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YonOul ( 연 울) 날 짜 (Date): 1995년03월09일(목) 10시25분50초 KST 제 목(Title): 한글사랑 안과의사 공병우박사 타계 '나우컴'에서 퍼 온 글입니다. 뉴스제공시각 : 03/08 18:58 제목 : 한글사랑 안과의사 공병우박사 타계…장기-시신 기증 ------------------------------------------------------------------------------ 일평생을 한글사랑 운동에 바쳐왔고 안과의사이자 한글기계화운동가, 사진작가로 유명한 공병우박사가 7일 오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리고 유언을 통해 연 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해부학교실에 시신을 기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세상에 알리지도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는 유언때문 에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공박사의 유족과 한글사랑 운동을 함께 해온 후배들은 그의 엄명때문에 한글사랑 에 평생을 바쳐왔던 고인의 정신을 기릴 빈소조차 마련하지 못한채 안타까워하고 있 다. 평소 『내가 죽거든 쓸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신체도 해부용으로 기증하 라』고 말해온 공박사는 지난 1월 폐렴과 호흡기관련 질병으로 이 병원 심혈관센터 에 입원했었다. 그는 노환으로 인해 장기기증의 뜻은 이루지 못한 대신 의료계의 후 학들을 위해 시신을 기증했다. 공박사와 한글운동을 함께 해온 한 관계자는 『공박사가 생전에 「사람은 죽어 빈 손으로 간다. 장기를 기증하려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무 것도 없이 흙으로 돌아가 고 싶기 때문이다. 묘자리로 땅 한평을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낫다」고 말해 왔다』고 전했다. 의과대학도 다니지 않고 독학과 강습소교육만으로 1926년 조선의사 검정시험에 합 격, 한국 최초의 안과전문의로 이름을 떨친 공박사는 1938년 눈병치료를 받으러온 한글학자 이극로선생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다. 공박사는 또 일본어로 된 의학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던중 한글타자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타자기를 사 구조를 배워가면서 시행착오를 거듭, 드디어 1949년 한글기계화역사에 큰 획을 긋는 최초의 고성능 한글타자기발명 에 성공했다. 속도가 빠른 세벌식 공병우 타자기를 만들어 보급하다가 정부가 네벌식을 표준형 으로 정하자 이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 쌍초점 타자기를 발명하고 한글텔레타이프, 점자 한글타자기, 한글모노타이프, 한글워드프로세서, 맹 인용 한글워드프로세서등을 개발했다. 공박사는 88년 한글문화원을 설립, 한글 글자꼴과 남북한 통일 자판문제등을 연구 해왔지만 병세가 악화되면서 뒤를 이을 사람이 없자 최근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일제말기 강압적인 창씨 개명에 반발해 「금일 공병우 사망」이라고 스스로 선언했으며 한 신문사가 선정한 「한국의 고집쟁이 열명」중 6위에 꼽힐만큼 고집이 셌다. 그는 12년전인 83년에 이미 「죽은뒤 시신을 기증하고 사망사실을 알리지 말 며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내용의 유언을 마련해 뒀다.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PC통신 하이텔에 한글기계화운동과 세벌식 타자기의 장점에 대한 글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릴 정도로 한글사랑에 온 힘을 쏟아온 그는 한글기계화작업의 끝을 보지못한채 한 세상을 마감했다.(金熹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