 해줄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뱃속에 있을때, 들었던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다고 하니, 매일매일 가서 아이와 얘기를 하려고 시도했다. 그때는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상태라 그냥 "아가야~" 로 부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아기에게 했다. 온갖 수치가 아이의 인큐베이터 위에 매달려있는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다. 각각의 그래프와 수치가 의미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봐야만 했다. 간호원이 아주 친절하게 하나하나의 의미와 상태변화에대한 해석, 그리고 각각의 정상수치는 얼마이고, 어떤경우에 어떤 수치가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다 기억할수가 없어서, 적어달라고 했더니, 내일내가 다시 올때까지, 정리해서 적어놓을테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했다..참 친절하다는 생각과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약 1주일은 모든것이 보기좋았다. 모든 수치도 정상이고, 또 아이도 바깥세상에 적응을 잘 하는듯 보였다. 그러마 문제는 2주째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 아기들이 태어나면 처음 2-3일안에 심장에서 나오는 덕터스라는관이 자동으로 닫혀야 하는데, 우리아기는 그것이 계속 열려있다는것이다. 결국은 심장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게되고, 피를 몸 구석구석에 보내주는데 문제가 생기고, 결국에는 치명적일수있다는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약물로서, 그것을 닫아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에는 약물로 실패를 하곤, 그 작은아이에게 심장수술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어찌해야 하나!, 다행히도, 바로 옆에 붙어있는 Children's Hospital of Eastern Ontarion (CHEO) 에 아동 심장 전문의가 있어서, 수술을 바로 할수있었다. 수술이 잡혀있던 바로 전날, 아기는 8명의 의료진이 달라붙어 아동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후송이라봐야, 건물과 건물사이의 인도어브리지를 걸어서 가는것이지만, 옮기기전 준비하는것만 몇시간이 걸릴정도로 치밀하게 준비가 되어졌다. 아동병원의 중환자실로 옮겨지 우리아기는 수술을 기다리는 다른 아기들과 함께,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몇년전, 아내가 아동병원에서 간호실습을 할때 수퍼바이저였던 사람이, 중환자실 메네저였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좀 미안할정도로 우리 아기를 특별히 대접해주는것이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 9시에 수술이었다. 8시반쯤 중환자실을 나와 또다시 수술실로 옮기는데, 나와 아내는 수술실 문턱까지 따라갔다. 아기도 뭐를 아는지, 목소리는 낼수없지만(인튜베이션한게 성대를 막고있기때문에 우는 모습만 보임), 수술실로 옮기는 내내, 발버등을 쳤다. 아내와나는 그런, 아기의 모습을 보며,안타까웠지만, 어찌할수없는 마음에 그냥 묵묵히 아이를 바라보며 그를 따랐다. 수술실 문앞에 이르자, 간호원이 "time to say bye.."라고 하는것이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와 아내는 서로부둥켜않고 울어버렸다.아내는 아직 몸조리도 채 마치지못한상태인데다가, 너무도 안타까움에, 실신상태였고, 그런 아내를 부축해서 그 매네저가 예약해준 침대가있는 특실에 아내를 눕혔다. 아내가 잠든것을 확인한 나는, 바로 수술실 앞 으로 달려가, 그앞에 앉아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발 우리아기 살려주세요...살려주시면 주님뜻대로 선하게 살겠습니다..." 사실 아기가 태어난이후로, 난 늘 하나님과 협상을 해왔다. 그 모든 협상의 전제 조건은 "살려만 주시면....건강하게 살려만 주시면..." 이었다. 수술전날, 수술을 집도할 의사와의 미팅시간이 있었다. 한시간의 기다림끝에 나타난의사는 젊고 훤칠한키의 인도계 사람이었다. 수술의 진행은 어떻게되고, 또 수술은 어디를 절개해서, 어떻게 할것이면, 수술의 효과는 언제부터 나타나고, 부작용은 어떤것들이 있으면, 지금까지의 통계로는 이런 부작용은 몇퍼센트정도 나타나고, 저런 부작용은 몇퍼센트정도 나타나고...등등...하지만 가장큰 염려는, 아기가 아직 미성숙단계이고, 너무 작기때문에, 그런 부작용의 가능성이 보통의 통계보다는 많을수있다라는것이다...