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halee (아기도깨비) 날 짜 (Date): 2001년 8월 30일 목요일 오전 12시 05분 06초 제 목(Title): Re: 부모님한테는 전화 자주하세요??? 놀랐습니다. 글이 갑자기 늘어서. ^^ *--------- 9년째입니다. 집 떠나 타향살이. 갑자기 대학교 동기가 3학년 때 했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울 오빠는 하숙생활한 여자는 절대 사귀지 말아야 한다구 그런다." 그 때는 기숙사 생활하는 걸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는데... 흠흠. 수요일. 오늘은 서울에서 퇴근해서 대전에 내려오는 날입니다. 정말 몸이 부서질 듯 피곤하네요. 터미날에 내려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학교로 가기 싫어하십니다. 팍 내려버리던지. 아님 웃으면서 이런 저런 말씀 드려서 풀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냥 머리 기대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착한 아저씨라 딴 말씀 안 하고 학교로 가 주시더군요. "이봐요. 학교 들어가서 직진이에요?" 웃으면서 물어봐 주시구요. 기숙사까지 들어가자고 하기 미안해서 그냥 연구실에서 내렸습니다. 하던 작업 진행이 눈에 들어오길 기대한 건 무리였겠죠. 그 아저씨. 50대가 가까워 보이는 그 아저씨. 기사 아저씨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나올 때 빈차로 나올 것이 뻔한 학교로 들어가는 거. 늦은 시간까지 퇴근도 못 하고, 손님 찾아 거리를 돌아다녀야 하는 거. 집에서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것이고. 그들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사람들은 "승차거부"입네 "서비스 정신이 부족합네" 해대고.. .... 음. 부모님께 전화하는 이야기였죠? 요즘에는 생활이 그렇습니다. 시계를 본다. "음 저녁 8시네. 엄마가 뒷산 운동장에 운동하러 가셨겠네. 10시되면 들어오시겠당. 그때 전화해야징." 시계를 본다. "음 11시네. 에이. 주무시겠다. 오늘 또 전화 못 했네. 내일 해야지." 대학교 때는. 정말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사투리로 떠들어 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 통화료 할인되는 9시 지나기만 기다려서 뒷사람 눈치보면서 이틀에 한번씩은 공중전화를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보니.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될까말까하는 하나밖에 없는 딸래미의 통화 횟수가 좀 아쉬우신 거 같기도 해요. 마음에 여유. 그게 없다보니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네요. 엄마랑 통화. 그게 "부모님께 드리는 전화"였고 "집에 하는 전화"였죠. 엄마가 아프시거나 집에 안 계셔서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시면. 그 어색함. 따뜻한 속내를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못하신, 우리 시대 아버지의 그 무뚝뚝함과 과묵함. 요 근래 전화를 하면 아버지랑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퇴직하시고. 할아버지 모시고 계시면서. 많이 지치신 아버지. 퇴직 이전보다 너무 많이 지쳐버리고 나이가 드신 아버지는. 요즘에는 먼저 이런저런 말씀들을 먼저 건네십니다. "공부는 잘 되냐? 요즘은 뭐 하냐? 어.. 오늘은 말이지.." 아버지와의 대화가 너무 좋기도 하지만. 작아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어. 어떨 때는 전화를 끊고 멍하게 있게 되기도 합니다. ... 버스에서 눈 붙인 것도 "수면 시간"에 포함되는 건지. 몸은 더 피곤한데. 수요일에 학교에 와서는 잠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시간 뒤척거린다고 쳐도.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봐야 되겠죠. 하하. 얼마전에 연구실 선배 오빠한테 안부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의 앞머리가 "하이. 투덜이 현아"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투덜거릴 장소가. 투덜거리는 거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죠? ^^ 누가 그러더군요. 20대는 선택과 도전. 30대는 성취. 40대는 책임의 시기라구. 그래서 40대부터 사망률이 급증한다구. 언젠가부터 주변에 투덜거릴 수 있는 사람보다. 나에게 와서 투덜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석사 1년차일 때, 지금 나처럼 박사 4년차였던 선배 언니가 했던 이야기. "선배들이 만들어줬던 그늘이 그립다. 예전에 어릴 때는 큰 나무들이 가려주는 시원한 그늘에서 편하게 지냈는데, 언젠가 내가 큰 나무가 되서 아래에 있는 작은 나무에게 그늘을 만들어 줘야 되는 걸 알았다. 하늘의 그 너무나도 쨍쨍한 햇살을 다 막아내면서..." 누구나. 자기는. 너무나도 허약한. 덩치만 자라버린 "큰 나무"라고 생각할까요? 가을이 되면... 햇살도 덜 따갑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