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YonOul (.. 리온 ..�) 날 짜 (Date): 1996년08월30일(금) 20시08분46초 KDT 제 목(Title): [뉴스] 강원희선교사, 한국의 슈바이처 「한국의 슈바이처」. 제6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의료선교사 강원희씨(62) 를 네팔 현지인들은 이렇게 불렀다. 틈만 나면 걸인촌을 찾아 환자를 어 루만지는 그를 걸인들은 「형님」(Big Brother)이라고도 부른다.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오지중의 오지를 무작정 찾아든지 올해로 14 년. 강원도 속초에서 10여년간 「대동의원」을 운영하던 강씨가 82년 갑자 기 번성하던 병원 문을 닫고 선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나섰을 때 노부모 를 비롯한 주변에서는 눈물로 그를 말렸다. 그러나 48세 한창 나이의 고 집은 요지부동. 『아무 관계도 없는 UN군 병사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이젠 우리도 남을 도와야지요.』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1.4후퇴때 월남 해 어렵게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의 꿈은 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선교 사였다. 실향민이 많은 속초에 내려와 터를 잡은 후에도 『병원이 안될 때 해외로 나가면 사람들이 의심을 할 테니 병원이 가장 잘 될 때 그만 두고 해외선교를 나설 것』이라는 게 그의 입버릇이었다. 부인 최화순씨(60)와 함께 처음 정착한 곳은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 라시. 그곳에서 간호사 출신인 부인 최씨와 함께 국제선교단체 산하의 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펼쳤다. 피가 모자라 자기 팔에서 직접 피를 뽑아 네팔인에게 수혈하고, 차가 다니지 못하는 왕복 10시간 거리를 걸어서 왕진을 하기도 했다. 87년 강씨 부부는 방글라데시로 옮겨와 수도 다카 부근의 난민수용소 병원에서 근무했다. 그 이듬해 방글라데시를 다녀온 며느리 이경혜씨(31) 는 『병원이 우리나라의 보건소만도 못한 시설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 다. 『나무침대와 청진기, 의약품 약간이 전부였어요.』. 강씨부부는 91년부터 3년동안 스리랑카에서 인술을 펼친 뒤 지금은 다 시 네팔에 돌아와 노년의 봉사활동을 정리하고 있다. 일가상은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고 일가 김용기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으로 이번 제6회 수상자로는 강씨와 함께 농업부문에서 「옥수수 박사」 김순권(51) 경북대 농과대 교수가 선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