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jaco (Joooooooon�x) 날 짜 (Date): 1995년09월15일(금) 18시50분42초 KDT 제 목(Title): 청강고 내야수는 슬펐다... [2]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 했� 수업이 끝나는 대로 야구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코치가 앉 아있는 곳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선수들 연습 장면을 진지하게 바라 보았다. 그러다 쉬는 시간만 되면 코치에게 달려가 귀찮아할 정도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내 나름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결과 코치가 마침내 테스트나 한번 해보자고 글러브를 던져 주었다. 겁도 나고 당 황스러웠다. 이전까지 한번도 글러브를 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 공을 던지고 받아 보았다. 코치는 처음 하는 것 치고 는 잘한다는 말로 입단 허락을 대신했다.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에 가담했다. 내 위치는 내야수 였다. 그로부터 1년 동안은 너무 정신 없이 살았다. 기존의 선수들을 따라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이성과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동안 나는 쉼 없이 던지고 때렸다. 그래서 내겐 지 금도 사춘기에 대한 유별난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는 연고권이 있는 야구 명문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선수 경력이 채 1년도 안 되는 나로서는 행운을 거머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데 공짜와 요행은 없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나의 야구 실력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게다가 키도 작았다. 결국 아구부원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야구의 묘미에 흠뻑 젖어 들고 있던 시기여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 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실력과 노력은 별개의 것인 모양이 일반 학생으로 나는 마산상고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해 에 야구부를 창단한 청강고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청강고등학교 야구 부는 거의 외인구단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운 후보 선수들만 모아 놓은 꼴이었다. 때문 에 외부에서는 학교에 야구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선수들은 선수들 나름대로 패배 의식에 젖어 있었다. 팀 분위기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 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좋은 팀이건 나쁜 팀이건 야구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팀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경남 지역 고교 팀 중 맨 꼴찌였다. 때 문에 중앙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 한 가지 다행스 러운 것은 이 즈음 나의 키가 상당히 자랐다는 것과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 유학가 있는 백수열이라는 친구와 경주에서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윤호라는 친구가 바로 그들이다. 야구부 삼총사로 불리워졌던 우리는 한방에서 자고 웃고 떠들며 각자의 미래를 설계하 곤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나마 내가 밝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 던 것은 이 두 친구 덕분이다. |