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YonOul (.. 리온 ..�) 날 짜 (Date): 1996년08월30일(금) 20시05분31초 KDT 제 목(Title): [뉴스] 살아선 `스승' 죽어선 `교재'로… 살아선 `스승' 죽어선 `교재'로… 숨지자마자 시신은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실로 옮겨졌다. 선후배들은 곧 부검용 칼을 들었다. 식도암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시신은 다시 내년 3월을 기다리며 냉동창고로 들어갔다. 그때쯤 그는 해부용 침대에 누워 다시 1백90여명의 후학들과 「해부학」 강의시간에 만 난다. 29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지하1층 장례식장. 전날 분당 차병원에서 숨진 이호선박사(54·전 이화여대교수)의 부인 이은산씨(48·선화예술학교 강사)는 북받치는 설움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남편의 뜻을 따르게 돼 기쁘다』는 말만 되풀이 했지만 흐르는 눈 물을 막지는 못했다. 95년 5월 암에 걸린 후 1년3개월간의 투병끝에 사 망한 이박사는 『내몸을 의학도들의 부검용으로 사용한 뒤 다시 해부학 「교재」로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박사는 이 어려운 결정을 사후에야 가족들에게 알렸다. 『돌아가시기 닷새전이었어요. 분당 집으로 절친한 친구인 김세종 교수(연대의대)를 불러 유언장을 남겼대요.』 부인 이씨는 『저 는 김박사 로부터 어제 비로소 남편의 유언을 전해들었습니다』고 말했다. 이박사가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30년전인 66년 연세 의 대본과 1학년 때 스승 김명선교수의 강의를 들은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질병의 원인을 알려면 해부가 가장 좋은데, 유교적 관념 때문인 지 부검을 꺼려하는 게 안타깝다. 여러분이 이런 풍조를 깨야한다』는 게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80년초 사망한 김교수는 평소 지론대로 스스로를 모교에 기증했다. 그로부터 16년 후 이박사 역시 남몰래 스승과 맺었던 30년전의 약 속을 따랐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며 김세종 교수는 『가장 친했던 친구 의 마지막 결정이 한국 의학의 수준을 한 단계 진보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이는 평소 묘자리나 산소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지요. 학교측에선 내년 3월부터 6개월간 남편의 시신을 해부용으 로 사용한 뒤 납골당에 안치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부인 이씨가 이렇게 말하는 사이 이박사의 큰 딸은 『그래도 아빠 산소가 없잖아…』라며 고개를 떨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