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darksky (어두운하늘箔) 날 짜 (Date): 1994년07월01일(금) 16시26분59초 KDT 제 목(Title): OB's Valley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연대생이라면 누구나 단골술집이 한두개씩 있었습니다. 그런 단골집들에서는 주머니가 텅텅 비었을때에도 스스럼없이 몇잔 걸칠 수가 있어서 참 좋았지요. 과외를 못하게 할 때였으니 항상 빈곤에 찌들었던 우리로서는 단골술집 몇개 있으면 마치 통장에 비상금이 두둑히 있는 느낌이었죠. 물론 단골이 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리지요. 또 그때까지는 빈손으로 마실때는 항상 무엇인가를 맡겨야 되고 말입니다. 대개 학생증이나, 시계, 그리고 가끔가다 안경. 이런 것들이었죠. 술집이나 당구장 카운터에 보면 학생증들이 단과대학별로 정리되어있는 것도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맡기고 나중에 찾는 일이 몇번 반복되다보면 쌓이는 신용과 함께 '정'도 두터워져서, 자연스레 단골이 되는 거지요. 물론 모두가 항상 신용이 있는 것은 아니고, 때론 본의아니게 딱한 사정으로 못 갚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터이니 이런 외상술꾼들은 학교앞 술집들의 큰 위험부담이 었을 겁니다. 대학 1학년 어느날. 그날도 뭐 특별한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한잔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오후일찍 신촌거리로 내려오는데 그 중간쯤 길가에 커다란 화분/화환들이 모여있더군요. '축 개업 오비스 밸리 !'. 커다란 생맥주집이 새로 문을 연 것입니다. 이런 이런... 당연히 들려서 축하를 해야지요. 내부는 깨끗하게 장단이 되어있었고 맥주 맛도 그만이었습니다. 첫날이라 서비스안주도 푸짐했고, 벽에 달려있는 에어콘에서는 정말 찬바람이 나오 더군요. 당시 몇집 건너있던 다른 맥주집의 에어콘은 속에 녹음기를 틀어 놓았는지 소리는 큰데 바람은 하나도 안나왔답니다. 저녁무렵까지 우리는 기분좋게 마셨습니다. 개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나올때 학생증을 맡길까 하다가, 처음이고 하니 좀 비싼 것을 맡겨야 되겠다 싶어 시계를 풀었습니다. 윽... 그런데 눈이 휘둥그래지는 젊은 주인아주머니. 간략히 상황을 설명드리고 물었습니다. ``여기 노트 없어요?''. 노트에다 학과, 이름을 적고 시계에 붙여놓을 꼬리표번호 등을 써야했거든요. 잠시후 정신을 차린 아주머니... 일하는 애에게 큰 목소리로 ``얘야, 노트 하나 사와라''. 깨끗한 새 노트에 일착으로 테이프를 끊은 셈이지요. 그 뒤로도 그 집엔 몇번 갔습니다. 그런데 6개월 쯤 뒤의 어느날, 그 맥주집이 문을 닫고 말았더군요. 학생들이 외상값을 안 갚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상당히 죄책감느끼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처음가는 술집에서는 절대로 외상을 안하지요. 예산을 초과해서 마신 경우라면 선배를 불러내든가 해서 반드시 처리를 합니다. 요즈음도 연세인들 생맥주를 즐겨마시겠지요? 좋은 술집있으면 여기 연세보드에다 좀 소개해주세요. 신촌에 가본지가 오래되어서 많이 바뀌었을 것 같군요. 그럼 다음에... -------------- darksk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