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ngShin ] in KIDS 글 쓴 이(By): seagirl (예~~리) 날 짜 (Date): 1996년04월19일(금) 13시04분06초 KST 제 목(Title): 생각과 사랑... 생각과 사랑 (THOUGHT AND LOVE) 생각은, 그 감정적, 감각적 내용과 더불어 사랑이 아니다. 생각은 반드시 사랑을 거부한다. 생각은 기억에 근거하는데 사랑은 기억이 아닌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생각은 사랑이 아니다. 그대가 어떤 친구의 버릇, 매너, 특징을 상기하고,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 있었던 즐거움 또는 불쾌한 일들을 생각한다 해도 생각이 자아내는 그림은 사랑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생각은 분리적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의식, 이별과 슬픔에 대한 의식은 사고과정의 소산이며, 그 사고과정이 중단될 때에만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생각은 필경 소유권에 대한 느낌을 키우며, 그러한 소유에 대한 느낌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질투를 기른다. 질투가 있는 곳에는 분명히 사랑은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투를 사랑의 표시로 생각한다. 질투는 생각의 결과이며, 생각이 갖고 있는 감정적 내용의 반응이다.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과 소유되고 있다는 느낌이 봉쇄될 때, 거기엔 선망이 사랑의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빈터가 있다. 모든 분규와 슬픔이 일어나는 것은 생각이 사랑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그대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게 사랑인가? 만일 그대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를 그대가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반감에 찬 무서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가 죽은 친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스스로 신의 없고 사랑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대는 그러한 상태를 무정하고 무관심한 상태로 여길 터이고, 그래서 그 친구를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며, 손으로 만든 사진이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가슴(heart)을 마음(mind)의 사물들로 가득 채우는 것은 사랑을 위한 자리를 남겨 놓지 않는 것이다. 그대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 그대는 그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죽은 광경들과 체험들을 생각이 재생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의 부재 속에서이다. 이 과거의 재생이 사랑이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 대부분에게 사랑이란 죽음이며 삶의 거부이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과거와 살고 있고, 죽은 사람과 살고 있으므로 바로 우리 자신이 죽은 것이다. 사고의 과정은 언제나 사랑을 거부한다. 감정적인 분규는 있으면서 사랑이 없는 게 바로 생각이다. 생각은 사랑에 대한 가장 큰 방해이다. 생각은 '있는'것과 '있어야 하는 것(what should be)' 사이의 구분을 만들어 내며, 이 구분 위에 도덕이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도덕도 부도덕도 사랑을 모른다. 사회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이 만들어 낸 이 도덕 구조는 사랑이 아니라 시멘트가 굳는 것과 같이 경화시키는 과정이다. 생각은 사랑으로 인도하지 않으며, 생각은 사랑을 가꾸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정원의 식물처럼 재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가꾸겠다는 바로 그 욕망이 사고의 활동이다. 그대가 참으로 깨어 있다면 그대는 생각이 그대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생각은 분명히 그것의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각과 관련된 것은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생각과 관계가 없는 것은 마음이 알 수 없다. 그러면 그대는 사랑이란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사랑은 그 속에 생각이 들어 있지 않은 존재의 상태이다. 그러나 바로 사랑의 정의가 사고의 한 과정이며, 그래서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 자체를 이해해야 하며, 생각에 의해 사랑을 잡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의 거부는 사랑을 가져오지 않는다. 생각의 깊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때에만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허하고 피상적인 주장이 아니라 깊은 자기인식이 필수적이다. 반복(염불 같은 것의)이 아니라, 명상이, 정의가 아니라 앎이 생각의 길들을 드러내 준다. 깨어 있지 않고 생각의 길을 체험하지 못하며 사랑은 있을 수 없다. *******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의 삶을 위하여" 중에서 ******** 씰데없는 글 올렸다구 혼내지 마세요... 그냥...어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뭔소린지 모르겠더라구요... 날씨도 추운데...머리에 스팀이라두 들어오면...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해서... 그래두 한 번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