대부분의 퍼센트가 25프로를 다 넘고, 특히나 수술중 내부출혈이 있으면 생존율은 제로이고, 또 그 덕터스주변으로 지나가는 성대로연결되 신경을 건드릴수있는데, 그러면 평생 목소리를 가질수없다는것이다. 그 가능성은 25프로...물론 자신도 조심을 하겠지만,아이가 워낙 작아서, 그 성대로 연결되는 신경을 볼수없기때문에, 자신으로서도 장담을 할수가 없다는 말과함께.... 모든것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술실 앞에서, 어젯밤 의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조목조목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또다시 협상이 시작된것이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니 두시간이 지나갔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기도 했지만,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았나하는 걱정에 수술실을 바라보고있는데,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나왔다. 난 우선 그의 표정부터 살폈다. 사실 그전날 그와의 대화후 그가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을 보며, 좀 걱정을 했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볼때는 몰랐는데, 뒷모습을 보니, 뒤에 포니테일을 한게 아닌가. 웬지모르는 포니테일에대한 선입견, 날라리라는...과연 수술을 잘 할수있는 의사일까? 혹시날라리 의사는 아닐까???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수술이 아주 잘되었고, 내부 출혈도 전혀 없었다라며...나는 성대신경이 걱정되어, 물어보았지만, 그것에대해서는 의사 자신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앞으로 2-3주는 니나야 성대신경이 손상을 입었는지를 알수있다면서....사람의 욕심과 의심을 끝이 없는듯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니, 이젠 목소리를 잃을까봐 걱정이다. 곧장 아내에게로 달려가 흔들어 깨우고는 수술이 아주 잘되었노라고 얘기해주었다. 아내는 모든 기력을 잃고, 베시시 웃을 뿐이다. 아이가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지고, 몇시간후 수술한 의사가 나와 아내를 한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자신이 한 수술에대한 모든 설명을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재미있는것은, 설명을 시작하기전에, 나와 아내의 직업을물어보는 것이다. 난 왜 그런걸 물어보나 싶으면서도, 내 직업을 얘기하고, 아내는 간호원이라고 얘기를 했더니, 우리의 의학적인 지식이 어느정도인지를 알아야, 자기설명의 수위를 맞출수있기때문이란다. 참 합리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술후 아이는 빠르게 회복을 해갔다. 그러나 수술전 심장문제때문에 손상을 입은 폐가 잘 치료가 되질않아, 몇주동안 스테로이드제를 주사받았다. 워낙에 폐가 작은데다가, 손상입은 부위가 폐전체라서, 혼자서 스스로 숨쉬기가 불가능 했던것이다. 폐와함께, 아직 목소리도 듣지 못한우리는 늘 염려속에 아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심장수술후, 3주정도가 지나자..그동안 계속 맞았던 스테로이드가 작용을 한탓인지, 폐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날갔더니, 아이가 산소호흡기를 떼고 혼자숨을 쉬고있었다. 너무도 기쁜마음에 아이를 안아봐도 되냐고 했더니, 간호원이 나보고 옷을 벗으란다...엥! 혹시 이여자가 나에게 흑심을....난 참 착각을 잘한다...아내 말마따나..난 왕자병인가보다...옷을 벗으란 이유는 아이를 skin to skin으로 안아주라는 뜻이었다...연구결과에 의하면, 부모와 살갖을 자주 맞댄 조산아들일수록 성장속도가 25프로나 빠르덴다..나의 몸매를 드러내는것이 창피하긴 했지만, 나는 과감히 웃통을 벗어제끼곤,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느낌이 너무 좋았다...내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을자는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어제는 아기가 처음으로 엄마젖을 빨았다.나도 지난 몇달동안 빨아보지 못한 지엄마의 젖이지만, 하나도 질투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뛸듯이 기쁘다. 그얘기를 들은 큰녀석은 에헤헤...하며, 부끄러워한다...여섯살이라고 뭘아나보다.. 난 요즘 우유 배달부다.아침 저녁으로 젖소부인이 생산한 신선한 우유를 우리 아기에게 먹이기위해 열심히 배달을 한다. 나와 아내는 젖소부인과 우유배달부로 또다는 직업을 가지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