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 ILEEN) 날 짜 (Date): 1996년03월31일(일) 12시15분09초 KST 제 목(Title): [한국일보] 노수석 군 관련 기사 번호 : 9/27 입력일 : 96/03/30 08:54:15 자료량 :77줄 제 목 : 가두 시위대학생 사망 29일 하오 6시30분께 서울 중구 을지로6가 을지전화국 부근에서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인상 등에 항의, 시위를 벌이던 연세대생 노수석씨(20.법학 2.광주 북구 두암동 동산훼밀리아파트 401호)가 시위도중 쓰러져 국립의료 원에 옮겨졌으나 숨졌다. 노씨는 이날 시위도중 경찰의 추적을 피해 학생 10여명과 함께 중구 오장 동 대현문화사로 피해 인쇄기 뒷편에서 쓰러져 있다가 인쇄소 직원에 발견 돼 119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졌다. 국립의료원 조덕연병원장(56)은 "노씨 도착 당시 의료진 3명이 검안한 결 과, 동공이 확대돼 있고 호흡과 심장박동이 이미 멈춰있었으며 왼쪽무릎 찰과상외에는 다른 외상이 없었다"며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야단체 대표들과 학생들로 구성된 '고 노수석 사인규명및 사태해결을 위 한 임시대책위원회' 대변인 이덕우변호사(42)와 병원측 황정연응급실장(46) 은 이날 자정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노씨 시신 검안결과 왼쪽무릎과 오른쪽 손가락 4개에 찰과상, 오른쪽 가슴중앙과 명치부근에 멍든흔적 등이 발견됐 다"면서 "가슴 등의 상처는 심폐소생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응급실에 있는 학생들은 "노씨가 시위현장에서 진압경찰이 휘두른 경찰봉에 머리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상이 없는점등으로 미뤄 노씨가 시위도중 경찰을 피해 급히 달아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져 숨진것 같다"면서 "빠른 시간내 에 부검을 할것"이라고 말했다. 시위현장에 함께 있던 이창호씨(20.한양대 기계공2)는 "시위도중 경찰이 뒤에서 쫓아와 노씨와 함께 인근 대현인쇄소로 몸을 피해 숨어있던중 노씨 가 쪼그린채 움직이지 않아 의자에 앉혔더니 앞으로 쓰러졌으며 이미 심장 박동이 멎은것 같았다"고 말했다. 노씨가 응급실로 옮겨진 직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학생 2백여명이 병원안 에 바리케이트를 친채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했으며 경찰도 10개중대 1천5 백여명을 외곽에 배치했다. 경찰은 서울지검 형사3부 김시진, 이기석 두 검사의 지휘아래 중부경찰서 을지6가 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 대현문화사 사장 최모씨(35)와 인쇄소 에 있던 이군 등 학생 3명을 상대로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중이다. 경찰은 또 당시 시위진압에 나선 일선 책임자들을 불러 과잉진압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경찰은 노씨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이르면 30일 상오 중 시신을 부검키로 했다. 연세대 김석득부총장은 이날 밤 병원을 방문, 학생들과 시신을 신촌세브 란스병원으로 옮기기로 하고 경찰측과 협의했다. 한편 서총련 학생 2천여명은 학교별로 '대선자금 공개및 등록금인상 저지 를 위한 결의대회'를 연 뒤 하오6시30분께 종로5가에 집결, 청계천을 지나 을지로5가에서 3가로 행진중이었으며 경찰은 청계천 5가에서 최루탄을 쏘 며 시위대 후미를 해산시켰다. 이날 시위 현장에는 경찰 56개중대 6천여명 이 출동, 진압작전을 폈다. 숨진 노씨는 전남 영광 염산중 교감인 노봉구씨(56)의 2남2녀중 셋째로 95년 광주 대동고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한 뒤 연세대에 입학했다. 노씨는 호남학생들을 위한 남도학숙에서 1년동안 생활해오다 교사인 누나 윤경씨 (27)등 2명과 함께 인천에서 살아왔다. <최윤필.박희정.윤태형.이영태기자> 발행일 : 96/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