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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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elika) <61.83.33.19>
날 짜 (Date): 2002년 6월  9일 일요일 오전 01시 22분 43초
제 목(Title): Re: 너의 목소리가 들려...


98년 봄이었다. 챠우챠우.. 위의 어딘가 글에도 쓴 것같다. 우리집 
케이블에서-요즘 텔레비전과 동고동락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틀어주는 '후아유' 광고를 보면서 사는데 그 노래 알아들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게 정말 주문같았다. 알순 없지만, 나같이 전체로 
사물을 파악하는 성향의 인간이 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떠올리기는 참 
힘들지만 그나마 나름대로 발달한 청각기관덕인지 할리님 말대로 기억력 덕인지 
목소리는 남는다. 

그런데.. 사람의 목소리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22에 
헤어진 사람과 3년만에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아.. 이렇게 목소리가 변하는구나. 어쩌면 기억이란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나의 의지 속에 갖혀 있는 것일지도..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추억이란 기억 저편, 예전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고 색을 입힌 이미지, 나의 꿈이라고..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그도, 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는 헤어진 후에 항상 바란다. 
제발 깡그리, 나라는 사람 만났던 것까지 잊어주기를.. 어쩌면 그걸 바라지 
않았어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할리님처럼 내게도 그런 노래들이 있다. 사람과 노래와, 냄새와 
바람이 어우러진..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걸 미세하게 느끼는 내 촉감이 참 
고맙다.. 그리고 그 속에 가끔 실려오는 풀내음과 꽃향기도, 바다냄새도.. 

You've lost lovin' feeling 고3때 시험끝나고.. 먼지가 되어.. 이승환 1집 
2집, 신승훈 '두번째의 사랑', 015B 제목을 기억할 수 없는 4어쩌고.. 환경부 
전화번호라 소문났던 노래, 천일동안.. 너의 나라.. 
96년의 Creep, 타락천사에 나온 망기타.. 이제 나의 노래에 대한 기억은 '나'의 
내면과 관련있는 단계로 넘어간다. 혼자서 내가 부른 노래.. 아무말도 
아무것도, 불멸의 사랑, 그래도 사랑해.. 난행복해.. 제발. 좋은 사람.. 
Dangcing Queen, 일본판 I love you..

끝없이 이어질 것같은 목록을 떠올리며 결국 그리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내가 그립다. 추억을 떠올리며 울 수 있는 내가 그립다. 결국 나는 
내 감정을 붙잡고 거기에 먹이를 주고, 소중한 무엇인양 키워왔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람의,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의 그림을 보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밝고 이쁜지... 이해해보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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