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aDA ] in KIDS 글 쓴 이(By): Dooly (넬로섭머린) 날 짜 (Date): 2001년 5월 13일 일요일 오후 12시 58분 29초 제 목(Title): [퍼온글]캐나다드림의 빛과그림자 世態특집 오,캐나다! ‘캐나다 드림’의 빛과 그림자 부푼 가슴에 되는대로 꾹꾹 꿈과 다짐을 담고,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들을 끌어모아 이윽고 짐을 싼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 떠난다. 캐나다로!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지가 어떤 곳인지 정말 제대로 알고 떠날까? 1999년 이후 불어닥친 ‘캐나다드림’과 함께 국내에는 숱한 캐나다에 관한 정보가 넘친다. 다양한 이민 알선·상담기관, 그리고 TV·신문 ·잡지와 책자까지 저마다 캐나다를 알리겠다고 난리다. 그러나 그 정보들은 십중팔구 ‘캐나다드림’을 修飾하는 것일 뿐이다. ‘캐나다학 박사’의 칼날같은 어드바이스, 현지 주재기자의 냉철한 관찰을 통해 ‘캐나다 드림’의 실상과 그 뒤안을 조명한다. ‘한국인 캐나다學 제1호’ 문영석 박사의 苦言 ‘재미있는 지옥’에서 ‘재미없는 天國’으로 한국 식당들은 재래식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는다. 독창적인 사업보다 교포 중 누가 돈을 잘 버는가 살펴보고 모방할 뿐이다. 중국인들은 먼저 현지인의 입맛을 조사하고 그에 맞는 메뉴와 맛을 재창조한다. 두 민족 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중국인은 캐나다의 외식산업을 장악했다. 유행이란 ‘모방적 전염의 메커니즘’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모방적 전염은 대중의 열기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 가기 때문에 합리적인 분석이나 개인의 주체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특히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단일화된 사회에서는 무엇이 한번 유행했다 하면 순식간에 뜨겁게 가열되는 소위 ‘냄비문화’ 현상을 일으킨다. 근래 국내에 갑자기 불어닥친 캐나다로의 이민이나 유학 열풍도 이러한 모방적 전염성이 갖는 전형적 특성을 드러내며 갖가지 허구와 과장이 난무한다. 특히 근래 TV·잡지·일간지 등에서 경쟁적으로 캐나다 특집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몇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첫째, 대다수의 취재 대상들이 극히 최근에 이민이나 유학간 사람들이었는데, 누구나 현지에서의 첫 3~4년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느라 극도의 정신적 불안과 방황, 심리적 갈등이 따르게 마련이다. 과연 그런 상태에서 캐나다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전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둘째, 그곳에서 태어난 교포 2세라 해도 갑자기 들이닥친, 더구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의 취재진에게 부모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자신들의 여러 가지 내면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마약이나 대인관계 등의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합리화의 천재들이기 때문에 취재기사의 객관적 엄밀성을 위해 좀더 전문성 있는 분석이 따르는 여과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이런 피상적인 보도는 이민이나 유학이란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들의 판단을 오도하거나 혼란과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어차피 ‘유행은 모든 인간적 모순이 빚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냉철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1981년 캐나다로 이주하여 오타와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캐나다 제1의 명문인 토론토대에서 두개의 석사학위와 한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학창생활 동안 교포들을 위한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교포사회의 온갖 문제와 애환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1996년 9월 외무부 산하 코리아파운데이션(Korea Foundation) 초청으로 귀국하여 서울대에서 지난 4년간 강의했고 현재 국내에서는 최초로 강남대 국제학부에 캐나다학 전공을 개설하여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17년 간의 캐나다에서의 필자의 삶의 경험과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유일한 캐나다학 교수로서의 사명감, 그리고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언제나 외교관 관저의 손님방을 배려해 주었던 모교 동창이자 통상 담당 영사인 장 필립과 이민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아준 이민담당 영사 로리, 그 외에도 캐나다학의 국내 탄생을 위해 온갖 도움을 준 주한 캐나다대사관의 각급 외교관들의 신빙성 있는 자료 제공과 그들의 솔직한 충고를 토대로 기술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흔히 캐나다 하면 그동안 한국인들에게 떠오르는 인상은 아름다운 풍광, 풍부한 자원,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있는 나라 정도로 인식됐다. 