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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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YonOul (.. 리온 ..)
날 짜 (Date): 1996년01월26일(금) 02시14분16초 KST
제 목(Title): 동문을 지나가면서 ...


이화보드에서 mariah님 글을 읽고는 문득 내 기억 속의 후문 - 아니지, 참~ 동문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의 동문 쪽에는 전인권이 자주 들린다는 '필'이라는 이름의 (라이브) 까페도 

있었고, 딸기골 분식, 알프스, 그리고 지금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몇몇 까페들

만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위에서 오래된 건물이라고 언급된

것이 그 까페들이  있는 건물을 의미하신듯 ... 아~ 하나는 이름이 떠올랐다. '템

프테이션' 이었던 것 같은데 ...)



예전에 학생식당의 밥이 질리면 의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 때론

의대식당의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세브란스 구내 식당으로 ... 또 거기도 사

람들로 붐비거나 하면 병원과 동문중간의 사잇길로 내려가서 딸기골 분식을 찾던

기억이 새롭다. 딸기골은 그리 맛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자리가 넉넉하고

오가는 길의 한가함과 여유로움이 좋아서 친구들과 가끔씩 찾았었다.

식사후에는 그린하우스에 들려 가벼운 음료나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고 동문

의 그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었다. 사시사철 언제나 푸른 ... 하지만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분위기로 멋을 내는 그 동문의 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

면 이마에 흐르는 땀도 흥겹게 느껴진다. 동문을 올라 뒤돌아보는 그 기분도 상쾌

하지만 나를, 아니 우리를 더 기쁘게 해주는 것은 청송대를 지난다는 작은 설레임

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지칠때마다 안식을 느끼게 해 준 그 곳을 짧은 시간이나마

지나는 상쾌함은 밤에 도서관을 나서는 그 시간까지도 남아 있곤 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동문쪽으로 가기도 했었다. 이화여대

후문과 연세대 동문 사이에 놓여진 육교를, 일설에 의하면 '오작교'라고 부른다

던데 ... 나도 이대생인 친구를 사귀면서 자주 동문앞에서 만나곤 했었다. 서로

걸어나오기에 편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문에서 만날 때와는 또다른 묘한

느낌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후후~ 그러고 보니 미우학사에 살던 친구와 후배들을

바래다 주기 위해서 이 길로 걸었던 적도 여러번이군. 때론 술에 취한 친구들을

데려다 주려고 '우~'하며 몰려 간 기억도 나고 ... 어느날은 가볍게 오른 술기운

을 즐기며 둘이서 걸었던 그런 기억도 있다. 그 길 ... 여러 사람의 사랑과 아픔

을 묻어 둔 ... 



얼마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신촌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경복궁쪽으로 갈 일

이 있어서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예전에 비하면 금화터널을 지나는 차량이 무

척 많아진 것 같다. 이젠 이 길을 걸으려면 엄청난 자동차의 매연과 씨름을 해야 

겠군 ... 그리고, 못보던 건물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하나같이 다 화려하고 ...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그리고 오랫동안 학교를 안 찾아가다 보니 무척 오

랫만에 보게 된 풍경이었는데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고가도로를 타고 오르며 크

게 보이는 '여우사이' 간판과 무슨 곰탕집 간판은 천박한 자본의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 듯해서 기분이 씁쓸했다. 관광지를 찾아가서 기념품을 사려고 보면 우리나라

어느곳을 가더라도 문구만 바뀐 똑같은 물건을 보게 된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아

쉬움을 느끼곤 했는데 ... 서울의 모습을 보면 그같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서울의 어디를 찾아가도 압구정동, 홍대등등의 문화의 복제판 내지는 표절일 뿐인

것 같다. 주 이용 고객이 어떤 사람들인지 ... 그리고 그 모이는 사람들의 다름으

로 인한 복제의 완성도 여부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일 뿐, 그 내용면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지금 서울의 모습 아니던가?



너무 거창한 얘기를 치밀하지 않은 문장으로 기술해 놓은 것은 그런 서울의 문화

가 미치도록 혐오스러워서가 아니고 ... 단지 잃어버린 동문 앞의 차분한 분위기

... 언제나 찾으면 가벼운 식사나 맛있는 빵을 즐길 수가 있고, 마음 맞는 이와

함께 조용히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 서운하기 때

문이다. 예전엔 그 곳을 찾아가는 그 여로가 또 하나의 기쁨이었지만 ... 요즘 그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를 타고 와서 차를 타고 간다. 기계의 편리함과

자본의 화려함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던 예전의 거리를 바꾸어 놓았다

고나 할까? 나 역시 그런 편리함과 화려함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 하지

만 몇군데만은 그런 흐름을 거부하고 도도히 자신만의 모습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램이다.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겨진 그 길을 생각하니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옛일들에 조금은 흔들리는 나를 느낀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아직 동문쪽과 청송대의 푸르름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봄에

서울에 올라갈 수 있으면 대강당 앞의 진달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매년 남기던 캠퍼스에서의 봄 사진을 안 찍은지도 어언 몇년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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