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MN ] in KIDS 글 쓴 이(By): bigrock (임꺽정) 날 짜 (Date): 1998년 5월 20일 수요일 오전 07시 46분 16초 제 목(Title): 유학…면면히 이어온 개척정신 다음은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 오래전에 났던 글입니다. 이시대를 사는 유학생으로써 많은것을 느끼게 하기에 여기에 붙입니다. -------------------------------------------------- [이규태 한국학] 유학…면면히 이어온 개척정신 신라 진평왕 때 설계두라는 청소년이 있었다. 그는 항상 친구들과 어 울린 자리에서 이런 말을 자주했다. 『도대체 신라 사람들은 골품이나 논 하고 문벌만 따질 뿐 뛰어난 재주나 걸공을 보지 못하니 답답해 못견디 겠다. 나는 멀리 중국 땅에 가서 비상한 공을 세우고 영달의 길을 걸어 항상 신검을 차고 천자 곁에서 천하를 호령하고 싶다』고-. 그러고서 어느 날 남해에 일엽주 띄워 망망대해 속으로 사라져갔다. 신라 젊은이들 틈에는 이같은 모험적 개척 정신이 왕성했던 어느 한 시 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당서」에 보면 이 신라 청년의 개척 정신은 훌륭 히 결실하고 있다. 설계두는 당태종에게 발탁되어 무위장군으로 싸우다 전사했으며 태종이 입었던 옷을 손수 벗어 시신을 덮어줌으로써 그 공을 기렸다 했으니 말이다. 당태종이 주변 1백여 나라들로부터 유학생을 받아들였을 때 고구려 백제 신라 유학생이 가장 많았다는 「당회요」 기록이 있다. 당시 유학생 들에게 옷과 양식을 급여했다는 「책부원구」의 기록에 보면 고창이나 토 번국에서는 단 한 명뿐인데 신라에서만도 2백16명에 이르고 있다. 당나 라때 그 나라 대과에 급제한 신라 유학생으로 김운경 김가기 최치원 등 58명에 이르고 있으며 고려 때까지도 그 유학열이 계승되어 이곡 이색 부자를 비롯하여 원나라 대과에 급제한 유학생이 32명에 이르고있다. 스님들은 더욱 왕성하게 유학했다. 문헌에 나타난 통일신라 시대 이 후 유학승만도 선종 1백1명을 비롯, 1백16명에 이르고 있다. 「삼국유사」 에는 멀리 천축, 곧 인도까지 가서 공부하는 유학승 9명이름이 적혀 있 다. 신라승 아난나발마는 인도의 불교 대학인 나란다사에 유학, 70세까 지 율론을 강론하다가 그곳에서 70세에 입적했으며 신라승 혜업은 인도 보리가(보제사)에 있으면서 나란다에 가서 설법을 듣다가 60세에 입적했 다. 현태 현각 혜륜 등 신라승 이름도 고승전에 천축 유학승으로 기록돼 있다. 물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도 인도 유학승이며 그곳까지 가 는 고초가 얼마만 했는가를 절감케 해주고 한국인의 유학열을 가늠케 해 주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나란다 불교 대학에 가면 그 유지가 광범하게 발굴 보존돼 있는데 그 한쪽에 유학승 무덤인 부도 구역이 있다. 고대 인도 문자를 읽을 수 없 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신라 유학승 부도도 분명히 보존돼 있으 니후에 와서 찾아보라는 관리자의 말이었다. 그 무렵 당나라 천축 유학 승이 58명인데 비하면 신라 스님들의 유학열이 얼마만 했는가 새삼 놀라 게 하기도 한다. 쇄국에서 빗장이 풀리자 최초로 미국에 유학한 분이 「서유견문」의 저 자 유길준이다. 보스턴 북쪽에 거버너 덤머 아카데미라는 예비 학교로 미국 최초의 보딩스쿨이다. 유길준이 유학하던 시절의 교사 한 채가 남 아있는데 교실 한 칸 교무실 한 칸, 그리고 그 사이에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태실이 끼어있는 단순 구조였다. 학생을 훈계할 일이 있으면이 태실에 데려다 태동이라는 아이 등에 업혀 엉덩이를 까내린 다음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매질을 하는데 교장만이 할 수 있었다 한다. 유길준의 아 들은 광복 후 군정에서 문교부장을 지낸 연세대 교수 유억겸으로 미국 유학시절 아버지가 다녔던 이 거버너 덤머에 들렀을 때 아버지가 낙서한 책상을 보았다던데 10여년 전에 가서 찾아보니 그 낙서책상은 없었다. 최초로 프랑스에 유학한 것이 후에 김옥균을 암살하는 홍종우다. 언 어 장애 등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2년간 머물면서 파리 동양어학교 로 니교수와 더불어 춘향전을 불역 출간하고 한국 점성술에 대한 책도 출간 하는 업적을 남긴 것을 보면 미지의 문화 공간에서 개척해나가는 우리 한국인의 유전질을 절감케 해주는 선구자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공부하 는 한국 유학생 수가 3만1천76명으로 다섯번째 유학생국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양이 많은 것이 좋은 건 아니다. 질도 더불 어높았으면 가마 타고 나팔 부는 격일 텐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