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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 ] in KIDS
글 쓴 이(By): yan ()
날 짜 (Date): 1998년02월22일(일) 20시25분11초 ROK
제 목(Title): 진달래.. 분홍빛 바다


셔琉떡銖胥� 추억에서 꺼낸 여행- ‘분홍빛 바다’

바다가 나에게 하나의 빛깔로 다가온 것은 언제였던가. 그것은 아마도 열여섯 
어린시절 소년의 기억으로 돌아가야 한다. 봄날 진달래가 활짝
핀 4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던 나에게 황혼의 노을빛과 물빛 아지랑이, 그리고 산야에 
피어나는 진달래의 꽃그늘은 숙명과도 같은 고뇌를 안겼다.
그것은 불가해한 생의 진보를 파악할 수 없던 열여섯 소년에게 그리움과 우수와 
동경과 번뇌로 다가오는 형벌이었다.

철도 무임승차의 시혜. 그것은 가난했던 국립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단 
하나의 혜택이었으며 가출과 무단결석의 빌미를 제공하는
유혹이었다.

청량리발 강릉행 야간열차, 캄캄한 석탄의 밤을 지나 태백의 어두운 굴을 벗어난 
기차가 동해에 도착한 것은 뿌윰한 새벽 여명이었고 나는
이름모를 동해 바닷가의 낯선 백사장에서 내 의식 속에 최초로 화인과도 같은 
빛깔에 대한 기억을 심게한 찬란한 분홍빛 바다와 마주하게
되었다. 

공복때문이었을까. 사물의 빛깔이 상식과 고정관념을 벗어나 변형을 이루는 것. 
자아와 대상의 혼연일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미학적 설명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나를 물들일 듯 꽃밭처럼 펼쳐진 분홍빛 바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동해안 방위사령부 장병들이 멀리서 나를 관찰했던
모양이다. 의식을 거의 잃은 나를 그들이 구출했다.

나는 다시 석탄의 밤을 지나 제복의 사춘기로 되돌아왔다. 그날 이후 나에게 비친 
바다는 그저 푸르른 바다일 뿐, 그 바다의 빛깔은 별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순수한 동경을 상실하며 살아가는 세월의 상처일 터이다. 그러나 
순수를 잃은 아픔이 없을까.

지난해 봄 그러니까 열여섯 소년시절 이후 35년도 더 지난 봄날 나는 불현듯 
아름다운 소년시절이 그리웠다. 꽃에서도 마음 설레지 않는
마목과도 같은 세월에 대한 자각이었으리라. 나는 영월과 상동과 태백을 지나 
그날의 그 바다로 가고 있었다. 내가 다시 찾아가는 바다는
열여섯 소년시절 공복으로 마주하던 그곳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러나 나는 태백의 고산도로를 지나치며 내가 마주할 바다가 분홍빛 바다이기를 
꿈꿔보았다. 그것은 태백의 고산지대가 주는 적막과 더불어
한참 불타듯 피어나는 철쭉꽃의 선연한 빛깔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을 철쭉꽃의 빛깔을 마음에 지닌 채 동해의 한적한 포구에
닿았다.

울진이 가까운 석호리라는 곳이었다. 아! 그러나 설레며 달려온 바다는 여전히 
푸르른 바다일 뿐 열여섯 소년시절 내 가슴에 새겨진 분홍빛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바다에서 백사장에 무릎을 접고 반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뚝에 
묶여 너울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소 한 마리를 보았다. 사료를
먹여 키우는 포구 마을의 소일 터였다. 나는 오래도록 소가 바라보는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발길을 돌렸다.

『나비는 꽃으로 날아 들고/ 나방은 불빛 찾아 날아 드네/ 나비도 나방도 아닌 
자(者) 있어/ 향기로운 꽃에서 숨결 모으고/ 제 몸 태울 불 속에도
뛰어들었네』 -「나비와 나방」

나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아름다움과 더러움, 꿈과 욕망과 인간의 이상과 
세속의 질곡을 떠올리며 한편의 시를 얻었다. 그것은 분홍빛
바다와 푸르른 바다, 그리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백사장에 묶인 소와 철쭉꽃의 
선연한 빛깔이 주는 생각의 뿌리일 터이다.

/김명수·시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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