그러나 사실 캐나다는 단순한 자원부국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서방 선진 7개 공업국(G7) 중 하나다. 남한의 100배나 되는 광대한 국토(998만 km2)에 인구는 고작 3,000만명 정도에 불과하며 경제면에서도 정보통신(ICT)·광전자(photonics)·우주항공산업 등에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의 거의 3분의 1이 캐나다의 캔두(Candu)형이다. 북미 인터넷트래픽(internet traffic)의 70% 이상이 캐나다 기술이며 고도로 숙련된 기술노동력(캐나다 4위, 미국 24위: 1999년 세계경쟁력 연감)과 G7국가 중 가장 높은 컴퓨터 활용 능력(OECD 통신개요 1999, 1판)을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을 생각할 때 우선 대상지로 떠오르는 나라는 미국·캐나다·호주· 뉴질랜드 정도다. 모든 이민자들은 우선 2세들을 위한 교육제도, 직업, 사회적 안전성과 여러 가지 보장제도를 염두에 두고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캐나다는 세상의 어느 나라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역시 세상의 중심은 아직 미국인데 그 미국을 코앞에 두고(미국 인구의 절반이 토론토로부터 트럭으로 10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 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사실상 양국은 경제면에서 국경이 없어졌다. 양국 간의 1일 교역량 17억달러, 연간 교역량은 6,630억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의 2자간 교역관계이며 생산성 성장률은 2.9%로 미국의 1.4%를 오히려 앞서고(Statistics Canada, 1999) 생활비도 G7국가 중 가장 낮다(UN·Human Development Index 1999). 무엇보다 북미 이민 희망자들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치안 문제만 해도 안정등급에서 캐나다는 4위, 미국은 22위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캐나다 최대 도시인 토론토에서 17년 동안 살았지만 단 한번도 거리에서 강도에게 강탈당하거나 노상폭력을 당한 적이 없다.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활기찬 캐나다 도시의 야간 풍경에 탄성을 지른다. 이런 모든 객관적 지표들이 유엔으로 하여금 1994년이래 내리 7년 동안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 pment Index: 평균수명, 교육수준, GDP 등을 합산하여 삶의 질을 평가함)에서 캐나다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해 온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런 매력들이 가장 많은 한국 이민과(2000년 전체 이민자수의 60.6%를 캐나다가 차지함, 2000년 외교통상부 재외국민 이주과 통계자료)과 해외 유학생(1999년 교육부 통계)들을 유입함으로써 미국을 제치고 캐나다가 일약 1위로 부상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혹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지표는 이외에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문제는 이런 객관적 지표들이 개인의 주관적 행복지수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삶의 모순은 시작된다. 견디기 힘든 문화적 충격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 인간의 정체성과 문화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 노출되면 정서적 혼란과 충격을 느끼게 된다. 이런 문화적 충격은 성장 단계에 있는 어린애들보다 성숙한 어른들에게 더 심각한 현상으로 다가온다. 한국 남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위 ‘출세강박증’에 시달려 왔다. 무릇 남자란 좋은 학벌과 높은 자리에 앉아 돈 잘 벌어 자신과 가문의 이름을 빛내야 한다는 것이 고전적 의미의 출세론일 것이다. 이민한 기성세대들은 적어도 이민을 떠나기 전에는 대부분 이 사회의 중·상류층에 속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수직적 위계질서가 뿌리깊은 나라에서 어떤 면으로 보나 남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었던 야릇한 자존심이 철저하게 수평적인 캐나다 사회로 진입하자마자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가부장제도와 남성중심주의 이데올로기가 뿌리깊고 왜곡된 데서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며 이런 뒤틀린 통로를 통해 한국 남성들은 겉으로는 강한 체, 자신 있는 체하지만 사실은 두렵고 허약한 자아(自我)에 치어 몹시 의존적인, 그래서 한국 남성들의 3대 특징이라는 ‘단순·무식·과격’을 드러내 어느덧 아내와 자식에게마저 배척받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필자는 토론토에서 교포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화적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혼하는 수많은 사례들과 심지어 황혼이혼(60~70대 노인)까지 많이 목격하였다. 