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ikjun (염익준) 날 짜 (Date): 2000년 7월 25일 화요일 오전 03시 56분 08초 제 목(Title): 집까지 걸어가던 날. "야. 역은 이쪽이야." "오늘은 걸어갈꺼야." 여자친구한테 버림받은 남자가 홧김에 술한잔 먹고 집까지 걸어간다는, 어제밤에 본 어이없는 내용의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보다가 생각난 건데 예전에 나도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걸어간 적이라기보다 걸어갈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라고 해야겠다. 물론 여자한테 버림받았다 라는 등의 그럴 듯한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여자한테 버림받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객기를 부렸으면 아마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다. 아님, 진짜 건강해졌던지. 어쨌든 이랄까, 대학교 2학년 아님 3학년때, 봄아님 가을 어느날 밤에 친구들 셋 아님 넷이서 밤 12쯤에 신촌을 출발했다. 정확한 동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고 보니 정확한 건 하나도 없구나 이런 젠장,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날밤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춥거나 덥지 않고, 습기가 많지도 않은 정말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 아마 그 날씨가 이유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어쩌면 정말 그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때는 나도 꽤 젊었었으니깐.. 하하.. 아무튼, 신촌을 출발해서 이대앞을 지나, 아현동, 서소문으로 해서 시청앞까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무슨 얘길하면서 걸었는지, 걸어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는 건 거의 없지만, 기억나는 몇가지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이대앞에 여학생들이 없어서 좀 아쉬웠던 점. 몇번인가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피던일. 뭐가 그리 웃겼는진 모르지만 끝도 없이 웃던 일. 그리고, 시청앞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발바닥을 주무르면서 다신 이런 미친 짓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던 일. 끝으로 옆에서 발바닥 주무른다고 지저분하다던 냉정한 친구놈. 내 친구가 나에 대해서 한 말 중에, "넌 뭔가를 하기로 한 결심은 대부분 못지키지만 안하기로 한 결심은 칼같이 지키는 이상한 놈" 이라는 것도 있지만, 10년이 넘은 친구들은 정말 무섭다, 그런 이유에선지, 그 이후로 그런 만용을 부려본 적은 없다. 올 여름에 한국 들어가서는, 예전 결심은 다 잊은 척하고, 좋은 날 받아서 다시 한번 걸어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젠 유부남들이 된 친구들이 협조해 줄런지 모르겠네.. 써 놓고 보니 결론은 또 장가 못간 넋두리로구나.. 요즘은 무슨 얘길 어떻게 시작해도 항상 이쪽으로 마무리가 된단 말야.. 우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