토론토 웨스턴병원의 한인 전용 정신과 클리닉의 임승호 전문의에 의하면 “동양계, 특히 초기 이민자들 가운데 문화와 언어차이 등으로 인해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민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대표적 정신질환으로는 우울증 및 불안공포증, 피해의식증 등이 나타나는데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일시적 증상들은 꾸준한 관심을 갖고 대화를 통해 차근차근 본인의 기대감을 현실적으로 접근해 풀어나갈 경우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고도 치유가 가능하지만 이런 초기 증상들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증상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들은 “적응 단계를 건너뛴 채 하루 속히 목표를 이루려는 욕심과 집착이 이민자 정신질환의 최대 원인”이기 때문에 “능력에 맞는 장기적인 계획과 이곳 생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차분한 마음가짐이 정신질환을 비껴갈 수 있는 예방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간이란 의식주가 해결되면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명예 욕구는 보편적 현상이다. 영어라는 두터운 장벽은 그곳 주류사회로의 진입은커녕 시장정보마저 어둡게 만들어 그곳에서 육체노동이 아닌 직장을 잡기는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이민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부분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동안 교민 자영업의 대종을 이루던 소위 ‘구멍가게’(Grocery Store or Corner Store 라고 불리는 일종의 동네 잡화상점)나 커피숍·식당·식품점·세탁소·야채가게 등 모두 1년 열두달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문을 열어야 하는 고된 노동집약적 사업들이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회전의자를 굴리며 여직원들이 서비스하는 커피를 받아 마셨는데, 어느덧 권위의 무게가 목덜미에 정착된 중년 남자가 하루 내내 계산대 앞에서 푼돈이나 만져야 하는 현실 앞에서 인생무상과 허무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갖가지 현실적 장벽은 자연스럽게 사교마저 한인사회를 맴돌 수밖에 없는 게토(Ghetto)를 형성하게 되고, 그 좁은 교민사회에서 이권과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용쟁호투식 갖가지 권력투쟁과, 준법정신은 빈약하면서 툭하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습성은 캐나다 변호사들의 주머니를 불려줄 뿐이다. 한국이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같은 사회라면 캐나다는 잔잔한 호수같은 사회다.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한국사회에서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득한 인생항해에 길들여진 한국 남성들에게는 모든 것이 안정된 캐나다 사회란 참으로 지루할 것이다. 캐나다는 룸살롱도, ‘영계’도, 폭탄주도 없는 나라이며 모든 것이 가정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다. 그래서 퇴근하면 재빨리 집에 가서 잔디 깎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어야 하지 퇴근 후에도 거리를 방황하며 2차, 3차 하다가는 능력있는 ‘싱글’은 될지언정 가장은 될 수 없는 사회다. 실제로 성범죄가 세계 최고라고 고발하는 한국 성폭력문제연구소의 증언이나 아시아에서 최고라는 혼외정사 비율(남 65%, 여성 41%; 조선일보 2001, 3, 18) 등을 보면 한국은 조용한 성의 혁명(quiet sexual revolution)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다. 이처럼 달콤한 향락문화의 천국인 한국과 달리 의외로 캐나다가 단조롭고 보수적인 사회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교민들은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요, 캐나다는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투덜대게 된다. 그런데도 왜 재미없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그토록 주한 캐나다대사관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하고 각종 이민설명회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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